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현실을 사는 그리스도인

두 개의 현실을 사는 그리스도인

[ 말씀&MOVIE ] 뷰티풀 마인드(론 하우어,드라마,12세,2005)

최성수박사
2012년 02월 13일(월) 13:58

2005년도에 개봉한 뷰티풀 마인드는 필자의 사고를 전환하게 만든 작품이다. 원래 실비아 네이사라는 뉴욕 타임즈 경제부문 기자가 쓴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수학교수인 존 F. 내쉬의 일대기가 원작이다. 내쉬가 제시한 내쉬균형이론은 게임이론으로 불리는데,이 이론은 그가 21세라는 어린 나이에 27쪽 분량의 박사학위논문에 담겨진 것이었다. 내쉬의 균형이론은 처음에는 알려지지 않다가 뒤늦게 인정받아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비록 영화는 원작과는 다르게 각색되었다 해도,영화가 제시해주는 세계는 또 다른 맛을 우려낸다. 원저자 네이사는 이 책을 통해서 인간의 '아름다운 정신'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영화는 '현실과 비현실과의 관계'를 고민하게 한다. 다시 말해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한 수학 천재의 삶과 두 개의 세계에서 헤매면서도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이 나타난다. 정신분열증이 영화에서는 비록 하나의 반전기법으로 사용되었지만, 사실 그것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실제 현상이다. 수학자 내쉬는 현실이 아닌 것을 마치 현실인 양 믿고 30년 동안을 살아온 것이다. 자기 스스로는 그것이 현실이 아님을 깨닫지 못했다. 두 세계 모두가 자신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날마다 내쉬와 대화를 나누었던 '방탕한 룸 메이트',그는 내쉬에게 있어서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실존하지도 않은 '윌리암 파처'라는 국가안보위원과 그에 의해 지시된 '암호해독'이라는 극비의 작업 역시 내쉬에게는 현실이었다. 문제는 누구도,그의 사랑하는 아내나 그와 절친한 친구들도 그의 현실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것은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의 현실은 누구도 경험할 수도 또 증명할 수도 없고,오직 내쉬만이 경험할 수 있는 현실이었지만,그것이 가져오는 결과는 가족의 파멸이요 또한 한 인격의 파멸이었다.
 
이 영화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계속해서 이슈가 되어왔던 사이버 세계를 실제 인물을 중심으로 잘 표현해내었다. 아바타가 매체기술을 통해 가상에 대한 실제적인 경험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면,뷰티플 마인드는 정신질환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와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우리 믿음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볼 수도,느낄 수도 또 들을 수도 없는 세계가 있다고 하고, 또 그 세계에 대한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기독인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전해주는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으면,그들 역시 당대에는 미친 사람으로 여겨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력은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의 삶을 실제의 삶으로 살았다는 데에서 분출하였다. 기적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실이며 보이는 세계 안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가 날마다 고백하듯이 우리가 만일 하나님과 말도 하고 그와 동행한다고 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하면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 서있는 것인가? 현실인가 아니면 가상의 세계인가? 믿음의 세계가 믿는 자들에게 분명 현실이라면,믿음이 있다고 하는 우리는 지금 남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실제로 보고 있는가?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들을 듣고 있는가?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우리는 느끼고 있는가? 혹 남들이 보고 듣고 추구하는 것만을 지향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 눈을 열어 주의 기이한 법을 보게 해달라는 시편의 기도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우리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느낄 수 없다면 분명 우리 믿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믿음이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있다고 말하는 것이고 또 남들이 감히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바라고 그것을 소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지만 사람들이 보지 못하거나 보려고 하지 않는 세계를 믿음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사실 정신분열증환자들과 같이,이 세상이 보여주는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보는 사람들이다. 그래야 남들이 큰 길을 갈 때 좁은 길을 갈 수 있고,남들이 세상과 타협할 때 고집스럽게 고난의 길을 갈 수 있다. 빛과 소금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보이는 세계를 향한 여정에서 일어나는 소명이지 그 반대는 결코 아니다.

최성수박사 / 神博ㆍ영화 및 문화평론가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