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을 찾아서

주인공을 찾아서

[ 문화 ] 성탄에 읽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12월 17일(목) 13:30

 글 : 김 옥
그림 : 최현정

 

처음 초인종이 울렸을 때,
나는 늦잠을 자고 있었어요. 크리스마스 아침이거든요.  
크리스마스라고 해봐야 특별한 날도 아니에요. 빌딩 청소하는 할머니는 출근한 뒤였고, 나는 차려놓은 밥을 먹고 종일 게임을 하면서 지내겠지요. 어제도 밤새 신나게 컴퓨터게임을 했어요. 그래서 늦잠을 잤고요. 다시 자려는데 또 초인종 소리가 울렸어요. 부스스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어요.

 "누구세요?"
 현관에는 아무도 없어요.
 "이상하다. 분명히 소리가 났는데."
찬바람이 휙 들어왔어요. 몸이 부르르 떨렸어요.
 "아이 씨, 누가 장난치는 건데."

혹 장난기 많은 우람이 아닐까요? 우람이는 바로 옆집 살거든요. 문을 닫으려는 데 바닥에 빨간 봉투가 놓여있는 게 보였어요.
 "뭐지?"


 사랑하는 현수에게
 생일 축하 잔치에 꼭 와주기 바란다.   
 모이는 날 : 오늘 크리스마스 저녁  
       온 세상에 어둠이 내리고
       전나무 가지 사이로 별들이 반짝일 때
 주의사항 : 수저나 젓가락은 가지고 오지 마세요.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생일인 주인공이


겉에는 "사랑하는 현수에게"라고 써있어요. 역시 우람이가 몰래 놓고 갔나 봐요. 웃음이 나왔어요. 열어보니 그건 생일 초대장이었어요.

우와, 우람이가 크게 한턱 쏠 모양이이에요. 단 한 번도 생일잔치에 초대받아본 경험이 없는 나는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어요. 역시 내 친구 우람이가 최고예요. 마음이 바빠졌어요. 바지를 꿰차는데 벌렁 넘어져 방바닥을 뒹굴고 말았으니까요.

대충 밥을 먹고 집을 나서는 데 마침 태권도복을 입은 우람이가 오고 있어요. 나를 보더니 반갑게 웃었어요.
 "너희 집에 가는 길이야. 생일 축하해."
 "무슨 생일?"

   

우람이는 전혀 모르는 얼굴이에요. 알고 보니 우람이 생일은 뜨거운 여름이었어요. 우람이를 낳자마자 엄마가 미역국을 하루에 열 그릇씩 먹어서 땀띠가 다 났을 정도래요. 정신없이 태권도장으로 달려가는 우람이를 보면서 나는 "만세!" 소리쳤어요. 초대장은 누군가 굉장한 사람이 보낸 게 분명해요. 크리스마스에 생일잔치를 연다는 건 정말 멋져 보였거든요. 도대체 누가 크리스마스 초대장을 놓고 간 걸까요? 나는 주머니 속 초대장을 꺼내 보았어요. 초대장을 보낸 사람은 분명 자기를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라고 했어요.

 "도대체 크리스마스 주인공이 누구라는 거야?"

답답해서 옆에 전봇대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그런데 그 옆에 두 사람이 서있는 거예요. 금방까지 연극무대에라도 서다 온 것처럼 치렁치렁한 가죽옷을 입은 그 사람들은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아휴, 추워라. 대체 우리가 오늘 얼마나 걸어온 거야? 역시 에덴동산에 있을 때가 좋았는데."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듯 했어요.
 "힘들지? 조금만 참아. 거의 다 왔어. 그래도 감사한 일이지. 이렇게 가죽 옷도 입혀 주시고, 파티에 초대도 해 주시고. 안 그래? 하와?"

그러자 하와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또 말했어요.
 "그렇긴 하지만 사실 난 이 곳까지 걸어오면서 얼마나 후회를 하는지 몰라요."
 "뭘?"
 "우리 후손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요. 죄가 넘치는 세상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 충격이야. 이게 다 우리 탓인 듯 슬퍼요."
 "그건 사실이지. 당신이 선악과만 따먹지 않았어도??"
 "뭐라고요? 당신도 맛있다고 더 먹자고 할 때는 언제고? 또 내 탓이에요?"
 "뭐, 그거야, 뭐, 물론 그랬지만, 나도 그 일을 엄청 후회한다고."
 남자가 쩔쩔매자 여자가 말했어요.
 "아무튼 그 분이 오셔서 모든 것을 바로 잡아 놓았으니 다행이에요."
 "맞아, 그 분이 이루신 일을 생각하면 놀라울 뿐이야."
 "당연하죠, 정말 위대하시고 사랑이 넘치는 분이세요."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까지 박히시고."
 "그러니 어서 파티 장소에 갑시다. 늦겠어요. 아담."

