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도시(gate city)

빗장도시(gate city)

[ 목양칼럼 ] 목양칼럼

양인순목사 webmaster@pckworld.com
2012년 02월 28일(화) 15:23

'빗장도시(gate city)'라는 신조어가 있다.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은영 씨가 논문에서 강남지역을 '빗장도시'로 불렀다. 서울 25개구 1백60여 개동의 평당 집값과 학부모, 자녀의 학력, 수능점수 및 서울소재 4년제 대학(지방대 의대포함) 진학률을 조사했다. 그 결과 강남, 서초, 송파 3개구의 학부모들의 대졸이상 인구가 타 지역에 비해 두 세배 높았다. 자녀들 대학 진학률 역시 강남 3구가 타 지역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다. 소수의 유능한 집단이 학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특정 지역에 모여 살다 보니 높은 아파트 가격이 형성되어 경제력이 없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들어갈 수가 없는 빗장도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왜 인간들은 이토록 성을 높이 쌓고 빗장을 걸려는 것일까? '성채(Citadel)'라는 소설이 그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소설의 주인공인 앤드류 맨슨은 의과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웨일즈 남부 탄광촌에 뛰어든다. 그는 광부들을 위해 폐결핵을 연구하는 인도주의적 의사가 된다. 그런데 차츰 명성을 얻게 되면서 돈을 좋아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아내 크리스틴은 이렇게 말한다.
 
"여보, 왜 돈, 돈 하시나요. 그토록 가난했을 때도 우린 행복했어요. 당신이 늘 비난하던 돈의 제물이 되기 싫어요. 잊지 않으셨죠? 눈에 보이는 성채를 점령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당신은 전에 그런 기백을 가지신 분이었어요."
 
이에 대해 앤드류는 이렇게 대답한다. "여보, 나는 다만 성공하고 싶을 뿐이야. 세상이란 신분이나 재산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든. 가지지 못한 자는 다른 사람에게 부림을 당해. 그렇고말고. 나는 뼈에 사무치도록 맛보았기 때문에 앞으로는 남을 부리는 입장이 되고 싶은 거야."
 
사람들은 지식과 권력과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견고한 성채로 여긴다. 그것들이 자신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강남의 부자들을 욕하면서도 자신들도 부자가 되어 빗장도시 안으로 들어오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자신들의 신분고하에 상관없이, 재물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지금도 자신들만의 성을 쌓아가고 있다.
 
이런 냉엄한 현실에서 성채를 쌓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힘과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그것을 거부하고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돈과 권력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겠다고 고백한 자들이다.
 
그러면 나는 여기에서 자유한가?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벌써 강남에서 목회를 한지 11년째다. 본의 아니게 강남에서 목회한다고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부러움의 시선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 안에 더 높은 만리장성을 쌓고, 빗장을 지르고자 하는 어리석음을 본다. 강단에서는 빗장도시 안에서 돈과 권력으로 성을 쌓고 그 안에 안주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여보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울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목회자로서의 참담한 마음을 갖게 된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울고 싶어라'가 떠오른다. 그래서 빗장도시 안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소리쳐본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자신만을 위해 쌓아두지 말고, 자식에게 대물림하려고 하지 말고 좀 나누어보자고 말이다. 감사하게도 못난 목사보다 성도들의 영적 센서가 민감한 듯하다. 생전 해보지 않았던 연탄지게를 지고 구슬땀을 흘리며 골목을 누비는 성도들을 보며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린다. 새해를 맞아 금식하며 사랑의 개안수술 헌금을 드리며 기뻐하는 성도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보게 된다. 먼저 내 안에 있는 빗장도시의 빗장을 걷어버리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행복한 세상을 오늘도 꿈꾼다.

양인순목사/성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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