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종'으로 살다간 '진짜, 의사' 주석중

'하나님의 종'으로 살다간 '진짜, 의사' 주석중

[ 아름다운세상 ]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4년 07월 15일(월) 01:37
수술장에서 주석중 교수.
아내와 함께.
주석중 교수가 남긴 메모.
수술실에서.
빈소를 찾은 젊은 부부가 영정 사진 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

"선생님께서 저를 살려주셨어요. 선생님 덕분에 제가 지금 살아있어요."

갑작스러운 대동맥 박리로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힘든' 수술이라는 이유로 어느 병원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제 죽는구나' 절망하고 삶을 놓으려고 할 때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주석중 교수(주님의교회)가 손을 내밀었다.

사실 의사들은 타병원에서 오는 환자가 부담스럽다. 혹시라도 환자가 잘못되면 기록에 남고, 의료분쟁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아니었다. "아무리 위험한 수술이라도 '내가 저 환자를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면 감당해야지 어떡해. 확률이나 데이터 같은 것이 무슨 대수라고."



'주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고, 주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결정하신다는 사실에 겸손해집니다. 저는 그저 종이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 주 교수의 메모 중.



'대체불가 의사' '헌신적 명의' '살아있는 신' '낭만닥터 주사부' … 수식어도 참 다양했던 '의사, 주석중'의 삶이 재조명되고 있다.

한국장로교출판사 소북소북이 주석중 교수 사망 1주기를 맞아 가족들과 지인들의 인터뷰, 주 교수가 생전에 남긴 메모와 일기, 기도문 등을 엮어 '의사, 주석중'을 출간해 화제가 되면서, '의술보다 더 큰 인술'을 실천했던 '진짜 의사, 주석중'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의사, 주석중은 '환자의, 환자에 의한, 환자를 위한'의사로 살기를 작정한 사람이었다.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살면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응급수술실로 향했다는 그의 일화는 많은 이들에게 진한 감동이 됐다. 그날도 새벽 수술을 마치고 집에서 잠시 들렸다가 병원으로 가던 길이었다. 병원 앞 교차로 건널목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순간, 우회전하던 덤프트럭이 그를 덮쳤다.

"나는 지금껏 원없이 살았어. 수많은 환자를 수술해서 잘 됐고, 여러 가지 새로운 수술 방법도 좋았고, 하고 싶은 연구를 하고, 쓰고 싶었던 논문도 많이 썼어.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다한 듯 하여 감사하고 행복해."

마치 자신의 앞날을 예감했던 것처럼, 떠나기 며칠 전 아내에게 전한 뜬금없는 고백을 '유언'으로 남기고 평소에 필사한 찬송가처럼 '주의 친절한 팔에 안겼다.'

그림 김땡스
그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추모물결이 이어졌다.

-주석중 교수님, 우리 남편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시대의 영웅, 주석중 교수님이 선물한 선한 영향력을 두고 두고 기억하겠습니다.

- 드라마에 나오는 김사부가 존재한다면 바로 저분이 아닐지.

- 탁월함과 부지런함, 겸손함과 박애의 마음을 품고 온전하고 신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가능함을 증거하신 분.



한 의사의 죽음 앞에서 많은 이들이 애도의 마음을 쏟아낸 이유는 무엇일까?

주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한 25년 동안 수술과 외래를 포함해 5000명이 넘는 환자를 만났다. 그는 환자가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수술에 임했다. 그에게 수술은 기도와 응답의 자리였고 하나님께 드리는 '삶의 예배'였던 것이다.



'예수님,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나를 인도하소서. 모든 환자를 어두운 숲에서 안전하게 구원하여 주님의 빛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따뜻한 품으로 인도해 주십시요.' - 주 교수의 메모 중.



장남 주현영 씨는 "장례를 마치고 유품을 정리하러 연구실에 갔을 때 정리되지 않은 서류들 속에서 아버지가 직접 쓴 몇 개의 기도문이 있었다"면서 한 구절을 소개했다. '… but what can I do in the actual healing process? Absolutely nothing. It is all in God's hands.(치유 과정에서 진정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절대적으로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정성을 다해 수술하고 환자를 돌보지만 내 힘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십사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을 적어 두신 거겠죠."



흉부외과 의사는 개인의 삶을 내려놓고 오직 환자만을 위한 헌신의 시간들을 살아야 한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폐를 수술하는 흉부외과 의사는 빈번한 응급수술과 긴 수술 시간, 잦은 당직, 중환자실 업무와 의료사고의 가능성이 늘 존재하기 때문에 인기도 없다.

그러나 그는 "의사는 예수님이 하셨던 일과 가장 비슷한 일을 한다고 생각해.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잖아. 힘들어도 흉부외과 의사인게 나는 참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아침 7시에 병원에 출근하면 밤 11시가 되어서야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수술과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대동맥박리 등 대동맥질환, 대동맥판막협착증 등 응급 수술이 잦고 인력이 많지 않은 전문 분야에서 헌신한 주 교수는 '대동맥 수술 명의'로 '대체 불가능한 의사'로 불린다. 지난 2020년 대동맥 박리 수술 성공률을 97.8%까지 끌어올리고 수술사망률을 종전의 5분의 1 수준까지 끌어내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논문은 세계 3대 흉부외과 학회 중 하나인 유럽심장흉부외과 학회에 실리면서 국내 대동맥수술 수준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찢어진 대동맥을 꿰맬 수 있는 흉부외과 전문의 30여 명 중에서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그림 김땡스


주 교수는 흉부외과 의사로서의 삶이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라고 받아들였다. 그가 남긴 메모에는 "하나님께서 내가 훌륭한 종으로 거듭나기 위한 기회를 자꾸 주시는 것 같아 기뻤다. 바깥 날씨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 마음이 이렇게 밝고 눈부신데"라고 적혀있을 정도로 흉부외과의 삶을 행복해했다.

밤이고 낮이고 걸려오는 전화에도 벌떡 일어나 옷부터 챙겨 입었던 주 교수, '예수님의 종'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한 '진짜, 의사' 주석중 교수는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에 새겨졌다.

남편의 1주기를 보낸 아내 김정명 씨는 "지난 1년 우리가 이 땅에서 감사함으로 살아간다는 것과 어떤 상황에서도 힘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마음이 조금은 단단해진 것 같다"면서 "남편을 다시 만나는 날까지 다른 분들을 따뜻하게 감싸고,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고 소식을 전했다. 이어 남편의 이야기를 담은 '의사, 주석중'이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조심스레 소망을 전했다.


최은숙 기자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