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1백주년 후 4반세기

한국교회 1백주년 후 4반세기

[ 특집 ] 4월 특집 / 한국 기독교 1백주년 이후 25년을 조명한다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4월 02일(목) 09:54

한국교회의 대사회적 위상과 이미지가 최근 들어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2007년 개정사학법 재개정 투쟁을 통해 대사회적으로 기독교계의 목소리를 표출시킨 바 있는 한국교회는 태안에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하자 기민하고 효과적인 대처에 나선 데 이어 이후에도 봉사단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섬김을 실천했다. 이어 제주 선교 백주년을 기념해 열린 총회 기간 중에는 4개 장로교단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연합예배를 갖고 신사참배와 분열의 죄책 등에 대해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와 함께 본 교단 '3백만 성도운동'을 시발로, 각 교단들도 선교적 사명과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한 가시적 조치들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의 기운이 무르익어 가는 가운데 교회 내적으로는 고질적인 병폐들이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어 변화와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본보는 주요 현안들을 통해 이 가운데 나타난 공통적인 요인들을 찾아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 편집자 주

 


 

   
▲ 1984년 한국 기독교 1백주년을 기념해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1백주년 선교대회' 광경. 연인원 4백만명의 성도가 운집했었다.
현재 한국교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갈등과 문제들에는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발견된다. 오늘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관과 단체 또 갈등을 겪고 있는 사업들은 시기적으로 유사한 출발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는 이른바 '양화진 사태'를 통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기독교백주년사업협의회'와 최근 본 교단 소속 인사들 간에 법정 다툼으로 비화됐던 '찬송가공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출범 20년을 앞두고 전에 없이 심각한 위기적 상황을 맞고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은 각기 다른 흐름으로 이어져 왔음에도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이는 바로 '한국교회 백주년'의 산물들이라는 점이다.

1981년 1월 한국교회 백주년을 앞두고 20개 교단과 연합기관이 참여해 규약을 확정함으로 '백주년기념사업협의회'(이하 백주년)가 공식 출범하게 됐다. 이어 4월에는 한국찬송가공회가 창립, '개편찬송가''새찬송가''합동찬송가' 등으로 교단별로 사용돼 오던 찬송가에 대한 '통일찬송가' 발행사업이 본격 추진, 두 해 뒤인 1983년 10월에 역사적인 '통일찬송가'가 발행됐다. 당시에도 교계에서는 '통일'이라는 명분은 얻고 질적으로는 퇴보한 편집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었다.

