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받아들이는 목회자의 자세

고난 받아들이는 목회자의 자세

[ 기고 ] 순교 신앙과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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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4월 16일(목) 09:39

   

▲ 림 인 식목사
증경총회장
노량진교회 원로

지난 10일 순복음노원교회에서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발표회 중 안만수목사(화평교회), 이덕주교수(감신대), 박명수교수(서울신대)의 '순교 신앙과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며' 주제의 발표에 대한 노량진교회 림인식원로목사의 논찬을 정리한다.

 

아담의 피를 받아 지구에 태어난 후손치고 고난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고난은 다 싫어하지만 누구나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난을 어떻게 이기고 극복하느냐에 따라 목회의 성패는 달라지게 된다. 나는 목회자와 교회가 받는 고난을 크게 네 가지라고 생각한다.

그 첫째는 스스로 만든 고난이다. 구약의 야곱은 좋은 것을 얻으려는 목적은 좋았지만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야곱은 형과는 원수가 되고 부모에게는 불효자가 됐으며, 타국에서 종살이를 하게 된다. 이러한 고난은 자신의 허물 때문에 받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에게 복을 주셨다. 넘치는 복을 내려주셨다. 그러나 그 많은 복이 스스로 만든 고난의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그가 얍복강에서 회개를 통해 근본이 변화됐을 때에서야 문제는 해결됐다.

 목회자들 중 '나는 주를 위해 고난받는다'라고 생각하는 이가 대부분이지만 생각밖에 스스로 만든 고난이 너무 많다. 우리가 받는 고난의 절반 이상은 아마도 야곱처럼 스스로 만든 고난일 것이다.

두 번째는 남의 죄값으로 대신 받는 고난이다. 구약의 요셉은 형들의 시기, 질투, 증오, 죄 때문에 노예가 되었다. 또한 보디발의 아내로 인해 죄수가 된다.

그러나 이 고난이 죄인에게는 형벌, 심판, 저주, 멸망이 되겠지만 죄 없는 사람에게는 연단, 교육, 전환점, 축복, 영광, 보상이 됐다. 요셉의 고난은 억울한 고난 같지만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경험했고 순수한 신앙을 배웠으며, 애굽의 수상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구원해 내게 됐다. 이처럼 남의 죄 때문에 대신 받는 고난의 절정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다. 우리 목회자들이 고난 중에서도 남의 죄 때문에 대신 받는 고난이 있으면 있을수록 예수님의 고난을 체휼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스스로 택한 고난이다. 바울 사도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생명조차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것이 스스로 택한 고난이다. 그러나 어떠한 고난에서도 그는 결코 괴로워하지 않았다. 사람은 스스로가 택한 고난은 괴로움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괴로움이 많을수록 오히려 보람있게 생각하고 만족하고 영광으로 생각한다. 오늘 이 순교자들의 고난은 스스로 택한 고난이다. 스스로가 택한 고난이 강할수록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종이 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한 가지는 알 수 없는 고난이다. 욥의 고난이 그랬다. 우리 목회자들은 스스로 알 수 없는 고난을 통해서도 성장하며 큰 축복을 받게 된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하시는 고난, 스스로 알 수 없는 고난을 당하시면서 일생을 사셨다. 그러나 오늘 우리 한국교회와 목회자는 스스로 만든 고난을 너무 많이 당하고 있다. 목적은 이 민족을 살리는 것이고 죄인을 구원하자는 것이지만 야곱처럼 그 과정에서 스스로 고난을 만들어낸다. 바로 이런 것 때문에 교회는 성장했지만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스스로 만든 고난은 외부적 조건이 아무리 만들어져도 해결되지 않는다. 야곱처럼 얍복강의 체험 속에서 변화돼야 한다. 한국전쟁 당시 목회자와 교회들은 스스로 만든 고난이 적었다. 그리고 남의 죄 때문에 대신 받는 고난, 스스로 택한 고난, 스스로 알 수 없는 고난을 많이 당하면서 그렇게 목회를 이끌어왔다.

오늘 고난주간, 성금요일 아침 고난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이제 우리는 스스로 만든 고난을 좀 본질적으로 없애기 위해 노력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좀 더 남의 죄를 대신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스스로 택한 고난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알 수 없는 고난도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과 능력으로 극복하면서 목회해 보자. 아마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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