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시는 주님

들으시는 주님

[ 미션이상무! ]

임광식 목사
2024년 07월 10일(수) 10:42
병원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불린다. 그곳에서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그래서인지 병원은 여러 가지 이야기와 사연들로 가득 차 있다. 질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 병원이다. 그리고 병원에 머무는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필자는 몇 해 전, 국군병원에서의 사역을 통해 이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실 필자는 전투복을 입고 병실을 드나들며 사역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전투화에 흙이 묻지 않는 부대 생활을 하리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보통의 경우 위관급 육군 군종목사들은 전후방 전투부대로 보내져 장병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선교사역에 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군병원에 전입신고를 한 후, 그곳에서 어떻게 군선교 사역을 해야 할지 고민이 깊었다. 하지만 '답은 현장에 있다'라는 격언을 떠올리며 일단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병실에는 다양한 장병들이 필자를 기다리고 있고, 각기 다양한 사연과 이야기들이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 일은 분명해 보였다. 그것은 귀를 기울여 듣는 일이었다.

귀를 기울여 듣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필자가 목회상담자로서 훈련이 아직 부족한 까닭도 있었을 테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만만치 않았다. 필자에게 쏟아놓는 환자들의 삶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상으로 입원해 있는 동안 어머니의 암 진단 소식을 듣고는 한없이 눈물을 쏟는 병사를 마주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시 40:2)과도 같은 상황 속에 한숨 짓는 어느 가장의 축 처진 어깨를 보았다. 병실에 찾아온 필자를 두 시간 넘게 붙잡고 평생을 군에 몸담으며 겪었던 말 못할 사연들을 털어놓는 선임 간부를 만났다.

때로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모든 체력이 다 소진되는 듯한 경험을 했고,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간 장병의 눈물이 생각나 교회에 홀로 앉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환자 장병의 일이 내 일인 것처럼 고민하다가 괴로워하기도 했다. 함께 아파하게 되었고, 울게 되었고, 또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다.

감사한 일은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였을 때, 진심으로 함께 아파하며 공감했을 때, 장병들 또한 마음을 열고 복음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신앙을 갖지 않은 장병일지라도 정성을 다해 자신에게 귀를 기울여 준 필자가 함께 기도하자고 했을 때 거절하지 않았다. 손을 모으고 기도에 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기도를 마칠 때 '아멘'이라고 따라 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국군병원에서의 사역을 통해 필자는 잠시 전투복 대신 환자복을 입은 장병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들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소중한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시40:1)' 하나님을 전하는 사역은 성급히 말하는 일 보다, 경청하고 공감하는 일을 통해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도 필자가 만나는 한 사람,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의 삶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며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임무, 그리고 '들으시는' 하나님을 전하는 사명에 온 힘을 쏟기로 다짐한다.

임광식 목사/상승계룡교회·육군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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