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슬픈 노래

다윗의 슬픈 노래

[ 가정예배 ] 2024년 7월 17일 드리는 가정예배

정종원 목사
2024년 07월 17일(수) 00:10

정종원 목사

▶본문 : 사무엘하 1장 14~19절

▶찬송 : 390장



사람들은 종종 "세상사, 참 마음먹은 대로 안 된다"며 하소연을 한다. 당신은 누구의 뜻이 세상 가운데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가? 힘 있는 누군가의 뜻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가?

오늘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 이렇다. 블레셋과 사울 왕국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상황이었고, 불가피하게 다윗은 블레셋 땅으로 피신한 상태였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다윗은 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대신 그 틈을 타 아말렉 군대를 추격하여 대승을 거두고, 전리품을 나누며 자신이 속한 유다지파를 더욱 견고히 할 수 있었다. 반면 사울 왕국은 길보아 산 전투에서 블레셋에 대패를 하였고,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은 이 전투에서 전사한다. 다윗에게 사울의 죽음 소식을 전한 사람은 다름 아닌 다윗에 당했던 아말렉의 한 청년이었다. 이 청년은 다윗에 자신이 직접 사울을 죽였다고 말한다. 그러면 다윗이 기뻐하고,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다. 다윗은 이를 분하게 여기며 그를 죽이라 명하였고, 조가를 남겨 애도하며 유다 사람들에게 기억하게 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 슬픈 노래를 통해 무엇을 드러내려고 하셨을까?

먼저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다윗이 아말렉 청년에게 분노하면서 한 말이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14절)" 사울의 특별함을 말하고자 함일까? 아니다. 다윗은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신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인데 두렵지 않냐고 말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국민이 직접 투표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을 세운다. 이러한 원리에서 본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왕을 선택하고 기름 부어 세우셨으니 이스라엘의 주권은 사실상 여호와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을 함부로 취급했던 일에 분노했던 것이다. 자신을 죽이려던 사울을 죽이지 않으려 했던(삼상 24:6, 26:9) 것도 같은 이유였다. 반면 사울은 은혜의 택하심을 받아 왕이 되었음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망각했기에 불행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교회나 예배하는 한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시간과 세상에서도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역사하심을 믿는 신앙임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본다.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다윗의 애가의 내용이다. "길보아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과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제물낼 밭도 없을지어다 거기서 두 용사의 방패가 버린 바 됨이니라 곧 사울의 방패가 기름부음을 받지 아니함같이 됨이로다(21절)." 사울은 마치 하나님이 택하지 않은 사람과 같았는데, 이는 사울의 패전과 죽음은 이미 예견되었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16장 1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에게 실망하셨고, 그를 더 이상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신 바 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울이 죽은 길보아 산에 저주가 내려져 더 이상 비옥한 땅이 될 수 없게 되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수치를 당한 곳이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는 땅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주의 백성이 부끄러움을 당하면 그 땅은 저주의 상태에 놓인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여 수치를 당할 때 땅이 저주를 받은 것과 같은 이치다.

이처럼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터가 축복의 땅이 될지, 저주의 땅이 될지는 우리의 하나님 주권 신앙과 깊은 상관관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아무쪼록 하나님주권 신앙으로 우리의 삶의 터전이 축복의 터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오늘의 기도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은혜로 우리가 가정과 직장, 모든 우리의 삶의 터전이 축복의 터전 위에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종원 목사/장성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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