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유가득한 옥합]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기억

[향유가득한 옥합]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기억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

이연옥명예회장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2월 28일(화) 16:14
1945년 해방이 되고 그 해 늦가을에 할머니가 시름시름 앓아 누우셨다. 할머니는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나를 엄마처럼 키워 주신 분이다. 내 밑으로 동생들이 태어났으므로 나는 어머니의 젖에서 떨어진 다음부터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에게 느끼는 나의 정감이 어머니 못지 않게 깊었다. 할머니의 병세가 처음에는 감기가 온 듯 그렇게 며칠 아프셨다. 그러다가 할머니의 정신이 점점 희미해져 갔는데, 의식을 잃었다가 돌아오고 또 앓았다가 돌아오기는 반복했다. 그러다가 대소변을 받아 낼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었다.
 
소식을 들은 고모님 두 분, 한 동네에 사시는 고모와 조금 떨어진 곳에 사시는 고모들이 할머니를 돌봐 드리고자 집으로 오셨다. 그런데 할머니는 딸들의 돌봄에 한가코 손을 내젓고 거부하셨다. 그 대신 할머니는 딸처럼 키우신 나에게 시중받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내가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모든 수발을 들었다. 내가 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그 몸을 밀가루처럼 생긴 분으로 바르고 문지르며 건조시켰는데, 곁에서 지켜보는 고모가 함께 거들고자 가까이 다가오면 할머니가 한사코 거절하셨다. 할머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내가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한테 사랑을 많이 받았기에 그것을 보답하는 것이 대소변 받아내는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할머니가 고모들의 손길을 거절하셨지만 나 역시 고모들이 할머니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참으로 희안한 사실은 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이 전혀 더럽다고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본래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성미여서 집 정리도 그날 할 것은 그날에 다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데 그러한 내가 대소변을 만져도 전혀 싫지 않았고 어색하지도 않았다. 대소변을 만진 다음에 손을 깨끗이 씻지도 않고 그냥 수건에 쓱 문지른 다음에 먹을 것을 입에 대기도 했다. 할머니의 사랑이 내게 머무는 한 할머니의 대소변이 조금도 어색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 해 연말에 할머니가 별세하셨다. 1945년 해방 직후 빼앗겼던 나라의 주권을 되찾은 광복의 소식이 우리 동네 주민들을 새 시대, 새 나라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으로 활기차게 했는데 광복의 기쁨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공산당이 우리 동네에도 들어왔고, 그들이 집으로 몰려와서 아버지를 친일파로 몰아세웠다. 매우 어렵고 힘든 상황에 내몰린 아버지가 사업체를 정리하셨고 그 이듬해에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셨다. 아버지가 집을 떠나간 뒤로는 집 안 분위기가 마치 폐가처럼 되었고 덩달아서 우리 집의 가세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이연옥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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