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2~27일

10월22~27일

[ 가정예배 ] 10.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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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9일(금) 14:16

월- 예배의 신앙과 정신
본문: 요4:24
찬송가: 218장
 
런던 올림픽이 끝 난지 두 달이 넘었다. 온 국민을 웃고 울리며 감동을 선사한 스포츠 축제였다. 그 중에 펜싱경기와 남자축구경기는 지금까지도 감동적이다. 홍명보감독이 이끄는 남자축구팀은 브라질에게 지는 바람에 일본과 동메달을 앞두고 3, 4위전을 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축구 역사상 첫 동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낸 원동력은 뭘까?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정신력이었다. 펜싱에서는 신아람 1초사건 때문에 정신력이 똘똘 뭉쳤다. 축구에서도 일본을 만났기 때문에 정신력이 똘똘 뭉쳐졌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다. 정신을 한곳에 모으면 어떤 일이든지 이룰 수 있다. 학생들의 공부비결이며, 직장인들의 성공비결이다. 특히 신앙인들에게도 정신력이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국민들의 기본 의식변화가 한몫을 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의 기본은 무엇인가? 단연 예배이다. 그리고 예배의 신앙과 정신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누구에게 예배를 드리는가가 중요하다. 단연 예배는 하나님께 드린다. 그러면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여기 하나님의 본질적인 모습이 있다. 하나님은 영적인 존재이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영으로 속에서 우러나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가장 확실한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야 한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자극해 주시고, 동기를 부여해 주시며,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감격에 넘칠 수 있도록 열어 주시기 전까지는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없다. 예배를 구경하러 온 사람처럼 드리면 절대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예배는 구원받은 자가 드린다. 구원받은 자는 성령님이 임하신다. 구원받은 자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감사와 감격으로 예배드린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예수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진리로 예배하라고 말씀하신다. 예배는 하나님의 진리로 새롭게 된 마음의 분출이다. 그러니까 모든 예배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응답으로 드려지는 것이다. 예배란 진리 위에 기초된 응답이다. 진리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진리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을 기반으로 예배를 드려야 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한없는 사랑과 은혜를 깨달아 감격의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통해 말씀에 근거해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믿음, 감사, 사랑, 신앙의 정신으로 예배해야 한다. 우리는 영과 진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한 신앙을 가지고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의 예배현실을 생각해 봅니다. 예배의 정신, 예배의 자세를 살펴보게 하시고, 성령님의 역사와 도우심, 그리고 말씀에 근거한 응답으로서의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종래목사 / 새로핌교회

 


 

화-용서의 은혜
본문: 마6:12-15
찬송가: 304장
 
주기도문에는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여섯 가지 간구가 나온다. 그 중 다섯 번째 간구가 용서를 구하는 기도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그리고 주기도문 끝에 다시 보충적으로 설명해 주신 것이 본문의 말씀대로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라는 것'이다. 반복해서 보충설명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용서란 쉽게 되는 게 아니다. 쉽지 않는데 왜 용서하라는 것일까? 용서는 기도와 매우 중요한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용서가 기도 생활에 있어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움을 간직하고 기도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어떻게 기도의 응답을 기대할 수 있을까? 기도 생활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도 용서하는 일이 필요하다. 수제자 베드로는 용서에 관해 예수님께 질문을 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베드로가 그 용서를 배웠기에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9)"고 말할 수 있었다.
 
용서란 무엇인가? 사전은 '지은 죄나 잘못한 일을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 줌'이라고 정의한다. 원어적인 뜻은 '내보내다, 죄책이나 형벌에서 벗어나다'라는 뜻이다. 마음에 품지 않고 내보내 버리는 것이다. 내 맘속에서 미움을 내보내는 것이다. 원망을 내보내는 것이고 분노를 내보내고, 시기 질투를 내보내는 것이다. 그것이 용서다. 무엇을 용서하라는 것인가? 본문의 말씀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라 하신다. 사람은 많은 잘못과 실수를 하고 산다. 그런데 주님은 항상 용서하셨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그의 과거를 추궁하면서 질책하지 않으셨다. 오직 한 가지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지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결론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면 되었다. 너는 내 양을 먹이라." 용서는 하나님으로부터 흘러온 사랑의 물결이다(롬 4: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용서하면 용서받고, 용서하지 못하면 용서받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사랑하면서 용서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자비로우신 주님 저희가 남의 허물을 용서 하겠사오니 저희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동석목사 / 감동교회

 


 

수-되새김질의 신앙
본문: 디모데전서 4:6-16
찬송가: 420장
 
모든 영역에 있어서 반복 학습은 매우 중요하다. 요즘 경영학에서 뜨는 이론에 의하면 어느 분야가 되었든 그 분야의 최고의 사람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하루에 3시간 이상씩 일만 번 이상을 자신의 관심 분야에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이다. 일만 번을 반복한다는 것은 한 분야에 대략 10년을 집중에서 투자하는 것이다.
 
