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냐? 칼뱅이냐?

루터냐? 칼뱅이냐?

[ 종교개혁주일특집 ] 칼뱅의 권징, '오직 하나님의 영광' 의미 계승해야

오정현 목사
2024년 10월 22일(화) 00:38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대기업 사장이 노조위원장을 납치 폭행하고 살해했는데, 판사는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풀어줍니다. 하지만 판사는 사장을 유인하여 그가 한 대로 똑같이 되갚아주고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장에게 묻습니다. "사람 죽인 거 반성은 하니? 용서는 받았고?" 이에 사장은 "제가 교회 가서 회개했고, 교회 가서 죄송합니다. 주님께 용서받았어요." 그러자 판사는 "그거 말고 피해자한테 사과하고 용서받았냐고?" 사장은 "예, 저는 이미 신께 구원받았는데요." 하자, 판사는 틀렸다고 하며 죽여서 지옥으로 보내버립니다. 그런데 이런 흐름은 2007년에 개봉한 영화 '밀양'에서 시작하여, 2022년에 방영된 드라마 '더 글로리'까지 줄기차게 나오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어떠한 죄를 지었을지라도 회개하면 용서받는다고 가르치는데, 세상은 회개만 하면 다냐고 대들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죠?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이 은혜를 놓고서 세상은 비아냥대지만 교회는 굴하지 않아요. 그 까닭은 우리 개신교회가 '오직 은혜(Sola Gratia)'를 내걸은 종교개혁을 통해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의 신호탄은 1517년 10월 28일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붙인 '95개조 반박문'입니다. 반박문의 원래 제목은 '면죄부의 효용성 선포에 관한 논쟁'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려주는 것으로 면죄부만한 것이 없다면서 팔았는데, 루터는 이를 95개의 항목으로 조목조목 반박하는 대자보를 붙인 것입니다. 제36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진심으로 자신의 죄에 대해서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은 면죄의 증서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고 했는데, 이 말은 돈 주고 면죄부를 사지 않아도 회개하기만 하면 사죄를 받을 수 있다는, '공짜로 거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은혜'가 나오고, 종교개혁의 슬로건 'Sola Gratia'가 나옵니다. 'Gratia'라는 말에는 공짜라는 뜻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사죄와 구원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공짜로 그래서 '오직 은혜'로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훗날 이 은혜가 디트리히 본회퍼에 의해 비판을 받게 됩니다. 본회퍼는 이 은혜에다가 '값싼 은혜'라는 딱지를 붙였습니다. 그 까닭은 독일의 교회가 은혜라는 미명 하에 히틀러 나치당에 찬동하였기 때문입니다. 독일교회는 'Deutsche Christen'이라는 이름으로 나치당의 하부조직으로 들어가 정신적 기반을 제공해주면서 부역을 하게 됩니다. 나치가 어떤 일을 저질러도 독일교회는 오직 은혜로 덮어주고 넘어가주었던 것입니다. 루터의 'Sola Gratia'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루터의 종교개혁은 민족주의적인 성격이 강했는데, 독일교회의 헌금이 이탈리아 성당의 건축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독일사람들의 민족주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요. 이탈리아의 교황청에 대항하여 일개 신부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독일의 영주들이었고, 그래서 루터의 종교개혁은 민족주의적인 성격과 함께 지배계급적인 성향이 강했습니다. 그랬기에 나치가 사회적 약자인 유대인들을 학살할 때에 침묵과 동조로 일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독일교회, 교파로는 루터교죠? 어떻게 되었어요?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종교개혁주일만 되면, 루터를 찾고 있어요. 'Sola Gratia'를 외치면서,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기에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된다고, 그래서 '오직 믿음(Sola Fide)'도 함께 외치면서 루터만 읊어대고 있습니다. 우리 장로교에도 종교개혁자가 엄연히 있거든요. 장 칼뱅입니다. 장 칼뱅으로부터 장로교가 시작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종교개혁주일에 장로교회 강단에서 칼뱅의 이름은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요? 칼뱅에 대해 불편한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칼뱅하면 뭔가 까다롭게 여겨지고 꺼려집니다. 왜 그래요? 칼뱅은 은혜가 안 되거든요. 칼뱅은 입만 열면 법을 말하고, 재판과 권징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칼뱅은 초상화부터가 꼬장꼬장해 보이고 아주 율법적으로 보여요. 은혜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를 칼뱅도 모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강요'에서 이런 말을 하거든요. "혹 권징을 혐오하여 그 이름만 들어도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이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어떠한 사회도, 아무리 적은 가족이라도 권징이 없이는 적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으니, 가능한 한 질서를 잘 유지해야 할 교회로서는 더욱더 권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권징이 꼭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또한 권징의 목적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더럽고 수치스러운 삶을 사는 자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불러서 하나님의 존귀를 가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가 마치 사악하고 파렴치한 사람들의 집단인 것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칼뱅의 이 말을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귀담아 들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교회가 은혜를 남발하다가 졸지에 불법자들의 모임이요, 범죄집단으로 비춰지지 않았습니까?

루터의 슬로건이 'Sola Gratia'라면, 칼뱅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a Gloria Dei)'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칼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구별된 자로서 하나님께 드려졌으므로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면 생각하거나 말하지도 말고, 계획하거나 행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살고 그를 위하여 죽어야 한다." 칼뱅이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은 그것을 위해서라면 내가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장로교인 우리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권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권징으로써 악행을 처벌하여 사람을 살리고, 교회도 살릴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우리 교회가 가야 할 길은 칼뱅의 가르침을 따라 장로교회답게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덮어주고 감싸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아가서 세상으로부터도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Sola Gratia'를 외치면서 은혜를 내세웠던 루터교는 미약하게 되어버렸으나, 'Sola Gloria Dei'를 외치면서 교회의 엄격성과 거룩성을 내세웠던 장로교는 전세계적으로 창대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로교인입니다.



오정현 목사(면목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