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도 난민이 있어요

동티모르도 난민이 있어요

[ 땅끝편지 ] 동티모르 이대훈 선교사 7.선교현장 태국, 메솟을 방문하면서

이대훈 목사
2022년 03월 15일(화) 08:20
수해를 당한 지역교회 긴급구호활동(만레우아나 빌라델비아 교회).
코로나 바이러스로 국가 비상사태 발령과 이동통제에 따른 산골마을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일레우주 골고다교회에 비상식량을 공급 중인 모습.
한때 방문한 선교현장 태국의 매솟(Maesot)은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미얀마의 국내 정황이 어려운 가운데 미얀마 소수민족의 난민들이 태국으로 탈출하고 있다는 소식을 현지에서 들었다. 매솟에서 바라 본 미얀마는 어떤 경우는 버마로, 어떤 경우는 카렌(Karen)으로 각각 색깔을 달리하고 있었다. 즉 역사와 인종과 문화가 각각 다르게 현재의 선교현장이 되었다. 역사를 모르고는 이 관계를 이해할 수가 없고,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는 지금의 현장 상황, 현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 현장에 '난민'이란 현대이름으로 카렌(Karen)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미얀마인도 버마인도 아닌 그들은 카렌(Karen)인이 되기 위해 스스로 '난민'이 되었다.

이스라엘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적극적이며 강권적인 개입으로 출애굽하여 가나안 여정을 시작한 히브리 '난민'들처럼, 그들도 오직 카렌(Karen)인이 되기 위해 국가 신분증이 없는 도상의 삶, 현재의 길 위에서 떠도는 민족으로 살고 있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국가 신분증, 여권을 가지고 태국에서 이들을 만났지만, 이들은 아무런 국제이동의 신분증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신분증이 있다면, 하루 두 끼의 식량지원을 받기 위한 '난민증'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난민증'은 그들의 거주지 경계선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겠다는 강제된 약속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사람들을 보면서 그제야 불과 얼마 되지 않은 21세기 최초의 독립국가 동티모르 역사 속에 '난민'의 이름으로 자신들이 태어난 땅을 떠나 호주와 인도네시아로 흩어져 있는 동티모르인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 이 카렌인들을 만나기 전에 미처 동티모르 난민들을 전혀 생각지 못한 채 잊고 있었다. 방문한 선교현장은 거울에 반사하듯 그렇게 되비쳐졌다.

선교현장의 요구는 무엇인가? 선교사의 바른 현장이해와 열정은 선교현장, 현지인들의 '필요'를 생각하게 한다. 어디든 선교현장에는 필요로 하는 요구사항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그 요구와 필요를 다 충족시켜 줄 수는 없다. 현장의 요구는 무한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입장에서든 선교현장을 '도움증후군'(독일 선교학자, 테오 준더마이어의 표현)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 결과는 자발성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내가 판단하기에는 동티모르 현장에도 교회이든 정부이든 지역단체이든 이런 현상, 증상이 이미 들어와 있다. 그러나 자발적 동기를 일으킬 수 있는 인간의 기본 생존과 하나님의 존엄성으로 바라본 인권을 위해 최대가 아닌 최소한의 기준이라도 채워줄 수 있다면 현장에 있는 선교사(헌신자)로서는 이 요구에 응답하고자 하는 소박한 참여를 부인할 수 없다. 그 참여는 선교현장의 긴급한 필요(즉각적인 돌봄; 양식, 보건, 위생)와 장기적 필요(갱신과정으로 전환; 교육, 주거환경개선, 사회시설, 기반 조성)의 요구에 응답해야 하는 교회의 책임과 역할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이 필요성 점검을 통해 선교사는 선교현장에서 무엇을 해야 하며(now What to do?),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next How to do?)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국가나 국제단체, NGO의 이름으로도 동일한 응답이 가능하지만 그들에게는 없는 '복음적' 응답으로 교회와 선교현장이 상호 대화하며 미래(하나님 나라를 향하여)를 준비하는 것, 나는 이것이 '선교'라고 생각한다.



이대훈 목사 / 총회 파송 동티모르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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