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내 손을 잡아라- 김영희 권사(하)

딸아 내 손을 잡아라- 김영희 권사(하)

[ 향유와 옥합 ]

강영길
2013년 03월 15일(금) 15:44
서른아홉에 남편이 먼저 떠났을 때 슬픔이 정말 컸다. 그런데 아들이 죽으니 남편의 죽음이 주는 슬픔은 아예 슬픔도 아니었다. 아들이 죽으면서 남편의 죽음이 줬던 슬픔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남편이 세상을 뜰 때 많은 빚을 남겼다. 해녀인 김 권사는 물질을 하여 세 남매를 키우면서 이 빚을 다 갚았고 교회에도 헌신했다.
 
서도 교회는 1957년에 김숙정 권사의 가정에서 가정교회로 출발한 후 건축 기술자도 없이 교인들끼리 교회를 지었다. 인건비를 아끼려고 박처녀권사님 김쌀님 권사님 박형림 권사님 이근희 권사님과 함께 교회를 직접 뜯었다. 건물을 다 손수 뜯은 뒤에는 여자들이 질통으로 등짐을 져서 벽돌과 모래를 직접 날랐다. 동네 사람들의 시선도 무거웠고 교인들 간에 갈등도 있었다. 김 권사는 키가 164cm에 몸무게는 평생 40-42kg인데 교회를 다 짓고 나니 36kg로 줄었다.

   
 
교인들이 차마 말로 하기 힘든 고생을 했으나 그 일을 통해 교인들이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교회 일이란 두세 사람만 합심하면 일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두 세 사람만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면 교회 일은 안 될 리가 없다. 상처받는 다는 것은 일한다는 말과 같다. 일하지 않으면 상처도 없다. 상처받는다는 말은 믿는다는 말과 같다. 믿지 않으면 상처도 없다. 그 상처를 어떻게 싸매는지, 어떻게 치료하는 지를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게 은혜다.
 
큰 아들 일현이는 서도 교회 장로가 되었고 딸은 집사가 되었다. 김 권사는 교회를 지을 때 내벽에 붉은 벽돌을 한 겹 헌금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그 벽돌은 늘 교회의 몸이 되어 있다. 교회 건물에 손을 댈 때마다 교회의 몸을 만들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다.
 
김 권사에게는 잊지 못할 특별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나무로 불을 넣어 밥을 하던, 아주 오래 전 이야기다. 이제는 돌아가신 김춘범 목사님께, 교회는 가난해서 쥐꼬리 만 한 월급밖에 드리지 못했는데 목사님이 교회를 짓겠다며 자기 월급으로 꼬박꼬박 시멘트를 사 모으셨다.
 
어느 날 김 권사가 목사님을 뵈려고 사택에 갔다. 사택 문을 열려고 미닫이 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안에서 목사님 음성이 들렸다.
 
"여보 빨리 가서 불 때소."
"알았어요. 가요."
"어서 가서 불 때라니까."
 
김 권사는 두 분이 언쟁을 하는 줄 알고 차마 문을 열지 못했다.
 
"아, 어서 불 때라니까. 교인들이 걱정해요. 아궁이에 연기가 나야 교인들이 밥 하는 줄을 알아요."

목사님 댁에 먹을거리가 없었던 것이다. 월급으로 곡식 대신 교회 지을 시멘트를 사신 목사님, 그러나 교인들이 걱정할까봐 매일 불을 지펴서 연기를 냈던 목사님, 굶으며 물로 배를 채웠을 목사님, 그 남편에게 순종하며 불을 지폈을 사모님을 생각하니 김 권사는 너무나 부끄럽고 가슴이 아팠다.
 
   
세상이 교회를 욕하고 목회자들을 손가락질해도 김 권사는 지금도 이 땅 어디엔가 그런 목사님들이 계신다고 믿는다. 꼭 우리나라가 아니라도 이 세상 어딘가에 그 분들처럼 연기를 지펴 교인들 몰래 굶주리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목회자가 있음을 믿는다. 그 분들의 희생과 기도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전파됨을 믿는다.
 
모든 목사님의 설교를 잊는다 해도, 설령 성경 구절들을 거의 다 잊어버리고 찬송가 가사마저 다 잊는다 해도 김 권사는 목사님의 그 섬김을 천국에 갈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강영길/온누리교회, 소설가, 내인생쓰기 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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