죽을 각오 4명이면 교회가 산다- 김연숙 권사(하)

죽을 각오 4명이면 교회가 산다- 김연숙 권사(하)

[ 향유와 옥합 ]

강영길
2013년 04월 10일(수) 14:44
   


결혼 후 시댁은 김 권사의 신앙을 얼마나 방해했는지 모른다. 특히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더욱 심해졌다. 시댁의 방해는 물론 남편의 무지막지한 폭행이 시작되었다. 옆구리며 얼굴이며 가리지도 않고 발길질을 했다. 남편에게 맞아서 눈은 퍼렇게 멍이 들고 이마는 부은 채 교회에 간 적도 있다. 김 권사는 그렇게 맞으면서 내가 이겨야 되겠다, 이 사람들을 이겨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김 권사는 아이가 그 주문을 듣지 못하도록 두 손으로 아이의 귀를 감싸고 잤다. 매일 밤 아이 이마에 십자가를 긋고 잠을 재웠고 아이가 남녀호랑개교의 영향을 받지 못하게 기도했다. 아이를 보호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던 아이가 어느 날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하늘로 떠나 버렸다. 친구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트럭에 치어 아침 이슬처럼 사라져 버렸다. 김 권사는 그때부터 정신병원에 드나들었고 인간의 삶이 아닌 삶을 살았다.
 
김 권사가 회복된 후 화순으로 이사 와서 지금 몸담은 신광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신광교회에서 처녀 때 주일학교에서 했던 봉사에 못지않은 일을 하고 있다.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서 단돈 10원도 없을 때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식품점 겸 식당을 열었다. 식품을 취급하다보니 부자였던 친정에서 살 때도 못 먹었던 온갖 과일과 야채며 고기를 단돈 10원도 없는데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매일 울면서 가장 잘 먹도록 해 주시니 하나님은 참 코믹한 분이다.
 
집안이 망해서 가게를 연 지 한 달쯤 되었는데 사모님이 오셔서 십일조가 축복의 근원이라고 했다. 그 말씀을 듣고 김 권사도 날마다 2만원을 하겠다고 결정했다. 벌리지 않아도 떼기로 했으니 실제로는 십일조가 아니었다. 처음에 이만 원을 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기가 막힌 상황에서 매일 이만 원을 헌금하다니. 내가 괜히 사모님 말씀을 들은 거지. 2만원이 아니라 2천원을 할 걸. 하나님 솔직히 나 2만원은 너무 많아요. 2천원만 하면 안 될까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전라도 말로 2천원은 너무 짜잔한 것 같다. 그럼 5천원만 했으면 좋을 것을, 5천원만 해도 굉장히 많은 돈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좀 짜잔하다. 그러면 만원만 할 걸 괜히 2만원을 했지, 2만원은 너무 아까웠다. 마침내 이렇게 기도했다.
 
'내가 설사 2만원이 안 벌려도 2만원을 헌금하겠습니다.'
 
마음으로 온전히 하루 2만원 헌금하기까지 3개월이 걸렸고 그렇게 1년을 헌금했다. 시골, 그것도 망한 살림에 그 금액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사모님 말씀을 듣고 나흘 만에 첫 헌금을 했으니까 8만원을 냈다. 일주일도 채 안 된 주일날, 딱 한 번 헌금을 한 그날 일이 벌어졌다.
 
남편에게 10억 공사가 떨어진 것이다. 그 공사는 남편이 결코 딸 수 없는 공사였다. 김 권사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참 약아빠진 존재요잉. 하나님이 너무나 너무나 큰 선물을 주셨는데도 나는 2만원을 내는 게 아까웠다니까."
 
김 권사의 헌신과, 병에서 회복한 과정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다 실을 수가 없어서 아쉽다. 다행스럽게도 김 권사는 시부모님은 물론 모든 가족을 주님께 인도하는 역사를 일으켰다. 김 권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을 가진 이가 네 명만 있으면 교회가 산다니까요. 정말입니다."

강영길/온누리교회, 소설가, 내인생쓰기 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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