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교회의 액세서리가 아닙니다

선교는 교회의 액세서리가 아닙니다

[ 신년기획 ] 일어나라(굼) : ③ 전도·선교

변창욱 교수
2023년 01월 04일(수) 10:00
1.교회의 존재 목적은 선교

에밀 브루너(Brunner)는 "불이 탐으로 존재하듯이 교회는 선교함으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인도 선교사 윌리엄 캐리(Carey, 1761~1834)는 국내(영국)에도 불신자들이 많이 있는데 굳이 해외에까지 가서 선교해야 하느냐며 선교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국내에 거주하는 불신자들은 그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말씀을 들을 수 있지만, 선교지 사람들은 복음을 들을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한 자들이다."

교회에서 재정적으로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선교비를 줄이는 경향이 있는데, 세계선교역사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한국교회는 재정이 넉넉하지 않던 때에도 열과 성을 다해 선교하는 교회였으며, 하나님께 드릴 것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마게도냐 교회처럼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드렸으며,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선교에 참여하였다(고후 8:1~4). 그리하여 하나님은 세계 최빈국이자 복음의 불모지였던 한국을 130여년 만에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그리고 2만 2000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로 축복해 주셨다. 이는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적 복이 아니겠는가?

2.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성령)을 기다리라"(행 1:4)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을 체험한 예루살렘 교회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많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고 한 마음으로 모여 예배하며, 감사와 찬양이 충만한 교회였고 구원받는 이들이 날마다 더해지는 성장하는 교회였다. 그러나 행 1:8의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선교 명령의 관점에서 볼 때, 예루살렘교회는 예루살렘성 밖으로 진출하려는 선교적 자세가 부족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와 사마리아와 소아시아 및 땅끝까지 나아가 복음이 확산되도록 역사하셨다. 즉, 스데반 집사의 순교와 이후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 닥친 큰 박해를 통해 선교적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이후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으로 흩어졌으며(행 8:1, 9:31), 핍박으로 각처로 흩어진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에 의해 세워진 안디옥 교회가 역사상 최초로 세계선교를 시작하였다(행 11:19~20, 13:1~5). 안디옥 교회에 의해 파송된 선교단(바울과 바나바)에 의해 복음이 사마리아와 소아시아, 유럽 그리고 땅끝으로 확산되었다.

세계선교와 이방인 선교는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개척교회인 안디옥 교회에 의해 시작되었다. 교회 역사가 오래되어야만 선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교지 교회라고 항상 받기만 하는 교회로 훈련시켜서도 안 된다(행 20:35). 사도행전 8:1절은 예루살렘-온 유대-사마리아-땅끝까지 복음 확장역사는 예루살렘 교회에 일어난 박해와 안디옥 교회의 선교적 순종에 의해 주님의 교회가 세계 만민을 향한 선교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땅끝에서 우리 이웃으로 와 있는 25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와 유학생, 다문화 가정의 국내 이주민들을 향한 선교적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 세계 주요 종교 신자 증감 (1800-2000)
▶ 기독교는 19세기 급증하다가 20세기에 미세한 감소로 바뀌었다.
▶ 이슬람은 19세기 완만히 증가하다가 20세기에 급격한 성장을 했다.


3. 한국교회와 세계선교

역사상 최초의 선교사 파송교회가 된 안디옥교회처럼 한국교회는 1907년 장로교회 최초의 7인 목사 중에 1명(이기풍 목사)을 제주 선교사로 구별하여 드렸다. 한국교회는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아니다."라는 선교적 교회론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고, 선교는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의 지상명령(마 28:19-20)에 순종하여 수행해야 할 책무로 이해했다. 한국교회 초기 선교역사에서 황해도 소래교회는 가난했지만 자신들의 힘으로 교회를 세웠을 뿐 아니라, 인근 지역의 교회와 예배 처소의 건축비까지도 도와주었다.

한국교회는 인접 국가인 중국이나 일본보다 더 궁핍했고 더 짧은 복음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이들보다 더 이른 시기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1897년 인도에 기근이 발생했을 때 구호헌금(연보)을 보냈으며, 터키에 의한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건(1894-97) 때도 연보를 모아 보냈다. 이처럼 어려워도 남을 돕는 교회는 더 건강해진다. 선교학자 레슬리 뉴비긴(Newbigin)은 선교 사명을 잃은 교회는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라고 했다.

선교는 교회를 항상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며, 교회가 열심히 선교할 때 교회는 영적 활력이 넘치는 시대였음을 선교역사는 증언한다. 선교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며 지상 교회가 존재하는 분명한 이유와 근거가 된다. 선교는 교회의 악세서리가 아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사역이 아니다. 생명(조에)을 살리는 선교는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가 반드시 순종해야할 사명이다.



변창욱 교수/장신대 선교역사·총회 선교사훈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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