아담이라고? 내 귀가 번쩍 띄었어요. 어디선가 많이 듣던 이름이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여자의 이름도 들어본 것 같아요. 아담과 하와, 어디서지? 우람이 삼촌이랑 여자 친구이름인가? 컴퓨터 게임이던가? 헷갈렸어요. 신호등이 바뀌자 아담과 하와라는 두 사람은 골목길 쪽으로 갔어요.

다들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어요. 선물 꾸러미를 든 아이들도 많이 지나가고요. 모두 행복해 보였어요. 이 많은 사람들 중에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화려한 불빛, 신나는 음악, 선물들과 멋진 트리까지 온통 눈부시게 아름다운 세상이었어요. 하지만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나는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을 찾아 거리를 헤매기 시작했어요.
 '도대체 어딜 가야 찾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생일잔치에 초대받기는 틀렸나 봐요. 우울한 내 마음과 달리 거리에는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어요.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가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안주신대'

아주 어릴 때였어요.
불이 하나씩 꺼지듯이 엄마도 떠나고, 아빠마저 떠나고 할머니 집에 맡겨졌을 때도 나는 울지 않았어요. 울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되려고 했어요. 착한 아이가 되기만 하면 엄마도 아빠도 다시 돌아와 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엄마 아빠는 오지 않고 나는 나쁜 아이처럼 밤마다 이불에 오줌을 싸곤 했어요.

'맞아, 울면 착한 아이가 아니지.'

나는 온갖 크리스마스 선물로 꽉 들어찬 성처럼 웅장한 백화점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어요. 크리스마스 잔치에만은 꼭 가고 싶었어요.

'전나무 사이로 별이 빛나기 전에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을 찾아야 할 텐데.'

마음이 급해졌어요. 그 때 휴대폰 가게 앞의 산타할아버지가 그런 나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드는 거예요. 반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렇지, 산타할아버지였어.'

크리스마스 때 산타할아버지처럼 인기 많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텔레비전 광고마다 나와야 하고, 아이들 선물도 줘야하고, 노래 속에도, 크리스마스 동화책 속에도 산타가 등장하지 않는 경우는 없어요. 크리스마스 주인공은 역시 산타였어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신발 가게 앞에도 음식점 앞에도 심지어는 술집 앞의 크리스마스 트리에도 산타할아버지는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요.

나는 휴대폰 가게 앞의 산타할아버지에게 다가갔어요.
 "저 하나만 여쭤 봐도 돼요?"
 "허허허, 그래, 꼬마야 뭐가 궁금하니?"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주인공 맞죠?"
 "당연하지, 나 말고 감히 어느 누구를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니?"
 아저씨는 기분이 좋은지 하얀 수염을 쓸면서 다정하게 물었습니다.
 "그래, 뭐가 갖고 싶지? 잘 골라보렴."

산타 할아버지는 아니 산타 아저씨는 휴대폰들이 진열된 유리 전시장 앞으로 데리고 갔어요. 우와, 이걸 선물로 주려나 봐요. 나는 가장 마음에 드는 휴대폰을 가리켰어요.
 
"멋진 걸로 골랐구나, 매장 안에는 물건이 더 많단다. 요즘 특별 할인 기간이라 아주 싸단다. 천천히 골라보고 맘에 드는 걸로 사렴."

알고 보니 산타 아저씨는 휴대폰 매장의 직원이었어요. 에이, 난 또 진짜 산타인 줄 알았네.
 '수염부터 잡아당겨 볼걸.'

그나저나 진짜 산타는 어디 있는 걸까요? 하긴 나는 산타 할아버지 따위는 믿지 않아요. 내게는 산타 역할을 할 부모님도 없으니까요. 그건 크리스마스 때면 어른들이 써먹는 거짓말이라는 것도 잘 아니까요. 그러고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서 집으로 가기로 했어요. 게임이나 할 걸 그랬나 봐요. 그 때였어요.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치는 거예요.
 "아야."
 나도 모르게 화가 나려고 했어요.
 "미안, 아팠니? 말 좀 물어보자. 꼬마야."
 그 아저씨는 건장한 체격의 수염을 기른 아저씨였어요.
 "혹시 키가 아주 큰 남자와 여자 못 보았니?"
 그러다 함께 뒤따라오던 다른 사람들이 말했어요.
 "베드로 형님, 어린 아이가 뭘 알겠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여기저기 더 찾아나 봅시다. 이러다 잔치에 늦겠다구요."
 "요한, 서두르지 마라. 어차피 그 분들을 찾아야 잔치 장소를 알 수 있지 않겠니?"
 베드로라는 아저씨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요한이라는 사람을 달래더니 다시 내게 물었어요.
 "두 분 다 가죽 옷을 입었는데."
 가죽옷이라면? 내 귀가 번쩍 띄었어요.
 "아담 아저씨랑 하와 아줌마 말이죠? 그 사람들 아까 봤어요."
 "어이, 마태, 마가, 야고보, 다들 빨리 와봐. 이 꼬마가 그 분들을 보았다는 군."

