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재해 현장에 쏟아진 사랑

쓰나미 재해 현장에 쏟아진 사랑

[ 땅끝편지 ] 일본 강장식 선교사 <7>

강장식 목사
2022년 12월 06일(화) 08:27
체육관 재해민대피소 급식봉사에 1박2일 함께 한 교우들과 기아대책기구협력자.
총회 관계자들과 함께 한 쓰나미 재해 지역 탐방조사.
2011년 3월 11일 평온한 금요일,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가 교회에 도착할 시간인데 쾅 소리와 함께 큰 지진이 일어났다. 가끔 지진이 있는지라 '곧 끝나겠지'라는 예상과 달리 평생 잊을 수 없는 대지진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사무실 책장이 쓰러지는 것을 피해 벽을 잡고 버티다가 요동이 잠잠해진 틈에 교회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너울을 치는 땅바닥에 주저 앉아 사시나무 떨듯 흔들리는 교회에 피해가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길고 강하게 도시를 흔들어대던 지진이 잠시 수그러든 틈을 타 교회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살펴보니 떨어지고 쓰러지고 깨지기는 했지만 큰 피해는 없었다. 순간 집에 도착했을 둘째 생각에 아이들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큰 책장 몇 개가 침대를 덮쳐 순간 놀랐지만 다행히 둘째는 방에 없었다. 교회에 도착할 즈음에 지진이 일어나 땅 바닥에 주저 앉아 있다가 너무 무서워 배운 대로 친구들과 학교로 돌아갔다고 한다. 간발의 차이로 위기는 모면했지만,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공포심에 떠는 트라우마 현상이 나타나 우리 마음의 기도제목이 되었다.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불통인 교우들 안전확인을 위해 가족 모두를 차에 태우고 심방을 시작했다. 거리에는 멈춘 대중교통 탓에 걸어서 귀가하는 행렬로 가득했고, 상점식품진열대는 텅텅 비었다. 돌변한 동경의 잿빛 풍경과 3월의 음산한 그날의 기운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사재기로 물 사기도 어려워지고,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제어불능과 폭발소식, 참혹한 쓰나미의 가슴 아픈 뉴스들이 연일 쏟아지면서, 외국인들은 서둘러 몇 배의 항공료를 지불하며 동경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교우들도 지방으로 한국으로 피난을 가고 교회는 텅 비었고, 동경의 일부 선교사들도 떠나고, 가족들을 떠나 보내기 시작했다. 필자는 파송 교회 담임목사님께 조언을 구했다. 답변은 간단했다. "선교사는 교인들이 다 떠난 후 마지막으로 떠나라."

듣는 순간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끝까지 교회와 교우들 곁에 있어야 하는 것이 목회자요 선교사의 본분인 것을 왜 깜빡 했는지 부끄러워졌다. 강한 여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가족 4명은 사택에서 나와 조금이라도 신속한 대피가 가능한 교회사무실 옆 방에 함께 지냈다.

지진공포에 경색하는 둘째를 품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시편 121편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니…"라는 말씀으로 평안함과 위로를 내려주셨다. 그 시간들은 오히려 가족과 믿음의 힘을 확인하면서, 역사적인 재해 가운데서 선교사가 해야 할 역할을 보게 하시고 나아가게 하셨다.

한국교회와 우리 총회는 신속하게 손길을 내밀어 주어서, 든든한 버팀목 아래 있는 안도감을 갖게 해 주었다. 재해현장 조사와 지원활동을 위해 총회는 선교사들과 함께 지진재해지역 방문조사에 나섰다. 계속되는 강한 여진 속에서 방사능 피폭 주의경고도 있었지만, 재해지역 구석구석을 돌며 감당해야 할 역할을 찾아 나섰다. 총회 산하 교회들의 뜨거운 사랑과 기도로 많은 재정과 지원물자를 보내주셔서 큰 피해를 당한 교회를 중심으로 재해민 지원과 봉사를 하면서 교회재건축도 이루어지는 등 감사한 것이 너무 많았다. 일본이라는 불편한 관계를 넘어 한국교회의 뜨거운 일본 사랑과 선교 협력은 가는 곳곳마다 따뜻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고, 곳곳에서 한·일 관계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기도함으로 화해와 협력의 은총을 누릴 수 있었다. 한국교회의 정성과 기도가 이 땅에 복음의 꽃을 피우는 밑거름이라 믿는다.

쓰나미 재해 현장은 필자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처참했다. 2만 5천 명의 해안도시 리쿠젠타카다가 순식간에 폐허가 된 현장을 본 순간 깊은 탄식이 흘러 나왔다. 학교 체육관 대피소에 웅크리고 슬픔에 잠긴 일본 영혼들을 본 순간 따뜻하게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남아 있는 소수의 교인들과 이 소망을 나누자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필자를 따라 대피소 체육관으로 1박 2일 급식봉사를 하게 되었다.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바자회를 열자 교회 주변 주민들이 고마워하며 적극 도와주어 풍성하게 지원물자가 준비되었고, 정성 어린 한국 요리 식사가 푸짐하게 마련되었다.

재해 현장과 모든 것을 잃은 일본 영혼들의 모습을 보고 온 이후로 교우들은 200~300명 분의 식사 준비와 먼 거리인 후쿠시마현 시골에 세워진 가설주택 급식봉사를 4번 더 다녀오게 되었다. 그 때마다 필요한 재정과 봉사요원이 충분하도록 마련해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는 말씀을 따라 순종한 노년의 교우에서 청소년들에게까지 하나님은 그 신실하심으로 응답해주셨다. 이후로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이 연합하여 뿌린 복음의 씨앗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가는 기쁨의 소식을 자주 듣고 있다.



강장식 목사 / 총회 파송 일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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