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영원한 여인

사랑하는 나의 영원한 여인

[ 목양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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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5월 05일(화) 17:00

이상천 / 목사 ㆍ 강릉교회


한 여인에게로만 내 모든 것을 사로잡혔다. 그 여인도 나를 생명처럼 사랑했다.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뭐라고 말로나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사랑을 내게 주었다. 그 여인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난 오로지 그 여인의 향기로 하루의 눈을 뜨고 하루를 마감하며 눈을 감았다. 그 여인의 옷깃 소리만 들려도 맘이 설레서 가슴이 콩닥거렸고, 그 여인의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에 헤어짐의 섭섭함에 눈물을 흘리면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다. 그 여인의 가까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에 천하를 다 가진 듯이 즐거워하며 행복해서 마냥 웃었다. 그 여인은 제 인생의 전부였고, 나의 우주였고, 내 삶에 절대적이었다. 그 여인이 없는 제 인생은 생각조차 하기 싫고,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저는 다른 것에 관심이 점점 커져만 갔고, 그 여인과 사이가 점점 더 거리가 멀어져 갔다. 그러고선 그 여인을 잊어버리고 많은 세월을 보냈다. 그 많은 세월을 방황하며 다른 여인을 사랑하면서 지내다가, 이제 와서야 나는 다시 그 여인을 매일 매일 그리워한다. 지금은 그 여인을 생각만 해도 콧등이 찡하게 울린다. 잊어 버렸던 그 여인의 이름만 불러도 그리움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그 여인의 따스한 품이며, 그 향기로운 살내가 너무나도 그립다. 그렇게 내 인생의 절대적이었던 그 여인은 많은 세월을 보내는 동안 너무도 작아져서 이제는 제 품안에 쏘옥 안기도록 아담해졌다. 여인은 그렇게 많은 세월을 그 곁에서 떠나버렸던 나를 잊지 못하고 새벽마다 무릎을 꿇고 눈물로 기도드린다. 모든 정성과 사랑을 다 주고도 모자라 오늘도 잊을 수 없는 못난 아들을 위해서.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아름답게 설명을 한다. 사실 사랑은 참으로 아름답고 향기롭다. 그런데 나는 사랑은 참으로 아픈거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아들을 십자가에 내 주신 참으로 아픈 사랑이기에 그렇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 순종의 사랑도 참으로 말로 표현 못하는 아픈 사랑이기에 그렇다. '울 엄마'의 사랑도 참으로 아름답고 향기 나는 사랑이지만 참으로 아들을 위한 아픔이 많은 사랑이다. 낳으실 때, 죽을 힘을 다해 해산의 아픔을 견딘 사랑이다. 기르시면서 제대로 웃음 한 번 안겨드리지 못한 아들을 버리시지도 않고 포기하시지도 않고 아픈 사랑으로 기르셨기에 그렇다. 팔순이 넘으신 지금도 이 못난 아들을 위해서 아픈 사랑으로 십자가 앞에 엎드리고 계신다. 내 아내가 날 사랑하는 것도 아픈 사랑이다. 못난 나는 목회의 모든 짐들을 여리디 여린 내 아내에게 동의 한 마디 구하지 않고 다 내려놓기에 그렇다. 내 아내는 수 십년 동안 아픈 사랑으로 날 보듬고 있다. 강릉교회가 나를 사랑하는 것도 아픈 사랑이다. 목사의 실수를 단 한마디도 책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그 아픈 사랑으로 품고 기다려주니 그렇다. 강릉 가족들도 아픈 사랑으로 이 못난 목사의 부족함을 넉넉하게 보듬어 준다.

사랑은 모든 우주의 결론이다. 사랑은 인생의 해답이다. 사랑은 삶의 전부이다. 사랑 앞에 아무것도 없고, 사랑 다음에도 아무것도 없다. 사랑이면 모든 것이 온전해진다. 사랑이면 모든 상처를 싸매고 낫게 한다. 사랑이면 모든 것을 수용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이신가 보다. 예수님도 사랑이시고, 성령님도 사랑만 가르쳐 주신다. 사랑의 아버지시기에 모든 것이 가능하신가 보다.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자유 부인 '울 엄마'를 생각해 본다. 아버님은 여러해 전 하늘나라로 가셨기에 나는 어머니를 '자유 부인'이라 부른다. 지금도 안부 전화를 드리면서 '어머니~!' 보다는 '엄마~!'라고 부르는 철없는 아들을 걱정하시는 팔순이 넘으신 울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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