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3-18일

2월13-18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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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2월 08일(수) 11:19

월-세가지 확신만 가지라
본문 : 로마서 8:31-39   
찬송가 : 325장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이다(행20:22-24). '어떤 핍박이나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진리를 위해 생명을 건 사람이다. 믿음은 분명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에도 "너희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말을 항상 예비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세 가지 확신만을 가르쳐야 한다.
 
첫째,기도응답의 확신이다. 외동아들은 생명보다 더 귀한 존재이다.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신다. 아브라함이 하나뿐인 아들을 모리아산에서 하나님께 바쳤다. 칼을 들고 아들을 잡으려하는 아브라함의 심정을 생각해 보았는가? 본문은 아들을 주신 것처럼,그 이상의 것도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주신다는 확약이다. 기도응답의 확신의 비결은,우리가 기도할때 "절대로 의심하지 말아라. 구하는 것을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3-24)는 말씀을 행하는 것이다. 기도의 초점을 예수님께 맞춰야 한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다. 기도는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한다.
 
둘째,죄사함의 확신이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은,타락한 천사의 유혹과 아담의 불순종때문이다. 타락한 천사장 루시퍼는 공중에 권세잡은 자,곧 사탄이 된 것이다. 이사야 14장 12에서 15절에는 사탄의 출처와 멸망에 관한 예언이 나온다. 교만이 결국 사탄으로 전락된 것이다. 교만하면 망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버리신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하시지 못할 3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님은 죽지 못하신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벌하지 못하신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자를 구원하지 못하신다." 하나님은 믿는 우리를 그의 피로 분명히 용서하셨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다. 십자가에서의 두 가지 발견은 나는 흉악무도한 죄인인 것과 나의 존재의 가치관(천하보다 귀함)을 깨닫는 것이다. 요한일서 4장 7절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5장 24절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셨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그 누구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 환난,곤고,핍박,기근,적신,위험,칼(바울이 당한 고난의 목록)로도 갈라놓을 수가 없다. 기도응답의 확신,죄사함의 확신,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꼭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오늘의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하나님의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보내사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로 구속하여 주시오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기도응답의 확신,죄사함의 확신,하나님의 사랑의 확신을 가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현오율목사 / 충신교회

 


 

화-가정 내의 상처 치유하는 길
본문 : 사무엘하 13:20-22
찬송가 : 421장
 
오늘 본문에는 한 콩가루 집안이 나온다. 형제 사이에 강간도 벌어지고 살인도 벌어진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콩가루 집안의 가장이 바로 다윗이라는 사실이다. 왜 그의 가정이 그렇게 되었는가?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의 간통 사건 때문이다. 그 당시 다윗은 이미 여러 명의 아내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한 명을 더 원한 것이다. 하나 더,한번 더가 인생을 망치고 가정을 망친다. 간통 후에 다윗은 그 일을 은폐하려고 충신 우리야까지 죽였다. 그 뒤 다윗의 가정은 풍비박산이 된다. 첫 아들 암논이 자신의 이복 여동생인 다말을 강간한다. 그 사실을 알고 다윗이 심히 분노했지만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자기도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인데 어떻게 제대로 벌을 내리겠는가? 그러자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이 한을 품고,2년 후에 계략을 꾸며 그의 이복 형 암논을 죽였다. 가족들이 서로를 혐오하고 죽이는 관계가 된 것이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가? 다윗이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 것이 문제다. 오늘날 왜 가정이 깨지는가? 통제는 너무 많이 하고 영향력은 너무 적게 미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려면 통제는 가급적 적게 하고 영향력은 많이 끼쳐야 한다.
 
오늘날 많은 가정들을 살펴보면 압살롬처럼 한을 품은 사람이 많다. 가정에서의 상처 치유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과 유사하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첫째,정직한 자백이 필요하고,둘째,잘못에서 돌아서는 회개가 필요하고,셋째,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가정 내에서의 상처 치유를 위해서도 이 3가지와 함께 기도가 필요하다.
 
첫째,정직한 자백이 필요하다. 가정 내의 갈등이 일어날 때 한 사람만 일방적으로 잘못한 경우는 거의 없다. 자기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자백이 없으면 용서도 없고 치료도 없다. 다른 사람은 다 자기 약점을 보는데 자기만 그 약점을 인정하지 않고 문제가 없다고 하고 다른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치료의 길은 없다.
 
둘째,상처 입히는 행동을 그쳐야 한다. 인간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변화이다. 가정 내에 상처가 생겼으면 먼저 자신이 고칠 것부터 고쳐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도 서서히 변화될 것이다.
 
셋째,마음을 열고 상대를 받아들여야 한다. 가정 내의 갈등은 하루 속히 털어 버리는 것이 좋다. 그것을 위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용기가 있어야 하고,화해를 잘 받아들이는 너그러움도 있어야 한다. 언제나 서로 기꺼이 용서하고 기꺼이 용서받아야 한다.
 
