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 신년기획 ] 일어나라(굼) : ④ 정의

장헌권 목사
2023년 01월 03일(화) 11:16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 것/오늘이 미래를 잡아먹지 말 것/미래를 위해 오늘을 유보하지 말 것"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에서 나오는 '경계'라는 시다. 새로운 새해를 맞이했다. 새로운 변화를 노래한다. 온 땅에 새바람이 불기를 바란다. 하지만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대로 살아가고 있다.

지난해 교수들이 선정한 사자성어가 '과이불개 (過而不改)'였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회개가 없다는 말이다. 오늘 교회는 무엇을 회개할 것인가?

교회는 다양한 기능이 있다. 케리그마(말씀), 디다케(가르침), 코이노니아(사귐), 디아코노니아(섬김) 레이투르기아(예전) 등으로 사역을 이야기한다. 사역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현존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라는 것이 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라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예언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신 것이다.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등. 특히 미가 예언자가 종합해서 선배 예언자들의 핵심 메시지를 선포했다.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공의롭게 행한 일을 알리라 하실 것 이니라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 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미6:5~7). 질문을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이다. 이때 미가 예언자는 이렇게 대답 한다."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 미가는 종교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삶을 통해서 행하라는 것이다. 5절과 8절에서 행하라는 것이다.'정의를 행하며'(아모스5:24 공의<미쉬파트>), '인자를 사랑하며' (호세아 6:6) <헤세드>),'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기'(이사야7:9<할라크>)를 종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예배 안에 정의와 사랑과 겸손이 회복되어야 한다. 세상 한복판으로 인카네이션 하신 예수가 복음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여기서 '박하와 회향과 근채'는 작은 식물이지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아주 철저하게 십일조를 드린 것이다. 아주 잘한 일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지 않는 것이다. 율법의 중심이 바로 '정의'(크리시스) '긍휼'(에레오스) '믿음'(피스티스)을 잊어버린 것이다.

구약 예언서와 신약 예수님 메시지는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예배와 삶은 일치하지 못한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이다.

제107회기 총회 주제가 '복음의 사람, 예배자로 살게 하소서'(시50:5, 롬12:1)이다. 복음의 사람은 참된 예배자이다. 예배는 제물이 아니라 예배자 자신임이 강조된다. 예배자는'자기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이다. 삶의 한복판에서 실존적인 실천(프락시스)이다. 살아있는 예배는 예배자의 행동을 통해서 드러난 것이다. 이제 정의 사역이 참된 예배이다. 물론'내가 무조건 옳다'는 비뚫어진 정의감은'정의중독'이다. 성경의 정의는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종속되지 않는 하나님 자신이 정의다. 이것을 타테우스 윌리엄스 교수는 '사회정의A'라고 말한다.'사회정의B'는 성경에서 말하는(기독교)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말씀과 삶으로 응답하는 일이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실천하셨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계신 영의 현존, 성령님께서 한국교회를 뒤흔들어 놓고 계신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은 없고, 금과 은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니 변혁이 없는 미지근한 교회다.'사라지는 교회와 살아나는 교회'사이 경계에 있다. 이제 예배의 부름과 응답으로 금과 은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할 때, 벌떡 일어난 앉은뱅이에서 꿋꿋하게 서서 사람과 하늘 땅 사이에서 춤추는 교회(시편)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여! 달리다굼. 일어나기 위해서는 손을 잡아주는 제1의 본문 성경말씀이신 주님 자체이다. 그리고 제2의 본문은 성도를 아는 것이다. 성도의 삶을 읽어야 한다. 한 손에는 성경과 다른 한 손에는 신문(스마트폰)을 보는 것이다. 한 귀는 주님의 음성을, 다른 귀는 민중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들의 삶은 세월호 참사이후의 최다 인명이 스러진 이태원 참사로 위험사회이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로 3중고로 지쳐있는 과로와 피곤한 사회이다. 또한 전쟁과 성폭력이 반복되는 젠더살인 등 혐오사회, 어른이 없는 사회, 불평등 사회,갈등 사회 등 승자독식 사회이다. 또한 기록적인 폭우와 폭설 등으로 기후인권, 지구 공동체가 몸부림치고 있다. 교회는 정의를 위한 용기로 '사회 정의 사역'을 해야 한다. 힘없는 사람들을 구하는 구조적인 악을 보는 것이다.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1:17). 그것이 바로 정의로운 예배가 되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냉랭한 마음과 기쁨이 사라진 마음과 미지근한 마음들을 회복하는 사랑의 사역이 필요한 것이다. 사마리안 비유에서 예수님과 율법 교사를 통해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 하셨다. 절박함과 긴박함으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은 물론 동참하는 사랑의 사역이다.

'겸손'하게 함께 걷는 것 동행<할라크>이다. 섬김의 사역이다. 내 힘으로 '정의''사랑''믿음''겸손' 할 수 없기에 주님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이제 예수 믿기와 살기다. 거친 일상을 뚫고 그분과 함께 세상 한복판에 있는 교회다. 산위에 교회가 아닌 산 아래 교회다. 아론의 교회가 아닌 모세의 교회다. 일어나 빛을 발하는 교회가 된다는 것,이미 알고 있다. 이제 행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원하고 계신다.

장헌권 목사 / 서정교회, 광주노회 인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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