요한이라는 아저씨가 온 거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소리로 누군가를 불렀어요. 그러자 또 한 떼의 사람들이 달려왔어요. 어딘가 서로 닮은 듯 하면서도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었어요.
 "그래, 그 분들이 어디로 가든?"
 "이 신호등을 건너 저기 골목길 쪽으로 갔어요."
 "고맙구나. 어서들 가자고, 이러다 크리스마스 생일 축하 잔치에 늦겠어."
 요한이라는 사람이 재촉했어요. 그런데 베드로라는 사람이 말했어요.
 "그런데 요한, 이 아이 누군가 닮지 않았니?"
 "흐흐, 형님, 나도 그 생각을 하는 중이었어요."
 "그렇지? 물고기와 보리떡을 가져왔던 그 아이랑 눈매며 이마가 꼭 닮았구나."
 베드로란 사람은 부드럽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다들 우르르 길을 건너갔어요.
 "분명히 크리스마스 생일 축하 잔치라고 했지?"

나는 얼른 초대장을 꺼내 보았어요. 그럼 저 사람들도 나처럼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인가 봐요. 나는 서둘러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갔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우리 동네 쪽으로 가고 있어요. 그러더니 우리 집 옆에 있는 교회로 가는 게 아니겠어요? 언덕 위 붉은 벽돌 교회였어요. 창에서는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전나무 가지 사이로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어요.

그래요. 생일 축하 잔치를 하는 곳은 바로 우리 동네에 있는 교회였던 거예요.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걸 하루 종일 헤매고 다녔던 거예요. 

나는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처음 교회에 나오니 쑥스러웠어요. 따뜻한 그 안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어요. 가죽옷을 입은 아담과 하와, 그리고 베드로랑 요한이랑 다른 아저씨들도 앉아 있었고요. 심지어는 초대받지 않은 생쥐와 너구리, 토끼랑 여우랑 두더지까지도 모여들어 누군가의 생일잔치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두 볼에 보조개가 예쁜 주일학교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 주었어요.
 "생일 축하 잔치 초대장을 받고 왔지? 잘 왔어."

알고 보니 초대장은 바로 주일학교 선생님이 보낸 거였어요. 선생님은 내가 몇 학년인지도 알고,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것도 다 알고 있었어요. 

그날 나는 예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님이었구나."

산타할아버지도 아니고 썰매 끄는 사슴도 아닌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예수님이었어요.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신데 오늘 크리스마스 날 아기 예수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 거예요.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 오늘 태어나신 거예요. 
 "죽기 위해 태어나는 경우도 있구나."
 그런데 그 분의 죽음으로 인해 나는 이제 살아났어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거래요.
 '우와, 내게도 아빠가 생기다니??'
 나는 망설이지 않고 중얼거렸어요.
 "예수님 저는 원해요. 간절히 원해요. 어서 제 마음 속으로 들어와 주세요."

그러자 무언가 작은 불빛 하나가 내 속에서 환히 켜지는 것 같았어요. 예수님의 생명의 불빛이었어요. 엄마 아빠가 떠나간 어둡던 자리가 따뜻한 불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 같았어요. 눈물이 흘렀어요.
 나는 마음이 벅차 중얼거렸어요.
 "예수님 나를 생일잔치에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정말로요, 진짜 진짜로요, 생일 축하합니다."
 모두들 예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어요. 생일 축하 잔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잘 알지 못하지만 나도 열심히 따라 불렀어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베드로 아저씨의 목청이 가장 컸어요. 그러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찡긋 윙크를 하는 거예요. 나는 다른 사람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는데 아무도 베드로랑 그 일행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없었어요. 알고 보니 그 분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어요. 자기들의 선생님이신 예수님의 생일잔치니까 빠짐없이 축하해 주러 왔나 봐요. 아담 아저씨가 사과를 먹으면서 하와 아줌마에게 말하는 소리도 내 귀에는 잘 들렸어요.
 "역시 내가 이름 짓기는 잘 하는 것 같아. 사과를 만약 감자나 배추라고 지었더라면 이렇게 새콤달콤 맛있게 느껴질까?"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여주니까 아담 아저씨가 고맙다고 내게 웃어주었어요.

우리는 맛있는 떡도 먹고 귤도 먹었어요.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여러 광주리가 남았어요. 정말 즐거운 생일 축하 잔치였어요. 나는 예쁜 우리 선생님이 주신 떡이랑 귤 하나를 가만히 주머니 속에 넣었어요. 그건 우리 할머니에게 드릴 나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어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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