우리 모두 사랑으로 덮을 수 있어야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
하나님 아버지,마음의 상처와 아픔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치료의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가정의 모든 가족들이 주님 안에서 건강한 삶을 삶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재수목사 / 광암교회

 


 

수-거룩한 비젼으로
본문: 왕상 8:56~61
찬송가: 359장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거룩한 비전을 품을 수 있고 복된 인생을 살 수 있다.
 
솔로몬이 왕이 된 후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일천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응답해주셔서 지혜의 왕이 되었고,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전하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응답하셔서 로마를 복음화하고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이 땅을 구원하시려는 거룩한 비전을 주셨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비전으로 출발해야 한다.
 
먼저,거룩한 비전은 하나님의 택하신 성도들만이 품을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소원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전을 짓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비전은 세상의 허황된 꿈과는 다르다. 자신의 욕망이나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에 이 꿈은 택하심을 받은 성도들만이 가질 수 있다. 이제는 내 뜻이나 내 목표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비젼을 품고 그 꿈을 위해 충성하여 거룩한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한다.
 
둘째,거룩한 비전은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신앙공동체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그의 순종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셨고,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가지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여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다. 그리고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택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비전을 이루어 가시고자 천국열쇠를 주셔서 주님의 몸된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귀한 사명을 맡겨주셨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며 죽은 영혼들을 살리는 곳은 주님의 피 값으로 세우신 거룩한 공동체인 교회뿐이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충성하여 주님과 함께 천년 동안 왕 노릇 한다는 거룩한 비전을 품고 진실된 그리스도의 증인들로 나아가야 한다. 이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주님은 거룩한 교회를 통하여 새로운 비전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셋째,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완성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의 해방을 경험하고 광야 40년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였고,도우심이었다. 우리가 비전을 이루기 위해 철저히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온전한 마음으로 협력하고,목숨을 내놓고 나가서 싸워야 승리의 면류관을 차지할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거룩한 비전으로 헌신할 때 우리는 반드시 악한 자들을 물리치고 승리할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 안에서 거룩한 비전을 품게 하셨습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 안에서 거룩한 신앙공동체인 교회를 통해 그 비전을 이루어 가도록 충성을 다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강명식목사 / 시온반석교회

 


 

목-은혜로 사는 사람
본문: 빌레몬서1:8~16
찬송가: 310장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당시 '만물의 근원이 무엇이냐?'하는 자연 연구에 집착했던 철학을 인간 성찰의 방향으로 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 특히 인간으로서 자아를 살피려면 자기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는 '너 자신을 알라'는 가르침으로 유명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철학적 차원이 아닌 신앙적 차원에서 우리 자신을 제대로 성찰하기만 한다면,즉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바로 알기만 한다면 누구나 겸손히 그 분 앞에 엎드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기보다 남을 탓하고 비난하는 데 빠른 세대이다. 자신의 무지와 허물을 잘 알지 못하고 남의 약점과 허물을 들춰내고 흔들려 한다. 그래서 한때 유명했던 말이 '너나 잘하세요'였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오네시모'라는 사람이 나온다. 이 사람은 빌레몬의 집에서 일하는 종이었다. 하지만 그는 충직한 종이 아니었다. 주인 빌레몬에게 큰 해를 끼치고 도망친 사람이다. 멀리 도망친 오네시모가 또 다른 곳에서 죄를 짓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거기서 사도 바울을 만난다. 누굴 만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네시모는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고 완전히 거듭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다. 만일 바울이 오네시모를 정죄와 비판의 눈으로 보았다면 그를 회피했을 것이다. 바울은 죄인 중에 괴수였던 자신을 생각하며 죄수 오네시모를 긍휼의 눈으로 보았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에게 다가갔고 보듬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다.
 
오네시모는 마음을 열고 복음을 들었다. 마음을 열었을 때 즉 마음 밭을 갈아엎을 준비된 마음,사모하는 마음이 될 때 복음에 놀라운 반응이 일어나고 그 열매는 30배,60배,100배가 되는 것이다.
 
오네시모의 변화,그리고 우리의 존재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빼놓고 성립될 수 없다. 예수님을 만나고 믿음을 가졌기에,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가능한 변화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권속이 되고 빛의 자녀가 되고 하는 데는 우리의 공로가 없다. 오직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오네시모의 남은 인생은 은혜로 사는 인생이 되었다. 바울의 사랑,빌레몬의 용서,그리고 그로 하여금 변화될 수 있도록 그를 만나 주신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이 모든 것을 볼 때 오네시모는 은혜에 빚진 사람이요,은혜로 사는 사람이 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 놓을 것이라곤 죄와 허물 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의 길을 가게 되었다. 이것이 은혜이다. 이 은혜를 기억하고 늘 감사하며 사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
하나님 아버지,세상에서 방황하던 죄인을 불러주시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삼아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잊지 않고 오네시모와 같이 새 사람,새 인생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연제국목사 / 주중교회

 


 

금-승리의 인생
본문: 삿 13:25-14:20, 히 11:36-38
찬송가: 347장
 
하나님의 훈련을 받은 광야세대들은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다. 그러나 자녀들을 말씀으로 양육하지 못했을 때 나타난 현상이 사사시대였다.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는 말씀처럼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감정이 우선이고 자기 뜻을 우선시 하는 이 세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볼 수 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치열한 갈등과 현실 속에서 승리케 하시는 능력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고 그 능력을 받아 이 땅에서 승리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한다.
 
