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2월 4~9일

[가정예배] 2월 4~9일

[ 가정예배 ] 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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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2월 01일(금) 10:54

월-마음을 넓히라
본문 : 고후 6:11-13
찬송 : 455장
 
탈무드에 나오는 얘기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웃집에 가서 낫을 빌려오라고 했는데 빈손으로 왔다. 며칠 뒤 그 이웃이 호미를 빌리러 오자 아들이 빌려주지 말자고 했다. 아버지는 "이웃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우리도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복수와 증오이고, 상대방의 행동이 어떠했든지 상관없이 필요할 때 도울 수 있는 것은 용서이자 사랑이다"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넓은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
 
태평양 바다는 세계 모든 대륙의 온갖 오염물들이 다 흘러 들어와도 이를 정화시키고 새롭게 살려낸다. 바다가 워낙 넓어서 그런 것이다. 신앙이 성장할수록 포용력 있는 마음의 그릇을 준비해야 한다. 그 그릇 안에 하나님은 은혜와 축복을 담아주시는 것이다. 마음의 용량이 작은 사람은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비판적이요, 부정적이다. 어쩌면 잘못된 사상 등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을 넣을 자리가 부족한지도 모른다. 내 고집과 아집을 버리든지, 아니면 용량을 크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넓히는 작업이요, 포용의 마음이다.
 
그리스도인이 '속 좁은 사람', '아집과 고집의 사람', '편견이 강한 사람', '꽉 막힌 사람', '답답한 사람', '옹졸한 사람'이란 얘기를 들어서는 안된다. 진리 외의 것에는 언제나 양보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복음 외의 것은 어떤 것도 상대적 진리일 뿐이다.
 
전도도 넓은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이 한다. 어떤 아내가 예수님을 믿은 다음엔 마음에 평화가 오는 것을 느꼈다. 매일 만취되어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보아도 잔소리하지 않고, 해달라는대로 해주었더니, 남편이 자신도 교회에 가겠다고 말했다. 넓은 마음 속에 남편의 모든 행동까지 포용하다보니, 더 큰 열매를 거두게 된 것이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많은 은사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중심이었다. 이제 넓은 마음을 갖고 서로를 이해하라고 바울이 부탁을 하고 있다. 마음이 넓어지면 이해하는 마음, 배려의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자신의 선입견을 접고, 상대방을 인정하려고 할 때 나도 상대방으로부터 대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잘못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14년간 모진 고난을 겪다가 총리가 되었다. 후에 형들과 상봉할 때 형들은 떨었지만, 요셉은 형들을 용서해 주었다. 하나님은 그런 넓은 마음의 사람을 쓰신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처럼 남의 입장에 서려는 정신을 갖고 산다면 이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문제가 있는 교회, 성도들의 마음은 대부분 닫혀있다. 조금만 넓은 마음으로 본다면 문제보다는 해답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음을 넓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성장이다.
 
<오늘의 기도>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넓은 마음을 배우게 하옵소서. 내 고집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강물에 나를 잠기게 하소서. 세상 사람들에게 넓은 예수님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경덕목사 / 가나안교회


화-길에서 다투지 마세요
본문: 창 45: 24
찬송가: 286장
 
헨리 나우웬의 '마음의 길'이란 책은 이웃을 잘 섬기는 두 가지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첫째, 다른 사람의 과거로부터 죽어야 한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과거를 너무 잘 알고 있다. 특히 그들의 단점까지 알기 때문에 가까이 대하는 순간 많은 과거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거의 창을 통해 그 사람을 대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으며 잘 섬길 수가 없다.
 
둘째,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로부터 죽어야 한다. 창세기 45장의 요셉과 형님들과의 만남은 형들이 요셉을 미디안 대상에게 판지 22년이 지난 후의 사건이다. 22년 전에 자신에게 상처와 아픔을 준 형들을 대할 때 그들에게 받은 과거의 상처와 아픔에 대한 기억이 죽었으며, 그 때 형들에게 살려 달라며 애원했음에도 거절당한 분노가 죽었기에 오히려 형들과 형들의 가족들을 섬기는 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고 말했다.
 
꿈을 꾸었던 요셉은 가장 가까운 형들에 의해 꿈이 박살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요셉은 꿈을 이루었고 초라하게 양식을 구하러 온 자기를 짓밟았던 형들 앞에 서있는 것이다. 요셉은 그들을 걱정하며 그들을 섬기기 위해 선물과 곡식 뿐 아니라 길에서 먹을 양식을 주면서 "돌아가실 때 지난일로 인하여 길에서 다투지 마십시오"라고 부탁하고 있다. 요셉은 1백80도 변했다. 자기에게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드렸다는 증거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사람에게는 천성적 기질이 있다. 기질은 유전학적으로 타고난 성품의 결합체이다. 고로 사람이 고유하게 갖고 있는 성질, 성미, 체질이 있다. 오랜 유전적 요인에 의해 형성된 천성이다. 그러나 이 기질이 교육과 훈련 혹은 신앙적 훈육으로 닦이면 제2의 천성인 성격이 된다. 우리는 좋은 신앙적 성품, 성향을 간직해야 한다. 이런 성격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 표현되는 태도, 즉 대인관계 속에 나타나는 것이 인품 혹은 인간됨(인격)이다. 요셉은 아버지의 편애 속에 자랐으며 형들의 잘못들을 고자질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훈련과 연단을 통해 성숙한 성격와 인격을 갖춘 화해자의 모습이다.
 
