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만나는 방법

기적을 만나는 방법

[ 말씀&MOVIE ] 영화-더 임파서블

최성수 목사
2013년 01월 31일(목) 14:19

[말씀&MOVIE]

더 임파서블(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드라마, 12세, 2013)
 
오늘날에도 기적은 일어날까? 현대인들에게 성경이 어려운 이유는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 때문이다. 기적이란 과학적인 법칙에서 벗어난 일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적 법칙이 상식이 된 사회에서 기적이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독일 신학자 불트만은 기적을 신화적인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이 사용한 하나의 화법으로 취급했다. 성경을 현대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신화적인 요소를 벗겨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을 '탈신화화 작업'이라고 한다.
 
그런데 성경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것만이 해결책일까? 다시 말해서 오늘날에 기적은 정녕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성경을 진지하게 읽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번쯤 해보았을 질문이다. 기적은 사실이기보다 단지 의미와 해석을 염두에 둔 수사학적인 방편일 뿐인가? 영화 '진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 나오듯이 단지 어린 아이들의 꿈에 불과한 것일까?
 
우리 사회에는 기적이 있다고 증명할 수도 없고 또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상황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사람의 생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다. 우연히 일어났지만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될 수 없는 것들이다. 개중에는 조작도 있고 사기도 있어서 쉽게 믿을 수도 없지만, 그러나 성경이 기록하고 있고 일어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으니 안 믿을 수도 없다. 불가사의한 일의 인관관계를 정확히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을 접할 때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고백한다. 우리의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즉, 우리에게 일어나는 우연적인 일, 기적 같은 일이 하나님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무엇을 통해 알 수 있을까? 그런 일을 오늘날에도 만날 수 있는 길은 있을까?
 
바로 이 질문을 염두에 둔 것인지 모르겠지만, 영화 '더 임파서블'은 매우 유사한 문제의식을 갖고 영화를 제작하고 또 대답을 시도 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영화는 2004년 12월 26일 태국의 아름다운 해변 푸켓에서 발생한 쓰나미에서 생존한 한 가족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제목을 번역하면 "불가사의한 일" 정도가 되겠다. 설명할 수 없는 일, 마치 각본대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우연, 그것은 인과관계를 밝힐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사실 30여 만 명의 희생자를 낸 참사에서는 가족 모두가 생존한 경우보다는 그렇지 못한 가족이 더 많다. 가족 모두가 살아남았다면, 그들의 삶은 축복이고 또 감사할 일이지만, 그렇지 못한 가족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영화로까지 만들며 드러낼 일만은 아니었다. 살아남은 자들이 희생된 사람들을 향해 오히려 "살아있어 미안하다"며 울먹거리는 것이 서양 사람들의 정서이기 때문이다. 지난 번 쓰나미를 경험한 일본인들 역시 그리 말하는 것을 들었다. 한국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위기 가운데서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간증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참 씁쓸하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살아남게 된 이야기를 굳이 영화로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영화를 대하는 필자의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어쩌면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했던 영화사 측이나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결심을 했던 당사자 모두 단지 재난에서 살아남고 또 서로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만을 보여주려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 무엇이었을까?
 
영화는 장르적으로 재난 영화이면서도 재난 상황 그 자체에만 포인트를 두지 않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짧은 시간의 쓰나미 장면,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여느 재난 영화에서와 다를 바가 없다. 위기 상황에서 가족애와 가족의 힘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그러나 영화는 오히려 가족의 소중함보다는 어떤 연유에서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려는 의도를 강하게 내비친다. 우연이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혼잡한 상황에서 가족 모두가 서로를 찾아내어 같이 있게 된 것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 바로 이 질문에 대해 영화는 바로 그들이 불가사의한 일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를 도우려는 삶에서 가능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도 추스르기 힘든 깊은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도 도와달라는 어린아이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고 돕는 엄마, 자신을 간호하는 아들에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면 도우라는 엄마, 그리고 그 말에 따라 사람을 찾는 일을 돕는 아들, 동생을 돌보는 책임을 떠안고 끝까지 동생을 챙기는 아이. 하나같이 누군가를 도우려는 마음을 실행에 옮겼고, 그 결과 가족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불가사의한 일을 만난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을 실천에 옮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분이시니 그분을 드러내고자 할 때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 자신도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도우려 할 때, 바로 그 행위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시고 또 기적을 일으키신다. 이것이 우리가 연약함에도 작은 자를 도와야 하는 이유이다.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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