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일들④

잊을 수 없는 일들④

[ 여전도회관 건축이야기 ]

이연옥 명예회장
2013년 03월 04일(월) 11:30
건축을 협력해 주신 분들은 여전도회원인 여성들만 아니라 또한 교단을 초월하여 귀한 어른들 일일이 이름을 소개 못함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림인식 목사(1983년~1984년, 총회장, 총회 유지재단 이사장)께서는 총회장과 이사장의 책임을 지고 계시면서 여전도회관 건축위원회 자문위원으로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신 분이었다.
 
잊을 수 없는 일 가운데 한가지 생각나는 것은 여전도회에서 미국장로교 선교본부로부터 대지를 기증받아 건축을 해야 하는데 기증받은 대지를 총회 유지재단에 예속시켰기 때문에 유지재단 이사회에 건축허가를 요청했더니 림인식 목사께서 하시는 말씀이 "건축을 하겠다고 하니 허락하는 일은 쉽지만 건축비 문제를 생각하면 겁이 나는 일이다"하시면서 아이들이 호랑이를 잡는 것이지 어른은 못 잡는다고 하시며 웃으시던 말씀을 기억하고 건축하는 동안 많은 의미를 간직하며 여전도회원은 철없는 아이들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건축문제로 섭외활동을 할 때 아직도 한국사회는 여자라는 이유로 약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중요한 일은 자문위원 지도, 조언을 받을 뿐 아니라 건축업체(한라건설)와의 계약체결, 임대분양, 용역단체 계약, 심지어 건축허가, 준공허가 문제로 종로구청장 방문까지 이사장께서 동행해 주신 일, 또 건축위원들이 크게 감사하는 것은 림 목사께서 1백주년 기념관 관리운영이사장으로 계실 때 건축비 문제에 힘든 고비(1986년)를 1억원의 거액을 건축비로 보조해 주신 일은 도무지 잊을 수 없다.
 
이의호 목사(당시 교단 총무)께 각별한 감사를 드린다. 여전도회관 대지를 기증받게된 배경에 숨은 공로자들이 많이 계신다. 그중에 이의호 목사(1982년)께서 총회 총무로서 여전도회관 건축의 필요성과 선교1백주년을 기념하는 시점에서 여성들을 위해 선교사 부지를 무상양도 받도록 미국 장로교 본부에 강력한 요청을 해 주셨고 미국 장로교 총회에 참석하는 기회에 직접 담당자를 만나 간청하신 일을 후에 맥크라우드 총무(미국 선교부)께서 웃으시며 "여전도회원들의 간절한 기도로 이룩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의호 총무께서 2시간 동안이나 나를 설득했다"고 했다.
 
그후 선교부 대지 일부가 남장로교회 소속으로 되어있는 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건축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본부를 방문할 계획을 하고 있던 중 미국 남북장로교가 하나로 통합되는 유니온 총회(1983년 6월 6일~15일)에 이의호 총무와 임옥 목사와 본인도 함께 참석할 기회에 저는 대지문제 해결을 위해 커트패트릭 총무 면담을 요청했더니 시간관계로 밤 11시로 약속받았으나 혼자 용기가 나지 않아 이의호 목사께 같이 만나자로 도움을 청했다. 그랬더니 이 목사는 교단 일로 아직 저녁도 드시지 못한채 자정이 넘도록 회관부지를 무상양도 받도록 도와주신 일 또한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백윤종 장로께서도 자문위원으로 설계부터 건축업계 입찰 등 건축에 대한 조예가 깊은 어른이시기 때문에 참으로 크게 도와 주신 분이었다. 특히 그 어른이 아니시면 아무런 경험도 없는 건축위원만으로 18층 고층건문을 짓는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인데 그 어른이 일일이 건축에 대한 지식과 임대하는 방법들을 전체 건축위원회에서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도록 격려해 주셨고 당시 여전도회 실행위원들께서 백윤종 장로의 의견을 받아들여 오늘에 이 건물이 서게된 사실을 생각하면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지금도 기억되는 말씀은 "1천평이 넘는 이 금싸라기 같이 넓은 대지에 3층 정도의 여전도회관을 지으면 5년도 못가서 주변에 높은 빌딩 숲속에서 오막살이와 같이 될 것이니 이 지역은 상업지구이니만큼 22층까지는 건축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18층 정도는 지어야 합니다"라고 백 장로와 최영집 감독이 적극적인 지도, 조언해 주신 덕분에 오늘날 이 회관을 지을 수 있었다고 본다. 특히 최영집 감독은 아름답고 뜻깊은 건물설계를 해주시고 영적이며 정신적인 면을 섬세하게 구성해 서울 시내에서 특별한 건물로 인정받게 해 주셨다. 최 감독의 공이 크다고 본다. 더욱이 건축에 무경험자이고 가정주부인 사람들의 단체가 건축주가 되어 감독이 무시로 건축 상의를 하고자 하여도 건축주를 만나기 어렵고 한가지 일도 꼭 결의를 거쳐야만 하는 건축위원장의 고집에 답답한 면이 많았으나 말없이 참으면서 건축을 봉헌하게 되었다.
 
이연옥 명예회장(전 건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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