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기쁨이 있는 마을 교회를 닮다

나눔과 기쁨이 있는 마을 교회를 닮다

[ 땅끝편지 ] 독일 허승우 선교사<8>

허승우 선교사
2023년 03월 01일(수) 08:15
남선교회가 목사관 앞 마당에서 교회학교 공부방을 마련하기 위해 바자회를 열고 있다.(2014년 3월)
우리 교회가 예배드리고 있는 멜랑히톤교회 강당에서 헌책 시장이 열리는 모습.(2022년 3월)
독일 통일의 중심에 동서독교회가 있었다. 신앙은 이데올로기 보다 강하며, 사랑은 무기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중고 서점에서 신학 책을 살 때가 있는데, 통독 이전에 동독에서 나온 책들은 금방 알아 볼 수가 있다. 동독에서 나온 신학 책은 주로 동독의 문화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출판되었는데 값이 싸고 종이의 질이 오묘하며 인쇄체는 흐렸다. 그런데 감동은 다른 데 있었다. 곰곰이 책을 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서독에서 출판된 신학 책이 동독에서도 인쇄가 되어 나오다니...' 남북으로 분단된 나라에서 온 나 같은 사람에게는 충격과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이념을 넘어 신학 책의 판권을 나누고, 동독의 교회를 지원하는 것과 같은 작은 일상적인 나눔이 통일 독일의 기초가 되었으리라. 신앙의 무게와 여유, 자신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독일 교회는 나눔의 힘이 있다. 2016년에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100만 명의 난민들이 독일에 왔다. 독일 정부는 여러 반대와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환대하였다. 그리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하여 비슷한 수의 난민들이 독일에 들어 왔다. 또 그들을 환대하는 것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 그들을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행하도록 하는가? 사랑의 힘 이외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힘을 독일 교회와 성도들에게서 느끼게 한다.

국내외적인 재난이 있는 곳에 항상 독일 교회가 앞서 있었다. 독일 마을에는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가 나란히 서 있듯이 마을마다 두 개의 봉사 단체가 있다. 가톨릭교회의 카리타스(Caritas, 자비)와 개신교회의 디아코니아(Diakonia, 봉사, 섬김)가 바로 그들이다. 1976년 우리 교회 첫 번째 담임목사를 청빙해 준 곳이 뷔르템베르크 주교회의 디아코니아 봉사국이다. 카리타스와 디아코니아는 터키에서 발생한 지진 재난을 돕기 위해서 지금도 가장 먼저 앞장 서서 돕고 있다.

독일에 있는 모든 교회들은 마을 교회다. 한 마을에 가톨릭과 개신교 각각 한 교회씩 있다. 마을이 커지면 공평하게 성도 숫자에 맞게 지역을 나누어 또 그렇게 한 마을에 한 교회가 세워진다. 성서적이다.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되라는 주님의 말씀 그대로이다. 한 마을에 한 교회가 되기를 얼마나 원하는지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같은 울타리 안에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가 함께 있는 경우도 있다. 예배는 따로 드리지만 마당은 함께 사용하면서 서로 서로 만나 따뜻하게 인사를 나누고 영적으로나 일상적인 삶에서 한 마을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렇게 마을마다 유치원도 가톨릭과 개신교, 시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 하나씩 있다.

독일 마을과 독일 교회는 나눔의 기쁨을 일상적으로 누리는 마을이며 교회이다. 마을에서 한 달에 한 번 벼룩시장을 열어 가진 것을 함께 나눈다. 유치원이나 학교, 시장 마트는 항상 나눔의 쪽지들이 붙어 있다. 종교개혁으로 너무 힘들었던 마틴 루터에게 평상시 위로를 주었던 친구들이 음식(Essen), 음악(Musik), 가족(Familie) 그리고 맥주(Bier)였다고 한다. 정말 인간적인 친구가 없는 떠돌이(디아스포라)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에게는 긴장된 심장을 쉬게 해 줄 친구들이 필요하다. 루터를 본받아 필자는 책을 친구로 삼고 있다.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함께 있으면 좋은' 친구로 삼고 있다. 가끔 신학대학교 게시판에는 은퇴하는 분들이 '당신의 책을 신학생들에게 나눠 준다'는 공고가 나기도 한다. 에얼랑엔 대학교의 신약학 교수였던 오토 메르츠(Otto Merz) 교수가 은퇴하면서 책을 나눠줘 좋은 신학 사전 한질을 받은 적도 있다. 기쁨과 감동이 넘칠 뿐이었다.

한번은 청년 형제가 사는 마틴 루터 연맹(Martin-Luther-Bund)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에 심방을 갔다가 입구 책꽂이에 "가져가시오"라는 쪽지와 함께 신학 책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 이 곳은 100년 넘게 세상에 흩어져 있는 독일 디아스포라 교회들과 성도들을 섬기며 다양한 사역을 하는 단체 본부였다. 그 사역들 가운데 하나가 책이 너무 비싸 사기 어려운 신학생들과 외국에 있는 목회자들을 위해 은퇴하는 목사들이나 교수들의 전공책을 기증받아 다시 나누어 주는 문서사역을 하고 있었다. 이런 곳이 있다니 기쁘고 감사할 뿐이었다. 이곳은 그 이후 10여 년 동안의 나의 월요일 쉼터가 되었고, 그곳 분들과도 사귀게 되었다. 아쉽게도 연세가 드셔서 두 분이 은퇴하시면서 그 사역은 없어졌다.

우리 교회도 나눔의 기쁨을 배우는 교회가 되기를 원했다. 청소년들이 1년 동안 성도들의 물건을 모아 마을 벼룩시장에 나가 팔아서 500유로를 슬로바키아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 건립에 지원한 것은 가장 큰 감동이었다. 교회학교 여교사들이 교회학교 재정 지원을 위해 멋진 명품 옷들을 아낌없이 벼룩시장에 나가 팔던 모습도 생생하다. 남선교회 성도들이 목사관 앞 뜰에서 고기를 굽고, 벼룩시장을 열어 통 큰 열매를 맺은 것으로 교회학교 어린이들 공부방을 만든 것도 큰 기쁨이며 보람이었다.

나눔은 기쁨과 사랑이 순환되는 축복의 자리이다. 우리 마을(50만 명이 사는 도시)에는 항상 사람들이 웃음 지으며 찾아가는 커다란 창고형 상시 벼룩시장도 생겼다. 난민들을 위해 누구나 언제든지 물건을 기증할 수 있고, 난민들이나 어려운 분들은 싸게 물건을 사갈 수 있는 곳이다. 올해부터는 '노아의 방주'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고 있다. 나눔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다. 고국의 마을 교회들에게도 사랑의 나눔을 통해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길 독일 작은 마을에서 간절히 기원 드린다.



허승우 목사 / 총회 파송 독일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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