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패러디' 통해 대중과 소통

'명화 패러디' 통해 대중과 소통

[ 문화 ] 민경아 개인전, '명화와 성경의 만남'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09년 09월 28일(월) 11:38
라틴 미술의 거장 페르난도 보테로展이 최근 열렬한 호응 끝에 막을 내렸다. 보테로는 '독창성'으로 대변되는 화가로 작품 활동 전반에 걸쳐 경의를 표하는 심정으로 루벤스 벨라스케스 뒤러 보나르 세잔 피카소 등 거장들의 그림을 자신만의 표현양식을 통해 재해석했다. 같은 소재로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시도로 주목받고 있는 예술가가 있다. 민경아. 장신대 김경진교수의 부인이기도 하다. 지난 8월 25일부터 9월 30일까지 장신대 갤러리에는 '명화와 성경의 만남'을 주제로 민경아화가의 개인전이 열렸다.

   
▲ 나들 01_45x60cm, Linocut, 민경아, 2008

대표작 'Mes(나 들)'에서 민 씨는 달리의 십자가 책형과 김홍도, 신윤복 풍속화에 나오는 인물들을 새롭게 배치해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되도록 했다. 김홍도作 '대장간'과 '활쏘기'에 등장하는 인물을 각각 예수님 발에 못을 박고 가슴에 활을 쏘는 역할로, 신윤복作 '단오풍정'에 등장하는 그네뛰는 여인은 예수님께서 못박히시고 있는 와중에도 매달려 뛰노는 역할로, 김홍도作 '서당'에서 공부못해 우는 아이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는 철든 아이의 역할로 재구성했다. '나 들(Mes)'은 '나'의 복수형을 뜻하는 합성어. 작가는 "십자가를 바라보는 모습들이 모두 제 모습 같아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김홍도 신윤복이라 하면 명실공히 우리나라 고전미술의 대가로 통한다. 이들을 소재로 한 드라마와 영화가 제작돼 흥행에 성공한 이후엔 남녀노소 구분할 것 없이 대중들에 더욱 친근한 인물이 됐다. 민경아 씨는 "기독교적인 내용이지만 비기독교인들에게도 거부감 없도록 하기 위해 명화 패러디 형식으로 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때마침 동서양이 하나가 되고 복고풍이 유행하는 시대적 조류와도 맞아떨어졌다. "성경의 내용을 독특한 방식으로 시각화함으로써 기독교 문화의 폐쇄성을 탈피하고자 했다"는 민 씨는 "너무나 많은 고민끝에 나온 작업들"이라며 작품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드러냈다.

소통없는 신학은 본래 존재하는 목적을 상실하고 만다. 대중과 친숙한 소재를 통해 '십자가 신앙'을 전하고자 노력한 미술가의 작품이 신학교에서 전시된 것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학업에 지친 학생들에게 신선한 활력소가 된 것은 물론. "작가는 이 그림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진지한 자세로 저마다의 감상평을 논하던 학생들은 "한국사람들도 다 죄인이라는 뜻이 아닐까"라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냈다. 전시 후 대표작 5점이 장신대에 기증되기도 했다.

   
▲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장신대 학생들.
민 씨의 작품들은 독창적인 발상을 인정받아 미술잡지에도 여러번 소개된 바 있다. "진지하게 기독교 미술에 임하고 있는 작가가 있고 기독교 미술이 이 시대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는 기독교 미술계 뿐만 아니라 일반 미술계에서도 경쟁력있는 작품을 추구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믿음과 은혜를 강조할 때 놓치기 쉬운 것 중 하나가 전문성이다.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겠다는 미술가의 포부가 더욱 반가운 이유다.

한편 기독교 미술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조언도 잊지 않았다. 물론 교회를 향한 애정에서 기반한 것. 자신도 기독교 미술인이라는 정체성에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 씨는 "일반 미술계에서는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하면서 기독교적인 내용만 내세우다 보면 예술성이 떨어지게 되는 우를 범하기 쉽다"며 "그러한 기독교 문화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형식면에서도 더욱 심혈을 기울여 작업했다"고 했다. 조심스레 건네는 말 한마디마다 오랜시간 숙성된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다.

지난 5월에는 다부진 각오로 작업한 그림들이 한전프라자 갤러리 기획공모에 당선되어 개인전을 열었다. 이 기간 중 미술계 블루칩 발굴의 모토로 기획된 '블루닷아시아'라는 전시에 초대되어 미술계에서도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기독교 문화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질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많은 것이 현실"이라며 그는 "작은 역할이라도 싶다"고 했다. 화가 민경아는 아름답게 포장하기 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편을 택했다. 그리고 기독교 미술의 발전을 꾀하는 길에 의미있는 걸음들을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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