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침해의 한 사례

인권침해의 한 사례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3년 04월 10일(수) 14:08

섀도우 댄서(제임스 마쉬, 2012, 드라마, 15세)
 
영국의 아일랜드 지배는 1937년 아일랜드의 독립이 이뤄질 때까지 대략 4백년간 지속되었다. 그러나 영국은 개신교도를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북아일랜드를 여전히 영국령에 두고 있었다. 이에 가톨릭계의 북아일랜드 과격파 무장단체 IRA(Irish Republican Army, 아일랜드공화국군)는 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며 거센 항의를 했는데, 국내 온건 세력과의 갈등은 물론이고 각종 테러로 주변의 스코틀랜드나 웨일즈와 비교해볼 때 아일랜드는 영국에게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양국의 화해분위기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1993년을 배경으로 하는 '섀도우 댄서'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특히 IRA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영화다. 물론 과거 IRA의 긴박감 넘치는 각종 테러와 정치 활동을 기대하고 보았다간 실망할 수밖에 없다.
 
소설에 기반을 둔 영화의 제목 '섀도우 댄서'는 자신은 드러내지 않고 오직 그림자를 통해서 반사되는 춤을 추는 사람을 가리킨다. 마치 실체가 없는 듯이 보이지만 오히려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갖가지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춤이다. 외연적으로는 영국 정보부에 의해 조종되는 스파이 캐릭터를 가리키지만, 내연적으로는 영화의 비극성을 시사한다. 긴장감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대사로 표현하기보다 배우들의 절제된 표정 연기와 음악 그리고 상황전개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점은 감독의 남다른 연출 감각을 돋보이게 한다. 특히 콜레트로 분해 표정만으로 갈등과 긴장 그리고 절망감을 잘 표현한 안드레아 라이즈보로의 연기는 관객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콜레트는 영국 지하철 폭탄 테러에 실패한 후에 영국 정보부에 의해 붙잡힌다. 테러리스트라고 보기에는 이 과정에서 드러난 그녀의 모습은 너무 유약하기만 하다. 심문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이 실패한 이유가 내부의 고발 때문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폭탄테러 혐의로 평생 감옥에 갇혀 살 것인지, 아니면 스파이로 활동할 것인지를 선택하라는 정보요원 맥의 제안을 받는다. 처음에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러나 아이의 신변을 담보로 회유하고 또 가족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IRA내의 다른 스파이들도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고, 또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를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들은 후에야 콜레트는 무엇보다 엄마로서의 책임감을 의식하여 마지못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녀가 할 일은 IRA에 속해 있는 오빠와 동생의 활동을 보고하는 것이다. 가족(아들)을 위해 자신의 가족을 배신해야 하는 비극적인 선택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영국정보부의 속셈은 딴 데 있었고, 콜레트를 이용한 첩보활동이 하나의 미끼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 맥은 지도부에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 게다가 IRA의 계획이 사전 노출로 실패하자 IRA 지도부는 콜레트 가족 중 누군가의 배신을 염두에 두고 가족을 한 명씩 심문하기 시작한다. 콜레트가 처한 위험한 상황을 알게 된 맥은 해결책을 찾던 중에 마침내 자신 몰래 진행된 지도부의 비밀프로젝트를 밝혀내고 그녀를 위기로부터 구해내기 위한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영화의 반전에 해당하고 그래서 스포일러에 해당되는 부분이지만) 그는 앞서 영국의 스파이로 활동하고 있었던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영국정보부가 콜레트를 끌어들였고 그 때문에 그녀가 위기에 놓여 있음을 콜레트 엄마에게 알린다. 영국정보부는 IRA를 감시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고 두 차례나 걸쳐 '모성애'를 이용했던 것이다. 아들을 잃었던 아픔, 그리고 또 다른 가족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은 콜레트 엄마로 하여금 조국을 배신하게 했고, 또한 콜레트는 자기 때문에 동생을 잃은 상처와 또 자기 때문에 아들이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에 대한 염려로 어쩔 수 없이 스파이로 살아야 했던 것이다.
 
영국정부의 정보 수집행위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가족을 감시하기 위해 가족을 담보로 '엄마'의 신분으로 첩보활동을 하게 만든 것이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자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매우 스마트한 프로젝트이고 또 그것이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모성애에서 비롯하는 인간의 연약한 점을 이용한 것이라는 사실은 인간의 기본 양심을 악용한 것으로 인권침해의 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선을 위해 악에게 손을 빌리는 일은 지식욕에 사로잡혀 자신의 영혼을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판 파우스트 박사와 다르지 않은 행위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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