이어 1984년 8월 한국기독교회가 지금은 사라진 여의도광장에 모여 백주년선교대회를 개최했으며, 두 주 뒤에는 현재 본 교단 총회 본부 등으로 사용되고 있는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이 개관했고, 80년대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1989년 4월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원로목사의 제창으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한국교회 주요 현안들은 한국교회 백주년의 영광의 산물로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한 세대라 할 수 있는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일정 부분의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내정 문제를 축적해 오다가 21세기 총 동시 다발적으로 표출된 필연적 사건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역사적 의미와 한국교회의 총의를 모아 출범하게 된 대형 기관과 사업들이 오늘날 파행의 길로 빠져들어가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굨 물론 여기에는 각 기구 혹은 단체가 갖고 있는 태생적 한계 요인이 있었던 점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백주년의 경우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 기구가 찬송가공회나 한기총에 비해 훨씬 이전에 출범, 벌써 30년의 역사를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당시 이미 원로격이었던 지도자들이 실제적으로 이 기구를 움직이는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교회의 외형과 환경이 엄청난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극히 소수의 지도자들에 의해 움직이며 한국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기구의 하나로 역할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최근 문제가 되었던 '양화진 사태'의 촉발도 이러한 요인과 무관하지 않다굨 백주년측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4년 전 동 기구는 백주년 당시 조성된 유적들에 대한 관리에 한계를 맞아 이른바 '백주년기념교회'를 설립, 관리에 대한 업무를 위탁키로 한 바 있다. 20개 주요 교단의 관계자들과 원로, 기독실업인들이 헌신적인 마음과 자세를 갖고  조성한 한국교회의 백주년사업의 결과물들은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대한 재조성과 용인의 순교자기념관 실로암안과병원 그리고 인천의 선교기념탑 등으로 꼽을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양화진의 재조성과 관리는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공적 자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백주년측은 한국교회의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독립교회'의 설립을 결의하고 하나의 개체교회에 양화진을 비롯한 용인순교자기념관 등 소중한 한국교회의 유산의 관리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넘겨 버린 것이다. 결국 이로 인해 이 교회는 한국교회 연합의 결과물을 관리하는 수퍼처치(super church)로서의 여러가지 조치를 시행, 공교회들과의 갈등의 불씨를 갖게 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백주년측이 "(이런 모든 조치들이) 이사회의 결의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과 달리 본 교단에 속한 복수 이상의 이사들은 "이사회 소집과 다뤄질 안건에 대한 적절한 안내조차 받은 일이 없다"고 밝혀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최근 본 교단 역사위원회는 양화진 문제를 계기로 백주년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본 교단 인사들과 공식 접촉을 시작했다. 동 위원회 위원과 전문위원들은 면밀한 점검과 토론을 통해 한국교회 연합사업의 정신과 취지에 부합되지 않는 조치들이 확인될 경우 이에 대한 조치를 강구해 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 수년간 끌어온 양화진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총회 임원회는 각 연합기관에 파송된 본 교단 소속 책임자들을 초청해 모임을 가진 바 있다. 이 자리에서는 총회가 추진하는 여러가지 정책적 현안들에 대한 보고와 협조 요청이 이뤄졌으나 소집 배경에 대해서는 최근 연합기관 간에 벌어졌던 법정 다툼의 전면에 본 교단 인사들이 관계된 사실도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국교회 연합기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지대한 공헌을 했던 대한기독교서회와 교파별로 사용되던 한국교회 찬송가의 통일 작업을 주도했던 찬송가공회 사이에 벌어진 이번 사태 가운데에도 서회의 내부적 문제 요인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교회 백주년사업 이후 지난 수십년 간 누적돼 온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찬송가의 사용으로 인한 문제점은 예배공동체 내에서 건너갈 수 없는 장애 요소가 되기도 했지만 특성상 교파를 뛰어넘어 집회를 인도해야 하는 이른바 부흥사들에게도 조속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현실적 필요와 함께 백주년이 되기전 한국교회의 찬송가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인해 통일찬송가 발행작업은 시동이 걸리자마자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그러나 이 일에 열의와 신학적 명분을 갖고 주도했던 중도적이고 진보적인 교단들에 비해 다소 미온적이고 부정적이었던 보수 교단과의 대화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 같은해 한국교회 1백주년기념관 현판식에서 당시 총회장 림인식목사(左)와 부총회장 故 박종렬목사가 베일을 벗기고 있는 모습.
이로 인해 결국 찬송가공회의 조직은 한국교회의 교세 판도가 신생교단은 제외하고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당시 상황에도 불구하고 매우 불균형적으로 짜여지게 됐다굨 이로 인해 결국은 찬송가공회 운영 파행의 단초는 이미 마련된 것과 다름 없었다. 뿐만 아니라 각 교단이 '찬송가'라는 거룩한 용도에 의미를 부여하고 '출판물'로서 상품적 가치와 관리에 무관심하고 소홀한 동안 공회는 쥐꼬리만한 교단 지원금을 나눠주는 것으로 막대한 재정적 수입을 과도하게 사용하면서 방만한 운영을 통해 '교단간 불균형'이라는 출범을 위해 양해된 왜곡된 구조의 개혁 없이 파행적 운영을 이어온 것이다.

최근 찬송가 공회의 법인화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야기된 바 있다. 지적의 내용대로 현재 구조대로의 법인화에는(지금은 교단의 소환기능 명문화 등 상당 부분 개정이 이뤄졌으나) 또 그 절차와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찬송가공회가 한국교회의 공식 연합기관으로서 균등한 참여의 기회와 기여에 따른 균형있는 관리와 배분이 이뤄져 왔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고 그 시점은 이미 많이 늦었다는 것이다.

앞의 두 단체와 달리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출범부터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교회연합기관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교단이나 기관은 물론 개인들도 한기총의 회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한 것을 시작으로 한기총 출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원로들에게 대표성을 과도하게 부여하는 과정에서 공교단의 현직 책임자들이나 한국교회의 미래를 짊어질 차세대를 위한 지도력의 공간이 크게 부족했던 것이다.

이러한 요인 가운데는 당시 한국교회가 백주년을 준비하면서 이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한국교회 원로들과 이들을 도와 사업 진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기독실업인들이 한기총 출범에 구심체가 되었던 점도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대척점에 좌표를 설정하고 출발한 한기총은 이후 정권의 변화 속에서 부침을 경험하기도 했으며, 수많은 교단들을 영입, 세를 확대해 가는 과정 속에서도 기독교대한감리회나 한국기독교장로회 등 국내 주요 교단을 영입하지 못해 또 다른 반쪽으로서의 한계를 갖게 됐다.
 
또한 재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위원회 중심의 백화점식의 방만한 운영도 고질적 병폐로 자리잡게 됐으며, 선거 때마다 제기되는 금권 문제와 함께 잊을만 하면 또 다시 제기되는 이단 및 사이비 관련 의심자들의 활동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지금 80년대 이후 정체로 인한 위기와 90년대 이후 21세기 초까지 계속됐던 반 기독교적 정서로 인한 연속적인 어려움을 겪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두 기관의 개혁만으로 한국교회의 변화를 위한 단기적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주요 현안들이 결국 한국교회 백주년의 열망과 성과의 그늘에 자리한 것이라는 개연성을 감안할 때 지난 20여 년 한국교회와 기관들이 걸어온 행보들을 차분히 되짚어 보기 위한 노력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 할 것이다.
  /공동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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