운동, 경영, 공부, 창작 활동 등 무엇을 하든지 반복 학습은 대단히 중요하다. 반복 학습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훈련시키는 데 있어서 반복 학습의 방법을 많이 사용하셨다.
 
대표적인 예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 년에 3대 절기를 지키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 주마다 안식일을 지키게 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가 다락방에서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면서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성찬식을 반복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구주되심을 고백하게 하셨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의 반복 학습을 싫어한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것을 듣고, 보고, 경험하기를 원한다.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의 기본과 기초를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신앙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그 위에 아무리 새로운 것을 쌓아도 기초가 약하기 때문에 곧 무너지고 만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좋은 일꾼이 되려면 경건의 훈련을 쌓으라고 말한다. 경건의 훈련을 쌓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삶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받은 은혜를 되새김질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것을 다시 되새김질할 때 그것이 금생과 내생에 복이 된다고 말한다. 바울은 오늘 본문 15-16절에서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김질하는 경건의 훈련을 쉬지 말고 계속하라는 것이다.
 
좋은 반복은 좋은 습관을 갖게 하고, 나쁜 반복은 나쁜 습관을 갖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섬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일들이 하루 아침에 이뤄는 것이 아니다. 이를 억지가 아닌 기쁨과 감사함으로 감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 신앙의 자리에 서기까지는 성령님을 의지하며 성령님의 감동이 있는 가운데 반복되는 신앙의 되새김질 속에서 좋은 습관으로 자리를 잡을 때 가능하다.
 
오늘도 경건의 훈련이 되새김질 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되새김질을 통해 훈련되는 경건의 삶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오늘 하루도 하나님 안에서 받은 은혜를 되새김질하며 경건의 훈련이 이뤄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진규목사 / 행복한교회

 


 

목-식어진 가슴에 불을 붙이라
본문: 렘 20:7-13
찬송가: 342장
 
누구나 인생의 과정에서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힘든 때를 만나지만 늘 뜨거운 가슴으로 새롭게 출발하기를 바란다. 이제 남은 한 해를 잘 정리하고 또 새해를 준비하는 시기에 와 있다. 이 계절에 우리의 가슴이 더욱 불붙은 가슴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사명자에게도 고난이 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를 따라서 조국의 멸망을 외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조국의 배반자로 외면당하며 살아야 했다. 사람들에게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었고, 사명을 다하다가 토굴에 갇히기도 하고, 더욱이 친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다.
 
예레미야에게 오는 고난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오늘 우리에게도 올 수 있다. 사도 바울, 베드로 등 많은 주의 일꾼들이 사명을 감당하다가 고난을 겪었다. 그러나 베드로전서 4장 13절은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다.
 
불붙은 가슴으로 사명을 감당하라.
 
예레미야는 당대의 사명자로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다가 사명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말아야겠다.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고 했더니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았다. 뼛속까지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선포하였다. 뜨거워진 심장으로 주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사명자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자이다.
 
여러분 가운데 주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지금은 하나님께 불평하고 항의하고 싶지는 않은가? 이제는 예레미야처럼 오히려 더욱 뜨거운 가슴으로 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호와를 신뢰하면 승리케 하신다.
 
예레미야는 조롱과 모욕 중에서 두려운 용사 같으신 하나님을 바라본다. 의인을 시험하사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그 하나님께 사정을 아뢰며 기도한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신다. 여기서 경건한 자는 하나님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경건한 자를 일컫는다. 고난과 시련의 현실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할 때에 분명 승리를 안겨 주신다. 주님을 의지하여 다시금 믿음의 길, 직분을 감당하는 길을 힘차게 걸을 수 있기 바란다.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신뢰하고 섬길 때에 분명 우리에게도 승리를 안겨주신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모진 고난을 당하셨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 뜨거운 피를 쏟으셨다. 그 뜨거운 피를 받은 우리가 뜨거운 사랑과 사명을 안고 힘써 섬기며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도 뜨거운 심장을 가진 성도들을 찾으시는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통해 큰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오늘도 주의 택한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삶의 무게에 눌려 지친 백성들에게 더욱 큰 힘과 능력 허락하옵소서. 오늘에 머물러 있지 않고 내일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옵소서. 오히려 고난 중에 뜨거운 가슴으로 사명 감당하는 주의 일꾼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일목사 / 일동동부교회

 


 

금-예수님처럼 성령 충만하라
본문: 눅 3:21-22             
찬송가: 192장
 
성령의 임재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무기력한 교회, 무능력한 성도가 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일생도 성령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요한복음 3장 34절에 보면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께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셨다.
 
