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권사'로 본격 활동 전개

'교육권사'로 본격 활동 전개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 이연옥명예회장의 향유 가득한 옥합 <2>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2년 01월 09일(월) 15:38

한경직목사의 '교육 권사'로 본격적인 활동
정신여고 김필례이사장 권유,주선애권사와 함께 모임 주력

 
여전도회를 내가 구체적으로 경험하여 알게된 때는 1948년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와 서울 영락교회에 다니면서부터였다. 영락교회 여전도회 회원들 가운데는 여전도회 전국연합회에서 임원을 두루 역임한 쟁쟁한 인물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 교회의 여전도회가 여전도회 전국연합회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때만 해도 회비는 열심히 냈으나 여전도회의 활동에는 아주 소극적이었다. 아예 활동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랬던 내가 여전도회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 활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때가 있었는데 그 해가 1965년이었다. 그 무렵 나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정신여자고등학교의 교목실,교감,그리고 정신여자중학교에서 교장으로 일했다. 이때 이 학교의 이사장 김필례 선생님의 강력한 권유로 여전도회 활동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교장으로서 이사장님의 권면을 가볍게 듣고 허투로 넘어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김필례선생님은 "회장은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원칙이니 여전도회에 나가서 봉사하시지요"라고 하셨다. 이때 나의 대답은 "이사장님,지금 제가 교장 노릇을 처음 하다 보니 업무에 좀 더 익숙해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전도회에 나가서 봉사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자 김필례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권유하셨다. "여전도회가 늘 나오라고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웨만하면 봉사하시지요." 김필례 선생님이 이렇듯 나에게 여전도회 활동을 간곡하게 권하시는 이유를 알아보았다. 이를 통해 나는 김필례 선생님이 1950년대에 여전도회연합회에서 회장으로 10년 여 봉사하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정신여고 교장으로 일하시면서 말이다.
 
이 어른이 여전도회를 굉장한 차원으로 높이 올려 놓으셨다는 점도 알게 됐다. 이리하여나는 그분의 강한 이끄심으로 여전도회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도회 서울연합회의 모임에 참여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영락교회 권사님들이 서울연합회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던 시절이었다. 연세가 많으신 권사님들이 내가 여전도회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지에 큰 관심을 갖고 계셨다. 주선애 선생님도 그때 함께 참여하고 활동하셨다. 어느 날 주일 저녁예배 중 한경직목사님이 주선애 선생님과 나를 호명하시면 '교육 권사'로 임명하셨다.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아주 희귀한 교회 직분이었다. 순간 매우 당황스러웠던 주 선생님은 내 얼굴을 쳐다봤고,나 또한 동일한 이유로 주 선생님을 쳐다봤다. 우리는 잠시 동안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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