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한국교회 예배와 예식 <완> 표준예식서가 '교과서'

긴급진단 한국교회 예배와 예식 <완> 표준예식서가 '교과서'

[ 교계 ]

안홍철
2003년 07월 26일(토) 00:00

 긴급진단 '한국교회 예배와 예식' 기획을 준비하고 취재하면서 흥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개혁교회는 왜 예배시간에 조는 사람이 많을까?" 취재현장에서 기자가 예배학자로부터 오히려 들은 이 질문은 많은 것을 생각케 했다.
 예배학자의 답변인즉 "개혁교회는 처음부터 앉아있는 자세를 지속하기 때문에 졸고있는 사람이 많은 반면 구교나 성공회, 루터교 등은 앉고 서고 무릎을 꿇는 자세가 빈번하여 졸 겨를이 없을 뿐 아니라 예배의 존엄성이 한층 더 느껴진다"는 것. 어찌보면 콜럼부스의 달걀처럼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실제로 개혁교회는 말씀 만을 강조하면서 예배 자세에 대한 것들을 거의 외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권위있는 예배학 사전들은 예배시 취하는 자세마다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의미들이 매우 깊음을 강조하고 있다.
 먼저 일어선 자세는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분을 만날 때 존경의 표시로 취하는 기본적인 몸가짐이며 무릎을 꿇는 자세는 경배와 기원과 애달픈 심정을 표현하는 자세라는 것. 또 앉아있는 자세는 명상과 경청의 자세이며 두손을 드는 것은 기도하는 것인데 특히 손을 높이 드는 것은 일반적인 기도이고 앞을 향해 드는 것은 축도라 하겠다.
 기독교 예배는 초대교회부터 예배에서 갖추어야할 몸가짐에 대해 철저히 강조했으나 한국 교회는 예배자들이 갖추어야할 몸가짐에 대해 거의 가르침이 없었다.
 이에 대해 장신대 실천신학 교수인 정장복 교수는 "예배자는 내 육신의 편안함보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자세로 공경하고 경배하는 몸가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것은 제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배하는 대상에 대한 기초 상식"이라 역설했다.
 예배자의 몸가짐 뿐 아니라 예배 집례자를 비롯, 순서를 맡은 이들의 자세도 중요하다. 한국교회는 평신도의 예배참여가 활발한 편인데, 성경봉독이나 기도를 맡은 이들이 순서를 마친 후 강단에 계속해서 앉아있는 관행에 대한 지적의 소리가 일고 있다. 예배 인도자와 설교자가 다른 경우, 인도자는 자신의 임무가 끝났을 때 단 아래 회중석에 앉아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 옳다. 설교자의 후면을 쳐다보면서 설교를 듣는다는 것은 잘못된 관습이다. 말씀은 귀로 듣는 데 끝나지 않고 눈으로 보면서 경청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장신대 주승중교수는 "기도자의 경우 회중을 대표하여 기도한 것이므로 기도를 마치고 나면 회중석에 가서 앉아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특송의 경우, 특송을 맡은 이가 특송 전후에 절을 한다거나 특송이 끝난후 회중이 손뼉을 치는 것도 잘못이다. 예배 안에서 부르는 특송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드리는 봉헌의 노래와 찬양이다. 그러므로 회중에게 시작과 끝에 절을 하는 것은 예배의 정신과 거리가 멀다. 그것은 마치 사람을 위한 특송으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요즈음엔 특송 뿐 아니라 찬양대의 찬양이 끝난 후에도 손뼉을 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름하여 하나님께 박수를 드린다고하지만 어떤 명목의 이름을 붙이더라도 결국은 노래하는 사람의 노고와 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박수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한세기 동안 우리 예배에서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일반적으로 예배학자들은 주일저녁 찬양예배나 수요기도회와 같은 시간은 자유롭게 하더라도 주일 낮예배에서 예전적 예배를 드릴때는 정중한 예배가 되도록 노력해야한다고 충고한다.
 한편 지역 연합예배나 특별한 절기가 되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예배에 참석하는 이들이 있다. 지역의 국회의원이나 기관장 같은 이들이다. 예배 인도자로선 특별하게 찾아준 인물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새로나온 교우들을 환영하여 한 식구로 맞아들이는 순서를 갖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마음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배의 순서에 삽입될 수가 없다. 예배 시작 전이나 축도 후로 바궈야 한다. 그래야 예배의 예전적 요소를 파괴하지 않고 예배 정신을 살릴 수 있으며 사람을 소개하고 손뼉치는 부담을 줄일 수가 있다는게 예배학자들의 지적이다.
 본교단 표준 예식서엔 분명히 묵도란 순서와 광고란 순서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제 다같이 묵도하심으로 주일 예배를 드리시겠습니다"로 예배를 시작하는 교회가 있고, 예배 중간에 광고를 하는 교회가 많다.
 심지어 광고시간에 담임목사의 생일을 챙겨 촛불을 불고 폭죽을 터뜨리고, 축하케이크를 자르는 교회도 있다고 한다. 이같은 잘못은 지난주 특집에서 지적했듯이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망각한 결과라 하겠다.
 이와 함께 최근 교회 임직식에도 보면 남편이 장로나 안수집사 등 항존직으로 피택돼 안수를 받는 순간에 부인도 그 서약에 "예"라고 대답하며 서 있는 것은 잘못된 관행이란 지적이다.
 그것은 이제 여성안수가 된 마당에 앞으로 부인이 장로로 피택돼 안수할 때 남편도 함께 일어서서 서약에 대답을 해야하느냐는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부부 일심동체란 말이 있긴 하지만 부부는 엄연히 별개의 인격체이다. 부부 중 한 사람이 피택돼 안수를 받는데 부부를 향하여 동시에 서약을 요청하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부부가 항존직을 함께 받은 것은 아니지만 배우자로서 성스러운 직분에 함께 힘을 기울이라는 숨은 뜻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약이란 안수를 받게되는 엄숙한 사실에 그에 해당된 개인과 묻고 답하는 것이지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개혁교회 제도가 개교회 중심일지라도 예배와 교리와 정치는 소속된 교단의 규칙을 따라야 하는 것이 정석이다. 만일 목회자 자신이 독자적으로 발견한 의미를 예배와 교리와 정치에 반영하여 곁길로 나아간다면 이러한 행위가 무질서와 혼돈을 가져온다는 사실에 깊은 주의를 가져야 할 것이다.
 안홍철 hcahn@kidokong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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