예수님의 일생은 성령으로 충만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세례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시고 난 후 성령에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셨고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시 언제나 성령의 충만함으로 사역을 감당하셨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으로 충만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가장 많이 말씀하시고 강조하신 것인 성령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성령을 우리가 충만하게 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라고 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권세를 힘입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말씀이다.
 
성령의 다른 별명은 능력자이다. 성령의 능력을 '두나미스'라고 한다. 이는 다이너마이트라는 말이다. 다이너마이트의 폭발력은 대단하다. 그런데 성령의 능력은 파괴의 능력이 아니다. 축복의 능력이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안되는 것도 되게 하고 없는 것도 있게 한다. 그래서 성령님을 모신 사람은 불가능한 일도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성령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다. '보혜사'란 말은 '돕는 자, 중재자, 대변자, 위로자'라는 뜻인데, '곁에서 돕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령은 우리의 곁에서 우리를 돕기 위해 오신 하나님인데, 중재자로서, 대변자로서, 때로는 위로자로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다.
 
그리스도인들이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령은 어떤 위험에서도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신다. 이 믿음으로 평안의 삶을 누리시기를 축복한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 충만할 수 있을까? 성령님은 회개하는 심령들 속에 임한다. 반드시 죄를 회개해야 성령을 충만히 받을 수 있다. 성령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더러운 곳에 임하지 않는다. 그래서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 38절 말씀을 통하여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의 역사는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성령님과 만나는 채널은 기도이다. 또한 말씀을 들을 때 성령 충만을 받는다.
 
모두가 다 성령 충만한 가운데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사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노호경목사 / 흥해중앙교회

 


 

토-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본문 : 마 14:13 - 21
찬송가 : 570장
 
본문은 무리들이 갈급한 영혼의 충족을 위하여 혹은 자기들의 문제해결을 위해 예수님께서 빈들로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예수님을 찾아 왔다. 예수님은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었지만 무리들을 볼 때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 그들의 병을 고쳐 주었고 그뿐만 아니라 해가 저물도록 떠나지 않고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놀라운 기적으로 배불리 먹이셨다. 현대는 너무나 물자가 흔하고 먹을거리가 많아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이 없어 영양실조에 걸리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원조하는 나라가 되고 기부 문화가 확산되어 가는 모습을 볼때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다.
 
무리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함게 나누어 보자.
 
첫째로 예수님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피곤하고 지치면 남을 돌아본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리를 사랑하시고 목자없는 양 같음을 보시고 방황하며, 병들고, 가난하고 상처받은 영혼들을 무시하거나 무관심하지 않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말씀으로 섬기시고 병을 고쳐주신다. 제자들은 배고픈 그들을 마을에 보내어 음식을 사먹게 하자고 제안하고 빌립은 계산해 보니 2백 데나리온도 부족할것 같다고 하며, 안드레는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보리떡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와서 이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냐며 부정적인 말을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갈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 하신다.
 
둘째로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다.
제자들이 가진것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뿐이었다. 주님은 우리가 함께 나누기를 바라신다. 사도행전 20장 35절에 "주는자가 복되다"고 말씀하시고, 누가복음 6장 38절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헌신하면 적은것이지만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신다.
 
셋째는 예수님은 내게로 가져오라고 말씀하신다.
보잘것없는 어린 아이의 손에 있는 것이지만 예수님께 가지고 왔을 때 거기에 있던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명을 다 배부르게 먹이시는 역사가 일어났다. 내게 있을 때에는 값어치 없는 것으로 보였지만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의 손에 붙잡히면 가장 값지게 쓰여지고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한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시다. 육신의 양식과 영의 양식을 주실 수 있는 전능하시 분이시다. 우리에게 있는 적은 것을 예수님께로 가져오므로 함께 더불어 행복하게 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
 
<오늘의 기도>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마음으로 함께 나누게 하시고 이 땅에 기부문화가 더욱 확산되어 모든 사람들이 다뜻하게 지내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석근목사 / 평화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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