오늘 나의 모습은 요셉처럼 성숙한 조정자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과거의 쇠사슬에 매여 미래를 닫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인가? 과거로부터 새롭게 일어난 새사람이 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시선을 미래에 두는 지혜를 배우게 하옵소서. 오늘을 살고 있으면서 과거의 종이 되어 밝은 미래를 어둡게 물들이는 우둔한 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과거로부터, 분노로부터 참 자유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정우목사 / 안동서부교회


수-은총의 등불
본문: 열왕기하  8:16-19
찬송가: 384장
 
주전 9백30년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은 전쟁을 계속하면서 각자의 왕권과 통치권을 강화해 가고 있었다. 북 왕국 초대 왕 르호보암은 통치권 강화의 일환으로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게 하였고 이러한 영향은 후임 왕들에게 그대로 이어졌는데 특별히 아합 왕은 이세벨을 왕비로 맞아들인 후 영향을 받아 여호와의 신앙을 배척하였다.
 
아합은 여호와의 제단을 헐고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 선지자들이 마음껏 포교하도록 장려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에 진노하여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한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면서 3년 6개월 기근의 재앙을 내렸다.
 
이때, 다윗의 후손으로 신실한 신앙의 사람이었던 남 왕국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와 이스라엘이 골육상쟁의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다 생각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방안을 강구한다.
 
여호사밧은 생각 끝에 북 왕국 아합 왕과 사돈을 맺기로 작정한다. 여호사밧의 이러한 방안은 효과가 있어 평화가 찾아 왔다. 그러나 이러한 혼인동맹의 결과는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다. 그것은 태어나서 결혼할 때까지 우상만 섬기는 아버지 아합과 어머니 이세벨을 보고 자란 아달랴가 남편 여호람 왕까지 우상을 숭배하게 함으로 지금까지 우상을 숭배하지 않은 남 왕국에 바알 우상이 시작되었고 남 왕국 역시 북 왕국처럼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교훈을 보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신실하게 살아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과 가장 선하시고 온전한 목자임을 믿어야 한다. 그리하여 신앙과 삶은 하나를 이루어야 한다. 언제나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믿고 맡기고 믿음으로 살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가장 선하시고 온전하신 길로 인도하신다.
 
둘째, 하나님의 사람이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갈 때 장래가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여호람 왕이 부인 아달랴의 영향을 받아 이스라엘처럼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였으니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징계와 벌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래 전에 여호람의 조상인 다윗에게 말씀하신 약속 때문에 여호람과 유다 멸하기를 유예하셨으니 이는 "다윗의 후손에게 항상 은총(등불)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다윗처럼 한 사람이라도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놀랍다는 것을 기억하자.
 
<오늘의 기도>
은혜와 사랑이 무궁하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항상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며 살게 하시고,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현용목사/ 빛과소금교회


목-불, 불, 불
본문: 단3:19~23
찬송가: 407장
 
시험의 불꽃

제한된 불길에는 마음을 끄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따스함과 편안함,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우리 하나님도 소멸하는 불이시기에 당연히 그 모든 장점과 속성을 지니고 계시다. 재해나 사고의 우려가 없는 불꽃은 자석과 같은 매력이 있어서 우리를 본능적으로 끌어당긴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아가려고 할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불꽃에 대비하라

하나님의 자녀라면 모두 현재 각기 다른 온도의 불 시험을 겪고 있거나, 불 시험을 앞에 두고도 모르거나, 이미 통과했지만 다음번에 찾아올 불 시험을 더욱 잘 통과하기 위해 좀 더 이해가 필요한 상태에 있다. 각자의 삶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불의 온도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각 사람을 사용하실 하나님의 계획,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기 위한 계획의 크기에 알맞은 뜨거움이다. 중요한 것은 성경 속 믿음의 주인공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의로운 삶을 살던 중 뜨거운 열기를 만났다는 사실이다. 불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는 결코 추측할 수 없다.
 
불꽃의 온도를 주관하는 자를 생각하라

우리를 시험하는 하나님의 불을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첫째, 우리가 만나게 될 어떤 시험도 하나님께 당황스러운 것은 없다는 것을 인식하라. 그 분은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를 정확히 아시며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잊지 않으신다.
 
