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틴루터의 종교개혁 유적, 보름즈(Worms)

1. 마틴루터의 종교개혁 유적, 보름즈(Worms)

[ 여행스케치 ] 종교개혁 유적-보름즈

김정기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2월 28일(금) 10:17
[김정기목사의 여행스케치]

   
하이델베르크 근처의 이 보름즈 유적은 1521년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제국 의회에 소환을 받고 신성로마 제국 앞과 교회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펴기에 이른 곳이다. 황제 카알 5세(1519-1556 AD)는 1521년 1월 27일 이곳 보름즈(Worms) 국회에서 루터를 국외 추방하려 했지만 프리드리히 선제후의 배려로 다시 한 번 자신의 주장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었다.

찬송가 중에 '내주는 강한 성이요'는 이때 루터가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 루터가 이 웅장한 건물보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있어서 더 큰 성이었음을 고백한 것은 큰 세력에 위축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천주교 교권은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추기경은 영주처럼 귀족이 되어 사냥이나 노름 등으로 미사를 게을리하였고 미사를 집전한다 하더라도 형식적이었다. 점점 교회는 세속화되자 교회는 개혁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아무리 교권이 높아서 큰 성채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젊은 신부 마틴 루터는 이 웅장한 보름즈의 제국회의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하나님의 종답게 의연하게 황제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을 것이다.

루터는 1521년 4월 16일에 도착해 19일에 자신의 주장을 변호한 후 프리드리히 선제후의 배려로 바르트 부르크 성에 몸을 피하게 된다. 이후 1522년 3월 6일까지 마틴 루터는 개혁저서와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게 된다. 루터역 성서는 인쇄되어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고 일반인들의 문학적 소양과 국민적 신앙에 절대적인 영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이 보름스 유적지 근처에는 아름다운 기독교 유적지가 많이 산재해 있다. 이 그림은 필자가 1985년 독일 유학생들과 주재원 광부가족 간호원 가족들을 위한 수련회의 강사로 초빙되었을 때 그린 것이다.


김정기목사/조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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