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성탄절- 덕촌교회 원용연권사(1)

잊지 못할 성탄절- 덕촌교회 원용연권사(1)

[ 향유와 옥합 ] 잊지 못할 성탄(1)

강영길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12월 17일(월) 13:16
[향유와 옥합]

   
전라남도의 외딴 섬 거문도 덕촌리에 사는 원용연권사(79세)를 만났다. 원 권사는 서른 셋 되던 해에 3남 1녀의 자녀와 가난만 물려받은 채 남편을 여의었다. 그때부터 남자들이 하기에도 버거운 막노동부터 동네의 온갖 허드렛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낮에는 고된 노동을 하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하여 자녀를 먹여 살려야만 했다.
 
의지할 곳이 없었던 그가 남편이 죽던 1966년부터 거문교회에 처음 출석한 후 1972년에 건너 마을의 덕촌교회로 적을 옮겨서 오늘까지 덕촌교회를 섬기고 있다. 1972년 가을, 땔감을 하러 산에 갔다가 바위에 발이 짓이겨져 발가락을 절단하는 대수술을 했다. 3개월 가까이 병원 신세를 진 후 덕촌리의 친정으로 들어갔다. 반년 가까이 친정에서 재활을 하면서 안이숙여사의 수기와 손양원목사의 간증집, 그리고 성경을 탐독하며 하나님을 깊이 만났다.
 
다리 수술을 한 이듬해인 1973년, 다리가 완쾌되지 않았지만 그냥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하지 않으면 온가족이 굶어죽을 상황이었다. 텃밭에 재배한 배추와 무를 머리에 이고 다리를 절면서 판매한 금액이 4백10원이었다. 금액이 너무 적어 십일조를 하기가 애매해서 십일조를 하지 않은 날 밤, 꿈에 흰옷 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자기 돈을 빼앗아 갔다며 원 권사를 꾸짖고는 원 권사가 해 놓은 땔나무를 모두 가져가 버렸다. 꿈에서 깬 원 권사는 십일조를 하지 않은 데 대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었다. 그날 이후 평생 동안 단돈 백 원이라도 십일조 생활을 하며 살아왔다.
 
원 권사에겐 잊지 못할 성탄절 추억이 있다. "성탄절이면 동네 집집을 돌며 새벽송을 하던 시절이야. 온 교인이 밤새 새벽송 연습을 했어. 나는 교인들 밤참을 마련하기로 했는데 집에 가진 게 없었어요. 당시에 미군이 밀가루를 배급해주어 그것으로 먹고 살았지. 우리 아이들하고 열흘 남짓 먹을 밀가루가 있었어요. 그 밀가루로 밤새 팥죽을 쒔어. 다섯 살 박이 막내까지 동원해서 온 가족이 교인들 먹을 팥죽을 쑨 거야. 그것 없으면 우리 아이들도 다 굶어야 했어. 그러나 내가 대접을 하면 하나님이 다 채워줄 거라고 믿었을까? 아니 그런 믿음도 없을 때야. 나는 남편 죽고 교회에 나갔으니 교회 나간 지 2년도 채 안 되었는데 그런 믿음까지 있을라고? 그저 교인들을 대접하고 싶었던 거지. 밤새 나뭇가지를 꺾어서 연기 가득한 불을 피워 팥죽을 쑤었어. 새벽 네 시가 좀 못 되었을 거야. 팥죽을 큰 함지박에 담아 머리에 이고 교회로 갔어. 당시엔 전기가 없었는데 우리 교회는 섬마을 가장 꼭대기에 있었지. 머리에 팥죽을 이었으니 아래를 볼 수도 없고, 그저 발끝으로 어둠을 뒤적이며 계단을 오른 거야. 그런데 그만, 다리를 헛디디면서 내가 넘어지고 함지박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어. 그 뜨거운 팥죽이 내 몸을 덮쳤는데 뜨거운 줄도 몰랐어. 그냥 교인들 섬기겠다고 밤새 불을 넣어 죽을 쒔는데 그게 다 엎질러지고 말았으니. 그것만 너무나 안타깝고 서러운 거야. 그래서 깨진 독을 안고 그냥 엉엉 울었지. 평생 잊지 못할 성탄절 전야였지 뭐야."
 
원 권사의 이야기에는 신앙의 깊이나 믿음, 성경 말씀 여부를 떠나 교인들을 섬기고 싶은 깊은 사랑이 느껴졌다. 말씀도 기도도 찬송도 잘 모르던 그때부터 섬김의 도를 보여왔던 원용연권사. 가난을 숙명처럼 등에 지고 살면서도 한 번도 감사를 잊지 않은 원용연권사의 삶이 그 팥죽 그릇 이야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당시에는 팥죽과 삶은 고구마 강냉이 볶음 등으로 간식을 하면서 밤을 꼬박 새고 새벽송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것들을 내 놓아도 아무도 먹지 않는다. 성도들 입맛이 달라진 만큼 사람들의 신앙과 믿음도 달라졌다. 그때는 목사님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하며 교회를 섬겼으나 이제는 목회자와 교회가 사람을 섬겨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며 원 권사는 오늘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강영길/온누리교회, 소설가, 내인생쓰기 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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