둘째, 우리의 반응을 시험하기 위해 힘겨운 상황이 계속 되도록 허락하실 때에도 하나님이 온전히 옳고, 의로우며, 친절하심을 깨달아야 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알게 되면 대처하는 데 필요한 은혜를 쉽게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주님께 드릴 것은 오직 경배와 신뢰뿐이다. 그리하면 시험을 통과했을 때 하나님은 그 공의에 따라 더 큰 축복과 상급을 주시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공의로운 하나님께 순복하는 일은 절대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감사하며 불길 속으로 들어가라
 
하나님은 뜨거움에 놀란다거나 겁내는 일이 없으시다. 뜨거움이라는 성질 자체도 그 분이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 분은 불연성(不燃性)이시다. 어느 날, 하나님의 세 친구가 이글거리는 용광로 속에 던져졌을 때 불현듯 그 분이 나타나신 일이 있다. 그 열기에 세 사람을 불 속에 던지던 병사들이 타 죽을 만큼 어마어마한 불이었다. 하나님은 그 불길에서 그 분의 친구들을 완전히, 기적적으로 보존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그 용광로 속을 거닐기까지 하셨다. 화형을 명했던 폭군은 결국 온 나라에 '이 하나님'만을 인정하고 경배하라는 어명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확실히 하나님은 전혀 다른 존재, 다른 차원에 속한 존재이시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46:10)."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시련을 통해 하나님과 더욱 친밀하고 예수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희순목사 / 목민교회


금-가정의 우상을 제거하라
본문: 역대하 15:16-19
찬송가: 322장
 
오늘 본문 말씀은 아사 왕의 통치 기간에 있었던 신앙적인 결정들을 보여준다. 아사 왕은 이 본문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가정의 종교개혁을 이루도록 한 가지 메시지를 주신다.
 
가정의 우상을 제거하라 하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 16절에 아사 왕은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그의 태후의 자리를 폐하고 그의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다. 이것을 보면 얼마나 아사 왕이 우상숭배에 대해 단호하게 척결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아세라 상은 이미 1차 종교개혁 때 나라 안에 있는 것들을 제거했다. 그 후에 어머니 마아가가 몰래 아세라 신상을 궁전 안에 세웠던 것이다. 아사 왕은 단호하게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우상숭배의 죄악을 용납하지 않았다. 가족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되어야 가족과의 관계도 바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가족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신앙의 대상으로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 외에는 가족을 사랑하며 섬기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족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하도록 하는 것은 그것이 가족을 축복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아세라는 '행복한'이라는 어원에서 유래된 단어인데 하나님을 떠나 행복을 구하는 대상은 아세라 신상과 같은 것이다. 우리 가정에 하나님을 떠나 행복을 추구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자. 부모의 신앙이 바로 서야 자녀의 신앙도 바로 설 수 있다. 부모가 돈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자녀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하나님으로 인해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예수님을 드러낼 때 강요 없이 가정의 믿음을 하나로 세워갈 수 있다.
 
믿음의 가장은 가정에서의 우상을 제거해야 한다. 자녀들의 우상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예배보다 공부를 잠자기를 성공을 우상으로 섬기는지 살펴야 한다. 자녀라면 자신의 우상을 먼저 제거하고 가족의 우상을 제거하도록 기도하며 권해야 한다. 믿는 가장은 명절에 제사 대신에 추도예식으로 드려야 한다. 그럴 권한이 없다면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형제나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본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다른 것을 의지하는 우상을 제거해야 한다. 점치는 것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팔자가 없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 안에서 복되게 살아갈 수 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가족 안에 숨겨진 우상들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따르게 하소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을 제거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상원목사 / 목천교회


토-새로운 출발
본문: 사도행전7:1-4
찬송가: 436장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새해의 시작인 첫 달이 지나갔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새해를 시작하면서 다짐했던 마음이 해이해지지는 않았는가?
 
사람들은 대부분 시간이 흘러갈수록 결단력이 약해진다. 그래서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성공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새롭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작심삼일을 극복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나태해진 마음을 새롭게 하고 다시 일어나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유익이 있기를 바란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께 인정받고 복을 받는 사람이 되었을까?
 
첫째, 신앙의 새로운 출발은 빠를수록 좋다. 아브라함도 아들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다가 사라의 청으로 종에게서 이스마엘을 얻는 실수도 했고 흉년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갈 때는 죽음이 두려워서 부부 사이를 오누이 사이라고 했던 적도 있다. 이런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즉각적으로 순종했다는 것이다. 본문 2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3절에서 명령하셨고 4절에서 아브라함은 순종했다. 창세기 22장에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에도 그는 지체하지 않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곳으로 갔다. 순종은 빠를수록 좋다.
 
둘째, 새로운 출발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창세기 12장을 보면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 중에 대표적인 두 사람을 들 수 있다. 아브라함과 롯이다. 두 사람은 꼭 같은 여정으로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같이 하란을 거쳐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나 달랐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로 받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 사람과 의논하지 않고 순종했다. 그 말씀이 그가 가는 길에 등이 되고 빛이 되어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지는 신실함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것이다.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은 복되다. 그 말씀과 함께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 주시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길에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야 한다.
 
중도에 포기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추수 때는 반드시 있고 열매도 반드시 있다. 그래서 선을 행하다가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이다(갈6:9).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다(고전 15:58). 그래서 어려움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믿음이다.

<오늘의 기도>
세상 것에 우리의 눈과 귀를 빼앗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준영목사 / 성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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