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대충 완주(完走)하기를

대충대충 완주(完走)하기를

[ 목양칼럼 ]

김신일 목사
2024년 07월 24일(수) 16:36
후배 목사가 "담임 목회하면서 제일 힘든 점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짧은 목회 기간이지만 후배 눈에는 길게 보였나 보다. 여러 가지 생각해 보았다. 안 힘든 것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각양각색의 교인들을 대하는 것, 다양한 형태의 심방, 행정, 항상 밀물처럼 밀려오는 설교, 그리고 당회까지 안 힘든 것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그래도 그중 제일 힘든 것이 무엇일까?

수영을 배울 때 강사에게 자주 들은 말이 있다. "힘을 빼세요. 아저씨 힘을 빼시라니까요. 힘으로 수영하면 오래 못해요. 금방 지칩니다. 힘 빼요." 갈 때마다 들은 말이다.

목회 사역 중 어느 것 하나 쉬운 것 없지만, 그래도 제일 어렵고 힘든 점을 꼽는다면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좀 더 풀어서 말하면, 내 맘대로 못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 내 맘대로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내 맘대로'는 항상 옳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그래서 절제하고 재차, 삼차 살펴보고 또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게 힘을 빼면 사람보다 주님이 보일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주님 뜻인지 아닌지,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친구 목사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대충해. 너무 충성한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 없어. 대충이나 충성이나 어차피 '충'자를 가지고 있는 것은 똑같아." 물론 순우리말 '대충'과 한자어인 '충성'이 어떻게 같은 '충'자를 가졌겠는가? 친구 목사의 깊이 있는 조언은 사람을 믿지 말라는 것이며, 사람 눈치 보면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충성하라는 뜻이다. 더욱이 나 자신을 앞세우지 말라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한편 분명한 목회 철학이나 정도(正道)가 없는 목회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나름 이렇게 해야 한다고, 저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길을 제시하며,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그것을 위해 기준을 정하고, 원칙을 세우며, 그대로 적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어디 모든 삶이, 소위 법과 원칙에 딱딱 들어맞는가? 오히려 법과 원칙이 사람을 더 힘들게 하고, 사람 사이를 갈라지게 하며,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심지어 예수님조차 당시 사람들이 주장한 법과 원칙으로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것이 정도(正道)'라고 확신하고, 강조하며, 심지어 교인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바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종종 목회 여정을 마치는 은퇴식에 참여할 때가 있다. 목회 초반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다가 감히 말하기를, 달려온 길보다 달려갈 길이 짧아진 지금, 은퇴 목사님들이 존경스럽다. 그곳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을텐데 그때마다 어떻게 하셨을까? 은퇴 후 허전함과 외로움을 외면할 수 없지만 거기까지 이른 그 과정이 대단해 보인다. 그 목회에 공(功)은 무엇이고 과(過)는 무엇인지 따질 일이 아니다. 그곳까지 다다랐다는 것, 그 자체가 순종과 충성의 여정이다. 감히 달려온 길보다 달려갈 길이 짧다고 말했지만, 아직도 많이 남은 목회 여정이기에 그 과정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이다.

처음 담임 목사로 부임하고 자주 들었던 말이 이제야 깊이 있고 무게 있게 다가온다. "완주(完走)!" 선배 목사님들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목회 여정이 생각보다 길다고. 그러니 천천히, 그러나 쉬지 말고 가라고. 빠르고 대단하게 달리려고 하기보다 완주를 목표 삼아 가라고. 그래서 이렇게 기도한다. 목회를 완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목회만 아니라 인생도 하나님 보시기에 겸손하게, 생명을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순종하며 완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래도 대충 대충 목회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충하려고 한다. '대충'이 아니라 '대충(大忠)'으로, 대충대충(大忠 大忠) 완주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김신일 목사 / 성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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