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이시잖아요!"

"목사님이시잖아요!"

[ 목양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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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5월 29일(금) 11:06

이상천/ 목사 ㆍ 강릉교회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사실이다. 가지가 없어도 바람이 잘 날이 없는데 가지가 많으니 오죽하겠는가? 봄바람이 불어도 흔들 흔들, 바닷바람이 불어도, 산바람이 불어도 여지없이 흔들린다. 교회 식구들이 하나 둘씩 불어나다 보니 어느새, 모든 가족들이 서로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목회에 있어서는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식구를 허락해 주신 주님께 너무 감사드린다. 교회 식구들이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어도 우리 교회는 변함없이 '생명 살리기'를 위해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주님 오실 때까지 누가 뭐래도 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총회에서 '3백만 성도 운동'을 전개해줘서 정말 감사드린다. 교회가 해야 할 사명,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사명은 생명 살리기 뿐이기 때문이다.

그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이 잘 날이 없으니 크고 작은 갈등이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일어난다. 그 갈등(葛藤)이 바로 칡과 등나무다. '칡 갈'자와 '등나무 등'자가 어울릴 때 갈등(葛藤)이다. 어제는 봄비가 내렸다. 이곳 저곳에서는 모내기 준비가 한창이다. 산천초목은 가뭄에 내리는 단비에 춤을 춘다. 오늘은 태백산맥이 더 푸르고 짖다. 요즘에는 등나무 꽃이 한창이어서 등꽃을 많이들 따고 있다. 등나무는 교회 뜰에도 심어 놓았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있다. 포도송이처럼 한 덩어리가 된 자주빛 꽃이 넝쿨에 달려서 아래로 축 쳐서 정말 탐스럽게 달려 있다. 향기 또한 진하게 번진다. 그런데 이 등꽃은 칡꽃과 쌍둥이처럼 꼭 닮았다. 꽃 모양도 비슷하고 색깔도 비슷하고 나무를 감고 올라가 기생하는 것도 흡사하다. 이 두 나무는 서로에 대한 영역과 세력 다툼도 대단하다. 그래서 아름다운 금수강산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칡꽃이 만발한 지역에는 등나무와 등꽃을 찾아 볼 수 없고, 등꽃이 자태를 뽐내는 지역에는 칡의 환하고 맑은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는 상태를 갈등(葛藤)이라고 한단다.

칡과 등나무의 얽힘으로 인해 여러 가지 아픔과 상처를 가진 성도가 어느 날 찾아와 목회상담을 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귀를 기울여 들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서로에 대한 개인적인 갈등이었다. 위로도 하고 격려도 했다. 하도 사생활을 사사건건 얘기하길래 이제 개인적인 이야기는 그만 하라고 권했다. 그때 그분이 나에게 충격적인 한 마디를 던졌다. 그 분이 들려주신 주님의 음성은 "목사님은 우리 목사님이시잖아요~!, 강릉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목사님이시잖아요~! 그러니깐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재미없고 지루하지만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였다.

그 다음에 그분이 하신 얘기는 정말이지 무슨 얘기인지 들리지도 않았고,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었으니깐. '그래 나는 목사야. 목사로 부름 받고, 세움 받았지. 강릉교회 담임목사로 위임받았지. 그런데 칡과 등나무처럼 얽혀 있는 성도들의 심령을 얘기하는데 들어주지도 못했지. 지금까지 무엇을 했지?'

분명히 목회를 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나 자신의 목회가 의심스러워진다. 그리고 오늘도 어디선가 들려온다. "목사님은 우리 목사님이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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