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한국교회 예배와 예식3/ 예배와 행사 경계가 없다

긴급진단 한국교회 예배와 예식3/ 예배와 행사 경계가 없다

[ 교계 ]

안홍철
2003년 07월 19일(토) 00:00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에게 말씀하신 이 내용은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문 말씀은 사마리아에도 예배라는 이름과 그 행위는 있었지만 그들은 어떤 대상을 무슨 이유에서 예배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었던 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분의 은총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예배의 분명한 대상과 목적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남다른 경외심과 열심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인지 모든 교회 행사에 예배라는 단어가 안 붙는 곳이 없다. 단순한 기도회를 비롯해서 병원의 환우를 심방하는 경우에도 예배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심지어 돌 예배, 생일 예배 등등 예배라는 이름을 남발하여 예배의 진정한 의미와 형태에 적잖은 훼손을 가져오고 있다. 특히 졸업예배, 입학예배, 출판기념예배, 아무개 목사 학위취득 축하예배, 아무개 회장 취임예배 등은 예배의 대상과 목적이 애매모호한, 예배학적 측면에서 납득하기 힘든 이름이라는 것이 실천신학자들의 지적이다.
 한국의 신학교육에 '예배학'이라는 과목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채 20년도 안된다. 이 때문에 예배에 대한 지식과 상식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이다. "한국교회는 집회만 있고 예전이 담긴 예배가 없다"는 평가를 세계교회로부터 듣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예전적 예배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결여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말씀 중심의 목회사역을 한세기 넘게 진행하면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한 반면 상대적으로 예전의 내용이나 형태는 매우 빈약했다. 이로 인해 매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를 찾은 교인들은 예전(Liturgy)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Encounter)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가는 존재(Church - goer)'나 '설교를 듣는 존재(Sermon - hearer)'로 머물게 됐다는 것.
 장로회신학대학교 실천신학 교수인 정장복박사는 자신의 저서 '예배의 신학'에서 "한국교회의 예배현장이 설교자의 설교에 예배의 성패를 걸고 있다는 사실과 말씀으로 양육된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전의 의미와 기쁨을 경험하지 못한데서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다"며 "예배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표현하는 가장 고상한 기회로서 이런 값진 기회가 '말씀을 들어보는 시간'으로 전락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의 새로운 관심과 지난날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모든 행사의 시작과 끝에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리고 거기에 맞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경청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라 전제하고 "그러나 이러한 모든 순간마다 예배라는 명칭을 붙이기엔 다소 무리가 따른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졸업이나 입학의 경우에 드리는 예배는 그 진정한 뜻이 졸업이나 입학을 시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영광을 돌려드리려는 데 있다. 이런 경우 모든 예배가 감사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할지라도 감사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예배의 성격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 따라서 정교수는 굳이 예배라는 명칭을 붙이려면 '입학 감사예배' '졸업 감사예배'라는 구체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교우들에게 그 예배의 성격과 내용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정 교수는 "한국교회에 예배의 명칭이 남발되고 혼란을 가져온 것은 '아무개 장로 출판기념예배', '아무개 목사 학위취득 축하예배', '아무개 회장 취임예배'와 같은 개인 중심 예배 때문"이라 말하고 나아가 '돌예배' '생일예배' '회갑예배' '개업예배'와 같은 경우에는 예배의 근본 의미마저 흔들리게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경우는 아무리 적절한 해석을 하려해도 그 현장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라기 보다 그 날의 주역들인 인간을 찬양하고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그들에게 영광을 돌리는 의미들이 너무나 짙게 깔려 있다는 것. 당연히 이런 행사들은 예배라는 이름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들은 한국교회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이런 행사들은 인간적인 정리로 "내가 존경하기에" 혹은 "상대방이 섭섭해할까봐" 인간의 감정을 풀고 달래기 위해 만든 것이지 진정한 예배라 할 수 없다.
 이런 경우엔 '아무개 기념식' '아무개 축하식'과 같은 명칭을 쓰는 것이 적당하다고 실천신학자들은 조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예배라는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면 어색한 표현이지만 생일 감사예배, 회갑 감사예배, 출판 감사예배 등으로 표기해야 하며 그 내용은 순수하게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배로 일관해야 한다고 정교수는 말한다. 특히 예배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 해당 당사자는 반드시 성단 밑에 자리를 잡아 함께 감사예배를 드려야 한다. 솔직히 그 모임의 주역이 성단 중앙에서 회중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모습은 회중들이 그에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는 것.
 얼마전 전 총회장 한 분이 타계하면서 고인의 장례예식을 총회장으로 진행한 바 있다. 이때 예배 집례자들이 단 상 위에서 예배를 진행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인간이 예배의 대상이 되는 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진다. 예배라는 이름이 남발돼 그 고귀한 의미와 내용이 상실된 교회는 예배 그 자체를 상실하고 살아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 '기도회' 또는 '예식'의 이름을 활용함이 대체로 합당하다. 예배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 감격하여 경배와 찬양과 감사와 죄책 고백과 용서, 헌신과 결단, 응답의 총체적인 표현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인간들의 행사를 기념하는 의식은 예배라 할 수 있다. 예배와 행사의 차이를 혼동하여 행할 때 이로인한 무질서와 혼돈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분명히 알고 행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안홍철 hcahn@kidokongbo.com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