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믿음, 삶의 이야기에 대한 두 개의 반응-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이성과 믿음, 삶의 이야기에 대한 두 개의 반응-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 말씀&MOVIE ] 영화-라이프 오브 파이

최성수목사
2013년 01월 10일(목) 15:52

[말씀&MOVIE]

라이프 오브 파이(이안, 어드벤처 드라마, 전체, 2012)
 
2001년에 출간된 얀 마텔의 책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는 비록 한국에서는 2009년에 번역되어 처음 소개되었지만, 이미 4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7백만부 이상이 팔린 책이다. 내용은 인도 소년 파이가 벵갈 호랑이와 함께 2백77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하면서 겪은 모험담을 다룬 이야기다. '걸리버 여행기', '로빈슨 크루소'에 버금가는 모험담으로 평가될 정도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판타지와 같은 모험담 소설의 영화화는 발달된 CG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여기에서 감독의 역량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안 감독은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색계' 등으로 한국 관객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오직 영화에서만 즐길 수 있는 영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또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는 모험담의 생생함을 전해주기 위해 특별히 3D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다는 말이다. 그러나 굳이 3D가 아니어도 영상미를 즐기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를 못 느낄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실제와는 다를 수 있다 해도 끝없이 펼쳐지는 태평양에서 경험하는 밤과 낮의 세계는 환상 그 자체다.
 
영화 미학적으로 좋은 이야기는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많은 성찰의 계기를 전해주고,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며, 주제의 연관성이 포괄적이고 선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인간의 본질을 밝혀주며 심미적으로 탁월하다. 단순한 이야기라 해도 다양하게 독해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상미가 뛰어나다는 말인데 '라이프 오브 파이'가 그렇다. 소설 내용 전체를 시간적으로 제한된 영상으로 옮겨 놓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감독은 자신의 이해와 해석을 반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방대한 양의 내용을 영상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빠뜨린 것이 있어서 간혹 책을 읽은 관객이 영화에 실망감을 표현하는 것을 보는데, 이것은 장르의 차이를 무시한 결과다. 소설이 주는 감동이 있지만, 관객은 먼저 소설이 아닌 영화를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소설에 대한 이안 감독의 이해와 영상적인 재현의 관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감독은 소설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그리고 감독 자신이 이해한 내용에 대한 영상적인 재현은 적합했는지 등. 이런 관점에서 볼 경우 '라이프 오브 파이'는 영상 미학적으로나 내용에 있어서 좋은 영화로 평가되기에 부족하지 않다.
 
내용적으로 볼 때, 영화는 무엇보다 먼저 단순한 모험담으로서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고 있다. 끝없는 바다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생물들의 세계, 겉보기에는 지상 천국처럼 보이지만 낮과 밤의 모습이 완전히 다른 식인 섬, 그리고 벵갈 호랑이와의 긴장된 공생관계 등은 우리가 그동안 경험할 수 없었던 세계의 일면이다. 둘째는 신(힌두교)의 존재와 믿음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2백77일 동안 바다를 표류하면서 파이는 신의 존재와 섭리를 끊임없이 물으며, 삶의 위기 가운데서 그를 믿지 않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셋째는 근원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파생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이야기의 힘을 말하고 있다. 파이가 경험했던 신화 같은 이야기는 듣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수많은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삶의 이야기가 어떻게 신화로 승화하는지 그 발전과정을 엿볼 수 있다. 넷째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보여준다. 구명선에 함께 승선한 오랑우탄과 얼룩말과 하이에나 그리고 벵갈 호랑이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약육강식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마지막 다섯째는 인생에서 상극적인 것이 공존하는 이유를 성찰한다. 벵갈 호랑이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는 존재임을 파이는 아버지를 통해 확실히 배웠다. 그런데도 생존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마침내는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는 관계로까지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깊은 인상을 주는 부분은 파이가 전해주는 이야기에 대한 두 개의 반응이다. 유형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긴 하나 지나치게 단순화시킬 수 없을 정도로 현실에서는 복잡하게 나타난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하나는 너무 환상적이어서 현실의 문제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판단이고, 다른 하나는 모험담으로서 매우 아름다운 이야기로 듣는 것이다. 차이는 이야기를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 이야기를 설명을 위해 사용하려는 것과 믿음으로 대하며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같은 이야기라도 이성을 통해 듣는 사람을 위한 이야기와 믿음을 통해 듣는 사람을 위한 이야기는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관객의 선택에 맡기고 있고, 또 소설가의 반응을 통해 파이로 분한 감독은 상상력과 믿음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것에 방점을 둔 것 같다. 그러나 마지막에 소설가에게 보고서를 읽는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다.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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