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3년 03월 28일(목) 14:32

파파로티(윤종찬, 드라마, 15세, 2013)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는 대체로 감동적이다. 특히 그것이 예술과 관련된 것일 때는 더욱 그렇다. '파파로티'는 한국의 파바로티를 꿈꾸는 한 고등학생의 실화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그가 과거 조직폭력배의 일원이었다는 것이다. 단정치 못한 행실에 몸에는 온갖 문신을 하고 목에는 금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조폭에 속한 사람이었지만, 가창 실력만은 남달랐던 당시 고등학교 3학년, 국내 유명 콩쿠르에서 수상을 하면서 유명해지고 마침내 스타킹에 출연하여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김호중 군의 이야기다. 그리고 자신의 아픈 상처를 딛고 일어나 오직 제자의 꿈을 이루도록 헌신했던 서수명 선생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편의 드라마 같은 삶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만한 감동적인 영화로 만들어졌다. 실화와 영화 사이에 무엇이 더 감동적일까? 참으로 구분이 애매모호할 것 같다. 영화는 실화만큼 그렇게 리얼하지 못했을 것이고, 실화역시 영화만큼 그렇게 감동적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파파로티'는 무엇보다 '호로비츠를 위하여'(권형진/윤종구, 2005)를 생각나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새롭지는 않다. 두 작품 모두 음악영화로 만들어진 것이고, 다만 악기가 피아노에서 성악, 그리고 대상이 자폐증 아이에서 조직폭력배 고등학생으로 바뀌었고, 또 음악을 향한 열정이 선생님에게서 제자에게 옮겨졌을 뿐이다. 두 영화 이야기는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양하게 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학생의 재능을 알아보고 제자의 앞날을 위해 끝까지 헌신한 선생님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보자. 다시 말해서 자폐증을 극복하고 피아니스트가 되기까지 또 조폭의 일원에서 성악가가 되기까지의 고통과 어려움이 없지 않을 것이고, 꿈과 예술이 인생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지만(사실 예술의 구원론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피아니스트'를 다룰 때 썼기에), 무엇보다 제자의 앞날을 위해 헌신하는 스승의 진정한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영화다. 새삼 스승이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스승과 제자의 현실을 감히 단언할 수 없지만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들은 한 결 같이 안타깝다. 스승 앞에서 나대지 말라고 한다. 스승보다 앞서지 말라는 말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야 했던,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잔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사실 스승이 갖고 있는 능력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물론 가르치는 동안에도 연구결과를 내야하고 또 틈틈이 예술 활동에 전념해야 하는 스승의 경우에 능력발휘의 우선순위는 자신에게 있다. 그러다보니 꾸준히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찾아야 한다. 제자들은 스승의 연구를 위한 도구가 되고 혹은 연주나 공연의 티켓과 작품의 주요 소비자로 전락한다. 이런 와중에 제자보다 스승이 앞선다면, 그야말로 스승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 이래서 스승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주장하고 자신의 예술을 강요한다. 제자의 학문이나 예술세계를 열어주기보다는 자신의 학문과 예술 세계로 이끌어 들이려고 한다. 주입식 교육을 선호한다. 적어도 그런 한에서 스승은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승은 행복을 주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다시 한 번 질문해보자. 멘토로서 스승의 역할은 무엇일까? 적어도 연주활동이나 연구에 전념하고 있든 아니면 그저 가르치는 자의 입장에 있든 스승의 능력은 제자들을 발견해서, 그들의 능력을 키워주고, 그들이 자신의 세계를 찾아 나서며, 마침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공간을 마련하도록 돕는 자가 아닐까? 그리고 필요하다면 제자들을 위해 자존심을 포함해 자신의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진정한 멘토의 모습이 아닐까?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나 '파파로티'에서 우리는 스승의 마지막 자존심을 제자들을 위해 내려놓는 모습을 보게 된다. 두 작품 모두 실화이니 더욱 귀감으로 삼을 만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담임 교역자와 부교역자의 관계를 연결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파파로티'는 이런 멘토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속의 음악 선생님(한석규 분)은 한때는 잘 나가던 성악가였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는 중에 목에 이상이 생겨 성악가로서의 꿈을 접어야 했다. 지방에 있는 예고에 재직 중이지만, 동창이나 선후배 관계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과거는 단지 트라우마일 뿐이다. 그런데 이장호(이제훈 분)의 재능을 알아본 후로 그는 오직 그의 밝은 미래를 위해 자신의 재산을 털어가며 돕고 심지어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접는다. 마지막 장면의 노래가 말해주듯이, 결국 그는 '행복을 주는 사람'이었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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