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과 거짓말의 상관관계

중독과 거짓말의 상관관계

[ 말씀&MOVIE ] 말씀&MOVIE

최성수 목사
2013년 03월 13일(수) 15:10

플라이트(로버트 저메키스, 드라마, 청소년관람불가, 2013)
 
영화는 실제로 일어난 몇 개의 항공사고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사건으로 재구성하였다. 실화에 근거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영화에 나타난 그대로의 사건은 아니다. 추락 직전에 비행기를 뒤집은 것이나 기내에서 승객들을 구출하기 위해 희생적인 노력을 기울인 승무원들의 모습은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저메키스 감독은 이런 항공기 사건 안에 한 남자의 이야기를 삽입해 넣었다. 기장 휩 휘태커(덴젤 워싱턴 분)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다. 알코올 때문에 이혼했고, 아들에게조차 매몰차게 외면당해 집밖으로 쫓겨나는데, 이게 다 알코올 때문이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영웅 대접을 받는 사건이 일어난다. 104명의 승객을 태우고 가는 비행기가 고장으로 추락의 위기에 처했을 때 능숙한 실력과 뛰어난 기지를 발휘해 불시착시킴으로써 몇 명의 희생자만 내고 모두를 살려낸 것이다. 영웅으로 추대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여러 베테랑 파일럿에 의해 모의 비행을 실시해본 결과 비행기는 승객 전원이 사망할 정도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어떤 유능한 파일럿도 해낼 수 없었던 일을 휩이 해낸 것이다.
 
그러나 음주상태에서 운전했다는 것이 밝혀질 경우 희생자들에 대한 책임 때문에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휩은 당시 비행기 운행과 관련해서 자신을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가 말한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거짓말을 하며 사람들을 설득했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친구들의 호의와 변호사의 능숙한 변론으로 위기를 모두 넘긴 휩은 마지막 관문인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하게 된다. 한 번의 거짓말을 통해 청문회를 잘 마치면 모든 위기를 넘기게 되고 그는 영웅이 되어 대중들 앞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었다.
 
알코올 중독이 되기까지, 그리고 알코올 중독자로 살아가는 동안 거짓말은 그의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청문회에서, 그것도 이미 사망한 자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거짓말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 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청문회에 앉아 있는 중에도 그는 이미 밤새 마신 술 때문에 취한 상태였다. 모든 것을 자기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돌릴 수 있었던 순간에 그는 영웅이 되기보다 진실을 택했다. 자신이 술을 마셨고 음주 운전을 했다고 시인한 것이다. 결국 감옥에 수감되고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재난 영화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비행기 사고 장면이 대단히 리얼해 보는 재미가 있지만, 그 이외에도 한 인간이 알코올로 파멸해 가는 과정과 그 결국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환기하는 점은 각종 중독과 거짓말의 상관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떨쳐버릴 수 없는 질문은 이것이다. 영화는 왜 마지막 순간에 휩의 입을 통해 진실을 말하도록 했을까? 그것은 영화 전체, 아니 휩이라는 캐릭터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영화에서는 마약과 알코올 그리고 니코틴 중독이 나온다. 중독이라는 것이 의존적인 상태를 말하고,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중독자들에게 공통적인 부분은 자신의 행위를 감추기 위해, 다시 말해서 외부의 통제를 피하기 위해 주변인에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알코올이나 약물 그리고 니코틴에 대한 의존의 정도가 더욱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되고 거짓말은 도를 넘어서게 되며 결국엔 주변인들조차도 통제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중독에 이르기까지 거짓으로 일관된 삶은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인격의 파괴로 이어진다. 영화는 비록 휩의 알코올 의존에만 집중하고 있어도 거짓말하는 마약과 니코틴 중독자를 간간이 등장시킴으로써 이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주목할 점은 거짓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온 휩이 결정적인 순간에 거짓을 피하고 진실을 선택한 것 때문에 휩의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삶의 위기와 전환점을 경험한다. 휩에게 그것은 청문회 장면에서 휩이 놓인 상황이었다. 한 번의 거짓말을 통해 영웅으로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는 진실을 선택함으로써 위기를 피하거나 모면하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돌파했다. 다시 말해서 삶의 위기와 전환점을 만나는 순간에 우리가 결코 회피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진실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와 상관하지 않고 나 스스로의 진면목을 숨기거나 피하지 않으며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새로운 인생의 길이 열리게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것을 회개라고 말한다. 회개 없는 삶에서 새로운 인생은 없다.

최성수 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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