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MOVIE] 장전되지 않은 총

[말씀&MOVIE] 장전되지 않은 총

[ 말씀&MOVIE ]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윤종빈 감독, 범죄, 드라마, 18세, 2012

최성수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2월 28일(화) 16:23

'범죄와의 전쟁'은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나쁜 놈'이 누구인지를 정의하진 않았지만, 영화는 공권력이든 조직적인 폭력이든, 아니면 양자 사이를 저울질해가며 이득을 취하는 소시민이든 상관없이 갖가지 이유로 부당한 힘으로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모두를 지칭한다. 영화는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예술로서 영화의 힘은 얼마나 강력하게 진실을 상기하고 환기하느냐에 좌우된다. 관객은 힘으로 힘을 제압하려고 했던 시기에 힘의 역학관계와 그 안에서 가족과 성공에 대한 욕망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보통사람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사회의 한 패러디로도 충분히 읽혀질 수 있는 내용이다.
 
제목 '범죄와의 전쟁'은 공권력이 전면에 나선 시기를 염두에 둔 것이고, 부제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는 조직폭력배(깡패)의 주먹이 지배적이었던 시대를 가리킨다. 영화는 표면적으로 두 개(공권력과 조직폭력배)의 힘이 어떤 역학관계를 가졌고, 또 그것은 어떻게 공생하는지를 보여준다. 권력은 현실을 정의하는 힘이 있고, 길거리 폭력은 문제해결의 힘이 있다. 양자는 상호 부조하기도 하고, 때로는 상호 충돌하며 대한민국의 권력을 요리해 나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공권력과 깡패의 폭력,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줄다리기하며 생계를 위한 힘을 공급받아 힘겹게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을 시대적인 배경과 함께 재현하면서, 힘이 지배하는 세계의 본질과 그 파국을 보여준다. 그리고 비리의 중심에 있는 자의 아들이 검사가 되는 마지막 장면은 권력의 추구가 되물림되며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영화에서 주목을 끄는 캐릭터는 단연코 최익현(최민식 분)이다. 그를 매개로 권력과 조직폭력의 진면목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전직 세관공무원인 그는 스스로 막강한 힘의 주체로서 살던 때가 있었다. 그는 가족을 소중히 여길 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혈연관계에서 찾는다. 비리사건으로 퇴출된 후, 조직폭력배 우두머리인 최형배(하정우 분)와 협업하게 된 것도 결국 혈연관계에서 찾아낸 고리 때문이었다. 그의 표면적인 목적은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그는 혈연관계를 하나의 힘으로 삼고, 또 그 힘을 키우려 갖은 노력을 다 한다. 필요하다면 문중 어른을 찾아가고, 동네 어른들을 봉사하며 또 종교행사 참석도 마다하지 않는다. 혈연관계로 다진 힘에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또 뇌물을 통해 얻은 인맥(공권력과 정치력)의 힘이 더해지면서, 그가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들은 일사천리로 풀린다. 힘은 가고. 남는 것은 오직 가족이며, 힘의 근원은 가족에게서 분출될 뿐임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영화는 표면적인 목적을 드러내는 데에 만족하지 않는다. '최익현'이란 캐릭터의 심층적인 면은 힘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려는 인간이다. 겉으로는 가족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이었음을 폭로한다는 말이다. 
 
비록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제목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전개되지는 않았지만, 영화에서 오히려 더욱 깊이 조명된 부분은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시기에 얽히고설킨 힘들의 역학관계,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힘에 빌붙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애처로운 모습이다.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화는 두 개가 아니라 세 개 힘의 틈바구니에서 핑퐁게임을 하는 최익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는 혈연관계의 힘이고, 다른 하나는 공권력이며, 마지막 하나는 의리로 맺어진 조직폭력배 힘이다. 그리고 모든 힘들은 제각기 가족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또 가족을 위해 실행됨을 재현한다. 그러니까 모양은 달라도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유사하다. 공권력 역시 공직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생각하며 협력하기 때문이다.
 
최익현은 이런 힘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캐릭터다. 그 역시 힘이 없으면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에 힘을 추구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세가 아니면서 힘의 논리에 빌붙어서 살아가는, 그래서 그가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힘은 마치 장전하지 않은 총과 같다. 위협적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결코 실효성이 없는 힘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붙들고 허세를 부리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소시민들이다.
 
강력한 힘을 꿈꾸는 사회는 일단 사회 내의 구성원들의 관계가 잘못되어 있다는 지표다. 정상적인 관계에 있는 사회는 결코 힘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힘을 통해서는 오히려 더 큰 힘을 낳을 뿐이다. 그러나 성경적인 공동체의 근간이 되는 관계의 원칙은 힘이 아니라 사랑이다. 힘으로 세워진 세계는 힘으로 무너지지만, 사랑으로 세워진 세계는 영원하다. 이 사실은 이 시대, 곧 강력한 힘을 꿈꾸는 세대와 세대, 계층과 계층, 집단과 집단의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는 갈등과 위기의 시대에 깊이 있게 묵상해야 할 내용이다.


최성수목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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