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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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3년 04월 05일(금) 09:33
링컨(스티븐 스필버그, 드라마, 12세, 2012)
 
'링컨'은 2013년 아카데미 12개 부분에 후보로 올라 미술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스필버그가 감독으로서 오랜만에 만든 작품이다. 수상작이라는 명성보다는 그동안 위인전으로 읽었던 링컨의 일면을 영화를 통해 본다는 설레임이 컸다. 영화라는 것이 재현예술이라 어느 정도 리얼리티를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실을 영화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재현하는 데에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감독은 나의 기대감을 상승시켰고, 게다가 3번이나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그는 누구보다도 링컨을 가장 잘 재현했다고 한다. 21세기 대한민국 땅에서 링컨의 통치행위를 직접 본다는 것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인가!
 
영화는 링컨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 가장 드라마틱했던 시기에 집중했다. 링컨이 직면한 난제는 남과 북의 평화냐, 아니면 수백만의 흑인 노예들의 자유냐를 선택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미 수십만의 희생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남부에서 온 평화제의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남부가 반대할 수밖에 없는 노예제도를 폐지할 헌법 제13조를 수정함으로써 전쟁의 불씨를 계속 남기느냐 하는 것이었다. 야당은 당연히 평화라는 이름하에 수정안을 반대했다. 심지어 여당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있었을 정도였다. 수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수에서 20표가 부족한 상황에서 링컨은 다양한 정치적인 노력을 기울여 마침내 수정안을 통과시켰고 세계사적인 족적을 남기게 되었다.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면서도 결코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표결을 앞두고 여야가 펼치는 전략이 긴장감으로 넘쳤고, 국회에서 진행된 토론이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천재적인 스토리텔러로서 감독의 실력을 엿볼 수 있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역시 큰 몫을 했다.
 
필자는 링컨이 자신의 정치행위에서 그리스도인 정체성을 어떻게 표현했느냐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사실 그가 실현한 노예 해방 역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존엄하고 또 평등하게 만들어졌다는 창조신학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필버그는 링컨의 신앙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존엄 사상만을 강조하는 듯이 보였다. 종교영화가 아니니 당연한 일이다. 다른 곳에서 링컨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야만 했다.
 
스필버그에게 있어서 링컨은 무엇보다 평범한 가장이었고, 자신을 반대하는 정치적인 견해와 갈등을 겪는 대통령이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정치인들과 비교해볼 때 남다른 점은 국민에 대한 링컨의 무한한 신뢰였다. 필자가 스필버그의 연출에서 주목했던 점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국민에 대한 신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영화에서 잘 나타나 있듯이, 사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이지만 정작 많은 정치인은 자신을 뽑아준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려고 할 뿐이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국민을 위해 옳은 것이었음을 설득하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재선이 안 될 경우를 대비해 먹고 살아갈 궁리를 할 뿐이다.
 
그러나 링컨은 달랐다. 아내와의 갈등에서 나타나 있듯이, 링컨은 결코 개인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또한 참모들과의 갈등에서 표출되고 있듯이, 정치적인 술수를 부리지 않았다. 필요하면 자신이 직접 상대를 찾아가 설득하였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점은 링컨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전장에서 거리에서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보여주었던 국민에 대한 신뢰는 국민에게서 귀를 기울이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비록 구체적인 신앙언어로는 표현되지 않았어도 신앙인의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드러내는 모습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솔로몬은 하나님에게 지혜와 온갖 부귀영화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 계기는 그가 하나님에게 '듣는(부드러운) 마음'을 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왕권의 강화가 필요한 때에 솔로몬은 부귀영화를 구하지 않고 듣는 마음을 구했는데, 하나님은 이것을 흡족하게 여기셨다. 이는 그가 하늘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땅으로부터는 백성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을 달라는 기도를 드렸기 때문이다. 중국 고전 5경 가운데 하나인 서경에 보면 "하늘은 내 백성이 보는 것으로부터 보고 내 백성이 듣는 것으로부터 듣는다"는 말이 있다. 맹자는 이 말을 민심이 곧 천심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훌륭한 통치자는 하늘의 뜻에 귀를 기울이되 바로 백성들을 통해서 들었다. 보기에 따라선 자연법 사상을 말하는 것 같고, 스필버그는 국회 토론의 과정에서 배우들의 입을 통해 다분히 그런 맥락에서 당위성을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 링컨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현실로 옮기는 일이었다. 이미 창조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현실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인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인간으로 이 땅에 살아갈 이유인 것이다. 링컨은 적어도 노예제도와 관련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이 땅에 보내진 사람으로 평가함에 결코 과하지 않을 것이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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