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목사를 만든 어머니다-고미녀 권사(상)

나는 목사를 만든 어머니다-고미녀 권사(상)

[ 향유와 옥합 ] 목사의 어머니

강영길 webmaster@pckworld.com
2013년 01월 24일(목) 15:30
[향유와 옥합]

어떤 말이던 결론은 아들자랑

   

제법 유명한 관광지 고군산군도 12섬의 하나인 장자도교회를 찾아갔다. 서울에서 장자도까지 결코 쉽지 않은 노정 끝에 84세의 고미녀 권사를 만났다.

"나는 익산 축복교회 담임인 이갑동 목사의 어머니요." 이렇게 입을 연 고 권사는 아들 하나 목사 되도록 세운 것과 자녀들을 믿음의 자녀로 키운 것이 자신이 한 일일 뿐 대단한 간증이 없다고 했다. 고 권사의 자녀 자랑은 끝이 없었다. 어떤 화제를 제시해도 결국 자식 자랑으로 돌아가는 고 권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를 얼마나 자랑하고 싶어 하실까? 헌신적인 자녀들을 보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시지 않을까? 그래서 고 권사의 자녀 자랑도 가능하면 그대로 살려 쓰기로 했다.

초등학생인 큰아들 이갑동 목사를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때가 20대 후반이었다. 남편이 예수 믿기 전에는 적잖은 핍박을 했다. 고 권사가 마을 청소며 멸치 사업까지 하느라 바쁜데 교회 일까지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지만 새벽종을 9년간 쳤다. 그러면 남편이 교회에서 사느냐며 자심한 구박을 했다. 술을 안 먹을 땐 아무 말도 안 하는 호인인데 술만 먹으면 그렇게 했다.

어느 날 네 살 된 딸과 고 권사가 교회에 다녀오는데 남편이 둘을 붙들더니 다리를 부러뜨리겠노라고 호통을 쳤다. 평소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하던 고 권사가 이날은 참지 않고 대거리를 했다.

"오메 이 예펜네가 나를 이길라고 대꾸하는 것 좀 봐. 인자 베랬다. 교회 댕게서 베랬어." 이러는 것이다. 고 권사는 끝까지 지지 않았다.
"교회 댕겨야 사람 되어. 하나님이 비주고 햇빛도 주지 인간이 아무리 살라고 해도 안 되아."
"진짜로 베래부렀구만. 베랬다."
"베린 게 아니고 사람되았어. 고숙자 고쌀녀 사람되았어. 예수 믿어서 사람되았어."

그날 고 권사의 당당한 태도에서 무언가를 느꼈던지 남편도 더 이상은 반대를 하지 않았다. 늘 술만 마시는 남편을 대신해 가장 노릇을 한 큰 아들이 고 권사에게 믿음의 스승이었다. 큰아들은 20대에 돈을 벌어서 동생들을 가르쳤고 집안일과 교회일도 도맡아 하는 일꾼이었다. 목사님이 없으면 교회 재단도 지켰다. 그러더니 독학으로 공부해서 마침내 목사가 되었다.

큰아들이 목사 되기 전, 두 번째로 배를 하나 샀을 때다. 거센 바람이 불어서 배가 다닐 수 없는 날씨였다. 풍랑 속에 교회 고칠 시멘트 열 포를 싣고 군산에서 왔는데 흰 와이셔츠가 완전히 검은 색이 되어서 들어왔다. 그때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갑동이 저놈, 전도사님 저놈 미쳤어. 그 바람통에 죽을지 살지 모르고 교회 짐을 싣고 왔어."

항해할 엄두도 내기 어려운 날씨에 무거운 짐까지 싣고 온 것이다. 큰아들은 교회 일이라면 그렇게 목숨을 내 놓고 했다. 고 권사는 그런 아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또 새만금 보상금 나왔을 때 딸과 두 아들이 큰 아들의 개척교회에 전액을 헌금한 것도 자랑스럽고 고맙다. 사위와 며느리들에게는 더욱 더 고맙다.

고 권사는 일생에 가장 기쁜 날이 큰아들이 목사 안수 받던 날이다. 고 권사의 신앙은 모두 큰아들과 관계된 일들로 얽혀 있다. 그것이 참 좋고 기쁘다. 아들이 고 권사를 전도했고 고 권사는 아들 하나를 주의 종으로 만드는 도구가 되었으니 하나님은 참 재미있는 분이시다.

강영길/온누리교회, 소설가, 내인생쓰기 학교 대표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