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일들③

잊을 수 없는 일들③

[ 여전도회관 건축이야기 ]

이연옥 명예회장
2013년 02월 25일(월) 11:33
고인이 되신 김장옥 부회장께서는 여전도회 운동에 대선배로서 여전도회 발전에 공이 큰 분이시다. 그는 초창기 여전도회 운동에 있어서 경북연합회 대표로 선교정신을 강화시킨 분인데 여전도회 전국연합회(1973~1975) 부회장을 역임하시고 어디에 가나 선교헌금 모금에 특별한 은혜를 받으신 분으로 1975년~1980년까지는 캐나다에서 아들과 함께 계시면서도 여전도회 전국연합회를 잊을 수 없어 하시던 그 모습은 후배로서 훌륭한 선배를 모신 행복감을 금할 수 없었다.
 
김장옥 전도사는 건축헌금 10만원 영생회비 모금을 위해 "나는 버스표만 있으면 얼마든지 모금할 수 있다"고 말하던 음성이 내 마음에 살아 있다. 그를 통해 여전도회 정신을 이어받은 경북연합회 안에 후배들이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이수경 권사, 박경남 권사, 김광순 권사 외 여러분을 손꼽으며 기뻐하셨다. 사실 경북지역에서 건축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신 김장옥 회장의 정신을 계승받아 여전도회 혼이 들어가 계신 분들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김장옥 회장은 한번은 "내가 내 호적을 잊을지라도 여전도회 일을 잊어본 일이 없고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을 잊을 수 있겠는가. 캐나다에 있는 동안에도 여전도회를 잊지 않았다"고 했다. 여전도회 건축은 여전도회에 '미친' 선배들의 정열의 결정체라고 생각한다. 김장옥 회장은 1985년 5월 별세했다.
 
제33대 전국연합회 양성담 회장께서 부회장 4년 동안 회장인 나를 극진히 도와주었다. 그는 말씀에 깊이가 있고 전도사 출신이요 6남매를 양육하신 자애로운 어머니셨다. 1981년~1985년까지 부회장으로 건축초기 대지선정과 건축모금, 건축기공식 등 건축에 기초를 놓은 시기에 그는 지혜와 온유함으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시어 크게 여전도회에 공을 세우신 분이시다. 회장이 건축위원장을 겸한 관계로 양성담 부회장께서전국연합회 운영에 대한 관리를 맡아 수고하셨다. 그는 사실 회장직을 감당해 주셨기에 회장은 건축관계에만 전념할 수 있었으며, 그래서 건축진행에 차질이 없었다. 양 회장께서는 참으로 위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덕망이 높으신 분이었다. 나는 그 어른이 늘 하시던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하루는 건축법에 따른 예술작품 제작 때문에 상의를 드리니 "여성들이 복음의 나팔을 불기 위해 이 건물을 짓고 있으니 어떤가?"라는 말씀을 하셨다. 오늘 옥외 조각상은 여성이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하는 나팔수로 상징하여 창작 조각되었는데 근본 아이디어는 양 회장이 주신 것이었다. 또한 영원한 친구 김금련 회장과 양성담 회장 두 분께서는 기증도 해 주셨다.
 
1985년 12월에 하루는 18층 건물 골조공사가 끝난 광경을 같이 바라보다가 "이 회장, 나는 죽어도 한이 없소. 이런 건물을 한국 초대 선교사 센터 위에 세계선교를 위해 우뚝 세웠으니 너무 감사합니다."하시면서 좋아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양 회장께서 1986년 3월 3일 별세하시기 직전인 같은 해 1월 14일 전국연합회 임원회를 소집해 천만원 이상 건축헌금 모금을 해오신 일과 전국연합회 실행위원은 1백50만원에서 3백만원 이상 헌금할 것을 결의해 주신이 일도 있었다.
 
1986년 2월 26일로 기억하는데 아침 일찍 여러가지 문제를 의논하려고 전화하면서 "양 회장님, 건축헌금을 작정하십시다."라고 했더니 양 회장이 웃으시면서 "나는 이 회장 말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순종하겠다"고 하셨다. "나는 회관만 짓게 된다면 죽어도 좋아"라고 하시던 말씀을 기억하면서 회장님 생존 시 회관 봉헌식이 거행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애석함을 금할 길이 없다.
 
이연옥 명예회장(전 건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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