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다리건너기

시각장애인의 다리건너기

[ 기고 ] 독자투고

최명근장로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3월 19일(월) 16:22

남의 처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생각과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자신은 이해했다고 여기고서 한 행동이 오히려 착각이거나 오해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왜 그런고 하니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처지에서 남의 처지를 판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시각장애인이 난간도 없는 다리를 건너가려 하고 있었다. 그 다리에는 그 말고도 막 다리를 건너가는 사람도 있었고 다리 이 편과 저 편에서 아직은 다리에 올라서지 못한 채 그 시각장애인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 이 시각장애인은 위험스럽게도 다리의 가장자리 쪽으로 자꾸 다가가는 것이었다. 우연히 그를 지켜 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조마조마한 마음이 되었다. 그 시각장애인을 알지도 못하는 처지에서 섣불리 나선다는 것에 주저하는 마음이 있기도 했으며,붙잡아주고는 싶었으나 그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이기도 했다. 급기야 그가 짚은 지팡이가 다리 바깥의 허공을 더듬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해서 다리 복판으로 올 생각을 않고 위험스럽게 지팡이를 다리 바깥 쪽에 내뻗은 채 건너가고 있었다. 보다 못한 어떤 남자가 그의 팔을 잡고 "이쪽은 위험해요! 여기가 가운데요" 하면서 그를 잡아 끌었다. 
 
그러자 시각장애인은 감사하다며 밝은 미소로 인사를 했다. 그제서야 그 남자는 물론 주변의 모든 사람도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인사를 마친 그 시각장애인은 다시금 다리의 가장자리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팡이 끝이 다시 막 다리를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앞을 못 보니 방향을 몰라 그럴 수도 있으려니! 여긴 다른 이가 나서서 그를 다시 잡아 다리 가운데로 이끌어 주었다. 그러자 몇 걸음 복판을 걷는 듯 하더니 또 다시 가장자리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주변의 대부분 사람들은 위험하다며 경고의 탄성을 발했고 아까 그 남자는 그들을 대표하여 다시 그 시각장애인을 다리 복판으로 잡아 이끌었다. 좀 더 강한 완력을 느꼈는지 "괜찮습니다!"하며 첫번째와 다른 응대를 했다.
 
"그쪽으로 가면 위험해!" 남자는 물론 몇몇 다른 이들도 합세해서 알렸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각장애인은 다리 가장자리로 걸어가는 것을 바꾸지 않는 것이었다. "거 장님들이 의심이 많고 고집이 세다더니 정말 그러네!" 한 나이 지긋한 이가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도 그 어른의 말에 공감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는가 하면 혀까지 차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시각장애인은 아무 말 없이,대신 보란 듯한 태도로 어느 새 다리를 다 건너 가버렸다. 그 누구도 그 시각장애인이 하필이면 넓은 곳을 놓아 두고 왜 가장자리로만 걸어가려고 했는지에 대해서 묻거나 생각해 보는 이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 시각장애인도 자기는 전혀 위험스럽지 않은데 왜들 자신을 더 불안한 장소로 끌어다 주게 되었는지 생각 없이 가버린 것이다. 
 
눈을 보는 사람은 다리 한복판이 가장 안전하게 여겨질 것이겠으나,시각장애인에게는 떨어질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알고 가는 것이 더 안전한 것이다.

최명근장로 / 한국맹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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