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미국교회방문기<完>

기획취재/ 미국교회방문기<完>

[ 교계 ]

안홍철
2000년 07월 01일(토) 00:00

*순수 옛 신앙 간직한 `아미시' 사람들
우주선을 날려보내고 전 세계가 컴퓨터 네트워크로 하나가 되는 첨단 시대에 아직도 18세기의 생활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21세기 초 강대국이라는 미국에서. 남자들은 테가 넓은 검은 모자를 쓰고 턱수염을 기르며, 집에서 손수 만든 옷을 입는다. 여자들도 `보닛'이란 모자를 쓰고, 긴 옷을 입고, 검은 신과 스타킹을 신고 장신구는 일체 하지 않는다. 이름하여 아미시(Amish) 사람들.
인디애나주 십시와나지역에 가면 이들의 군락촌을 만날 수 있다. 또한 관광객들을 위해 이들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아미시·메노-호프 센터(Amish acre & Menno-hof center)가 있다. 센터에 들어가면 먼저 시청각실에 들려 종교개혁의 역사를 조망하게 된다. 아미시는 본래 구(舊)암만 메노파 교회(Old Order Amish Mennonite Church)의 교도들이었다. 이들은 야코프 암만의 추종자들로서 유럽에서 탄생했다. 야코프 암만은 17세기 메노파 장로였으며, 1693~97년에 스위스, 알자스(현재 프랑스 령), 남부 독일 등지의 메노파들에게 논쟁과 분열의 씨가 되는 교훈을 가르쳤다.
. 18세기 유럽에서 북미로 이주 그렇다면 메노파는 누구인가? 메노파는 16세기 종교개혁의 급진적 개혁운동인 재세례파에서 발생한 프로테스탄트 교회로서 온건한 재세례파 지도자인 네덜란드 사제 메노 시몬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 기원은 여러 재세례파 집단 가운데 특히 스위스 형제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형제단은 종교개혁자 울리히 츠빙글리가 이끄는 국가 교회의 요구에 따르지 않아 곧 박해받을 상황이었던 1525년 최초로 교회가 구성됐다. 츠빙글리가 의문을 제기한 것은 유아세례문제였다. 스위스 형제단은 곧 츠빙글리의 박해를 받고 유럽 사방으로 흩어졌다. 전시실엔 그들이 어떤 기구로 고문을 받고 처참하게 죽어갔는지, 당시 박해 상황을 재현해 놓았다.
메노파는 16세기 재세례파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 두 운동은 서로 다르다. 1536년 재세례파 운동에 가담한 네덜란드 사제 메노 시몬스는 북유럽에 흩어져 있는 재세례파교도들을 모아 생동감 넘치는 교회를 구성했으며, 이 집단은 그의 이름을 따서 메노파라 불렸다.
한편 17세기 메노파 장로였던 암만은 모든 메노파 사람들은 출교당한 적이 있는 메노파 사람들을 누구든 상대하지 말고 피해야 하며, 거짓말을 한 사람은 누구든지 파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배 의식 가운데 세족식(발을 씻는 의식)을 새로 포함시켰으며, 교회 회원들은 일정한 유니폼을 입어야 하고 수염을 깍지 말고, 국가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암만파 정착촌과 교회들은 스위스·알자스·독일·러시아·네덜란드 등지에 있었지만, 북아메리카로 이주해 가거나 메노파 그룹에 동화되어 감으로써 유럽의 암만파교도들은 점차 줄어들게 됐다. 암만파교도들이 북아메리카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720년경의 일이었으며, 첫 이주지는 동부 펜실베이니아이다. 이곳에는 오늘날까지도 대규모의 이주민 집단이 살고 있다. 암만파들의 독특한 생활 방식을 그대로 준수한 사람들은 구암만메노파 교회의 교도(아미시)들이었다.
현재 미국에는 10만여명에 달하는 아미시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이들은 네덜란드 방언이 섞인 독특한 팔라틴(Palatine) 독일어를 사용하고 이주 당시인 18세기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현대 문명의 혜택을 누리기를 거부한다. 한 마디로 과거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최첨단 문명의 집산지인 미국 땅에서.
