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이후 현재까지의 교세 변화

분열이후 현재까지의 교세 변화

[ 교계 ]

안홍철
1999년 02월 27일(토) 00:00

한국교회 장자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는 한국교회 선교가 시작된지 75주년이 되는 역사적
인 해인 1959년, 분열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통합」과 「합동」
이란 이름으로 분열된지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현재 양 교단의 교세는 얼마나 성장했을
까. 또 1959년 분열 전, 하나의 총회일 때 교세는 얼마나 됐을까? 분열 직후 양 교단의 교세
는 어떠했을까?

그 당시 회의록을 보면 분열 당시 제44회를 기점으로 전후 5-6년간 교세 통계는 회의록에
보고돼 있지 않다. 아마도 전후(戰後)시대였기에 통계작업이 수월치 않았고 분열 당시는 더
더욱 혼란스러워 교세 파악이 어려웠음직 하다.

그렇다면 영영 알 수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1956년에 개정된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26조
2항 「총회의 조직」을 보면 『총회는 각 노회에서 파송한 목사와 장로로 조직하되 목사와
장로는 그 수를 서로 같게 하고 총대는 각 노회에서 세례교인 1천명 단위로 목사 1인과 장
로 1인씩을 파송하되 …』라고 기록돼 있다.

그렇다면 회의록에 기재된 총대수를 보면 교세를 어림잡아 유추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
러나 불행하게도 1959년 9월 24일 대전중앙교회에서 열린 제44회 총회에 참석한 총대들의
수는 회의록에 기록돼 있지 않다. 전년도인 제43회 총회 회의록을 보면 총대수가 2백76명
(목사 1백38명 장로 1백38명)으로 돼있다.

그렇다면 분열 전인 1958년도 총회의 세례교인 수는 1백38명에 천을 곱한 13만8천명이라는
말이 된다. 이것을 근사치적으로 뒷받침 하는 자료가 하나 있다. 본보 1957년 10월 14일자에
보면 예수교장로회 세례교인 통계가 10만8천5백60명이며 전년 대비 1만5천9백60명이 증가했
다고 보도됐다.

이런 방법으로 분열 직후 양 측의 교세를 비교하면 좋겠지만 또다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
다. 분열 이후 본교단은 연동교회에서 9월 28일 속회를 했고 합동은 승동교회에서 11월 24
일 속회를 했는데 본교단은 2백51명 참석, 합동은 1백93명이 참석했다고 기록돼 있다.
분열 전 2백76명이었던 총대가 어찌된 일인지 분열 후 양측을 합하니 4백44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불과 두달 사이 이토록 많은 세례교인이 증가했을리는 없다. 교회마다 분열되면서
세례교인을 중복 계수한 것이 그 원인인 듯 싶다.

본교단은 제48회 총회부터 다시 교세통계가 보고됐으나 합동의 교세통계는 제59회 총회시부
터 보고되기 시작했다. 제60회 총회(1975년)를 기준으로 본교단은 교회 2천6백85개처, 교인
은 63만9천6백5명이며 합동은 교회 2천7백33개처, 교인 83만3천7백21명으로 집계됐다.

이후 양 교단은 꾸준한 성장을 보이며 제67회 총회(1982년)시 본교단은 3천7백27개 교회에
1백26만3천2백15명의 교인으로 집계됐으며 합동은 4천3백84개 교회에 1백53만9천6백50명의
교인으로 집계됐다.

40년이 지난 현재 본교단은 교회수 6천61개처, 목사수 8천77명, 장로수 1만5천6백14명, 전체
교인수 2백24만4천9백44명이며 합동은 교회수 6천2백81개처, 목사수 8천7백71명, 장로수 1만
2천6백23명, 전체교인수 2백27만5천5백38명으로 합동 총회가 근소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안홍철 hcahn@kidokong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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