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 새벽의 집중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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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끝편지 ] 동티모르 이대훈 선교사 5. 비 한 방울의 의미

이대훈 선교사
2022년 03월 01일(화) 10:25
작게 내리는 비 한 방울도 모이면 큰 힘을 낸다. 두둑두둑 그렇게 잠시 내린 비가 모여 사람이, 차들도 건너기 힘들게 다리를 쓸고 몰려간다. 작은 것을 보았는데, 이제 감당치 못할 힘을 내품는다. 그래도 하늘만 바라보며 간절히 기다리던 마음은 그런 힘을 발휘하는 비가 고맙다. 순식간에 천지를 뒤 엎고 물로 가득 차지만 그렇게 고였다가 빠진 물자리에는 생명이 움튼다. 약하여 쓰러지고 휩쓸렸겠다 생각한 파파야(papaya) 싹이 고개를 들었다.

일주일 전만 해도 말랐던 대지가 물에 차면서 솟구친 싹으로 초록색 옥수수 밭을 증명해 보인다. 강함을 이겨보겠다고 강하게 버틴 것은 꺽여져 버렸지만, 한편 약하디 약해 이리 저리 그냥 쓸려 다닐 수밖에 없던 나약한 존재들은 생명이 되어 본래의 모습을 찾는다. 천지에는 그렇게 생명이 있었고, 강과 약 사이에서 조화가 이루어진 질서는 천지를 보존한다.

창 밖에 솟은 나무들을 보면서 동티모르에서 계절을 느낀다. 새잎이 돋고 나무들도 꽃들로 마음껏 장식한다. 우기다. 그 새잎들이 싱싱하게 제 색깔을 내품다가 어느새 누렇게 색이 바랜다. 그리고 말라서 그 가벼워진 빛바랜 잎은 이제는 붙들 힘도 없는지 나무에서 떨어지고 만다. 건기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를 견디다 보면 다시 꽃이 피는 우기가 다가온다. 건기와 우기의 계절의 순환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

요즘 동티모르는 우기이다. 동티모르만큼 건기와 우기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그리고 비가 오는 시기도 오후에 내리는 시기, 밤에 내리는 시기, 그러다가 아침에 내리는 시기를 지나면서 한 철의 우기를 마친다. 그런데 요즘은 이 자연의 순환에 이상이 생겼는지 오후에 비가 내리더니 저녁부터 아침까지 비가 내린다. 우기철 전후로 더 치솟는 열기를 하루 종일 비구름이 막아주어 열을 식히기도 한다. "아직 계절이 바뀔 때가 아닌데 벌써 아침에 비가 오네?" 이상하다.

작년 부활절은 동티모르 생활 중 가장 처참한 비 피해를 맞았다. 며칠 째 내리던 비가 부활주일 새벽에 집중호우가 된 사이클론(Cyclone)을 만났다. 새벽 3시, 눈이 뜨였을 땐 이미 뒷담장이 무너져 산에서 마을로 관통하던 거센 물줄기가 에스더비전장학관 안으로 치고 들어왔다. 며칠 전 새끼를 낳은 복순이도 위험을 느끼고 다급했는지 지 새끼들을 한 마리 한 마리 입에 물고 더 높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

그렇게 부활주일 아침을 맞이했을 때 미처 예배를 드리러 갈 여력도 없이 모두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마당이 거센 물줄기에 휩쓸려 파헤쳐버렸고 처참하게 센터사무실이며 센터외곽이 무너져 버렸다. 이 피해는 수도 딜리 인근 지역까지 전반적인 피해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초유의 이 피해는 다시 센터를 재정비하는 기회가 되었다. 한국교회의 돌봄과 섬김으로 함께하는 하나님의 은혜로 에스더비전센터는 재정비된 더 나은 환경을 얻게 되었다.



이대훈 목사 / 총회 파송 동티모르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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