삼손을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는가? 성경은 삼손을 누라고 말하고 있을까? 히브리서 11장 믿음장에 삼손이 나와있다는 것,그것도 아브라함과 다윗과 같은 반열의 믿음의 사람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삼손이 블레셋 여인을 만나서 결혼을 하는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히브리서에서 왜 삼손을 세상이 감당치못하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했을까? 삼손의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을까? 보통은 머리카락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성경을 살펴보면 여호와의 영이 임하였을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힘이 생겨났고,여호와의 영이 떠났을 때 능력도 사라졌다고 말씀하고 있다. 힘의 근원은 머리카락이 아닌 여호아의 영에 있었다.
 
삼손의 결혼식 사건에서 보면 그는 자기 감정에 이끌리는 자가 아니라 철처하게 하나님의 영에 이끌림을 받은 사람이었다. 13장 25절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더라',14장 6절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19절에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와 같은 말씀은 무엇을 뜻할까? 삼손은 순간 순간 자기의 감정에 따라 움직인 사람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에 이끌리어 움직인 사람이었다. 14장 4절을 보면 여호와께로부터 이 모든 계획이 진행되고,그 뜻에 따라 순종한 삼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때때로 인정할 수 없고,때로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에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바로 이 믿음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이요,승리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의 근원이었다.
 
이 시대에 삼손을 바라보면서 승리의 인생을 살기 위하여 우리가 누구에게 순종해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다.
 
때로는 그 시대에 조롱과 멸시와 손가락질을 받아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 승리케 하신다. 모든 것을 감당케 하시는 능력이 여호와께 있음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내 감정과 내 뜻과 내 이익을 따라 살아왔던 우리의 이기적인 모습까지도 사랑하시고 세워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참된 승리의 인생은,승리의 능력은 여호와께 있음을 기억하고 어디까지 순종해야 하는 지 알게 하시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병주목사 / 영신교회

 


 

토-자기 욕심이라는 시험
본문: 야고보서 1:14-15
찬송: 342(395)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다가 큰 뼈다귀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소위 횡재를 했다. 요즘 말로 대박을 터트렸다. 뼈다귀를 물고는 기분 좋게 혼자서 즐기려고 개울 건너편으로 가려고 외나무 다리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아니 개울 아래에 어떤 개 한 마리가 큰 뼈다귀 하나를 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외나무 다리를 건너던 개가 그만 개울 아래 있는 개가 물고 있는 뼈다귀까지 욕심이 났다. 그래서 개울 아래 있는 개를 향해 크게 무섭게 짖으면 뼈다귀를 놓고 도망가리라 생각하고 큰 소리를 멍멍하고 짖는 순간 아차 자신이 물고 있던 뼈다귀가 외나무 다라 아래 개울물 속으로 툭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개울 아래 있던 개마저도 보이질 않는게 아닌가. 사실은 개울물에 비췬 자신의 모습을 보고 욕심이 생겨 짖다가 결국 물고 있는 뼈다귀까지 놓치고 만 것이다.
 
요즘 말로 산토끼 잡으려고 애쓰지 말고 집토끼나 잘 지키라는 말이다.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까지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욕심이 화를 부르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뭔가 한 방에 큰 것 한 건을 하려는 심리적 욕구가 생긴다. 그래서 무리한 투자를 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물질에 대한 욕심뿐만 아니라 때로는 명예욕이나 권력욕에 성적 욕망에 까지 지나친 욕망을 추구하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 안에 있는 욕심의 문제를 잘 다스리는 것이 한 해를 탈없이 잘 사는 삶의 진리이다. 진리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하고 소소한 것에 있다. 사실 마음에 생기는 욕심을 잘 다스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아니 불가능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끊임없이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말씀의 다스림을 받고,성령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서는 마음의 욕심을 내려 놓을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은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짓도록 자신의 마음을 욕심 아래 방치하여 내어버려 둔다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욕심이 크면 죄가 되고 죄가 크면 사망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풍선에 욕심이라는 글씨를 쓰고 계속 불면 욕심이란 글씨가 자꾸 커지다가 결국은 펑하고 터지고 말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족하는 마음을 가졌노라고 고백했다. 우리의 마음을 욕심과 같은 허탄한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주의 말씀과 주의 영에 다스림을 받아 주의 일을 행할 때에 욕심으로 인한 시험을 이기게 될 것이다.
 
욕심이 생길 때마다 욕심에 끌려갈 것이 아니라 주의 뜻을 좇아 행할 때에 욕심이라는 시험을 이겨 이 한 해 동안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올 한해도 욕심을 좇아 살다가 시험에 넘어져 평안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주의 말씀과 성령에 순종하여 주의 일을 행함으로 욕심이라는 시험을 이겨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병호목사 / 서울믿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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