. 교회 건물 없고 자치 교구로 구성 미국과 캐나다에는 대략 50군데에 아미시들이 있다. 이 집단들은 세례교도 75명가량으로 구성된 자치 교구들로 나누어져 있다. 만일 이 구역이 더 커지면, 구성원들이 각각 다른 가정에서 모여야 하기 때문에 또다시 나누어진다. 교회 건물은 전혀 없다. 각 구역마다 감독 1명과 2~4명의 복음 전파자 및 1명의 장로가 있지만, 총회나 선교단체 또는 협력단체 등은 전혀 없다. 아미시의 교리 체계는 메노파와 약간 다르다. 성례는 매년 2번 거행하며, 세족식은 두 파가 모두 시행한다. 세례는 교회 정회원 가입이 인정된 17 ~20세의 성인에게 베푼다. 예배는 물론 팔라틴 독일어로 진행된다.
. 성서에 입각한 삶의 방식 유지 아미시 사람들은 복장이 매우 소박하고 비순응적인 삶의 방식을 따르는 사람들로 유명하다. 남자들은 검은 모자를 쓰며, 콧수염은 깍지만 턱수염은 기르며, 집에서 만든 평이한 옷을 입는데 단추 대신에 호크를 사용한다. 단추 달린 재킷은 군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아미시들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전쟁을 합리화시킬 수 없다고 믿으며 징병을 거부한다.
여자들은 보닛 모자를 쓰고, 긴 옷을 입고, 어깨 위에는 케이프와 숄을 걸치며, 검은 신과 스타킹을 신는다. 장신구는 일체 하지 않는다. 이같은 문화는 아미시 사람들이 성서의 교훈에 순종하려는 뜻에서 생각해낸 것이라고 소개한다. 이것은 원래 17세기 유럽 시골에서 유행하던 복장이었다. 암만파 사람들은 전화나 전등 사용을 피하고, 자동차보다는 말이나 4륜마차를 이용한다. 그들은 유능한 농부들로 인정되지만, 현대적인 농경 기계 사용을 거부하고 재래식 방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자녀교육에 대한 아미시들의 가치관은 보통의 미국 사람들과 판이하다. 학교 교육을 통해 성경과 함께 생활에 필요한 공부, 예를 들면 집짓기나 농사, 양재 등을 배우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미시들의 학교는 중학교 졸업반인 8학년이 최고 학년이다. 8학년을 마치면 대부분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이렇게 하는 것은 의무교육법에 어긋나는 일이어서 몇몇 암만파 부모들이 감옥에 들어가는 일이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고등학교에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결혼 연령이 상당히 빠른 것도 특이한 점이다. 남자는 19세에서 25세, 여자는 17세에서 23세 사이에 대개 결혼한다.
아미시 사람들의 생활은 검소와 근면 그 자체다. 남자는 누구나 동이 트기 전부터 일을 시작한다.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대식구의 식사, 빨래, 옷만들기, 청소 등을 하느라 잠시도 손을 쉬지 않는다.
. 순수와 경건, 옛 신앙 간직 아미시 사람들은 생활방식만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현대의 미국인들이 상실해 가는 순수함과 경건하고 참된 신앙을 간직하고 있다. 자신들만의 사회에서 나름의 폐쇄성을 고수하면서 살고 있지만 ‘불쌍한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아미시 사람들은 이불, 비누, 수건, 쇠고기 통조림 등을 직접 만들어 러시아 아프리카 코소보 등에 보내는 구호활동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 이들이 돕고 있는 국가 중에는 북한도 포함되어 있다.
아미시 마을은 풍요로움이 넘실거리고 소란스러운 도시에서 찾을 수 없는 평화와 위안을 발견한다. 자급자족, 청빈, 근면을 삶의 기쁨으로 여기면서 소박하게 살아가며 이웃을 돕는 아미시들의 생활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문명과 동 떨어진 생활을 하면서도 아미시 사람들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일반에 공개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 가운데 누리는 진정한 삶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안홍철 hcahn@kidokong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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