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강가에 선 어부가 되다

동티모르 강가에 선 어부가 되다

[ 땅끝편지 ] 동티모르 이대훈 선교사 2. 하나님의 부르심

이대훈 선교사
2022년 02월 08일(화) 08:11
어부의 꿈을 키우는 동티모르 아이들.
동티모르 국경을 넘으면서 검열받는 물품을 지켜보는 송광옥 선교사님.(2005년)
동티모르(영어 East Timor, 포르투갈어 Timor-Leste)의 정식 국가명칭은 동티모르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imor-Leste)이다.

동티모르는 아시아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태평양과 인도양에 접해 있는 강원도보다 조금 작은 섬나라이다. 같은 티모르 섬의 서쪽 서티모르와 인도네시아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접근하는 비행 루트로는 호주 북부도시 다윈과는 비록 한 시간 거리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의 접근 용이성 때문에 1시간 40분 비행 거리인 발리-딜리 구간을 주로 이용한다.

지리적 위치의 이런 입장에서 나라와 인구(약 130여 만 명) 규모가 작아도 한 국가가 되다 보니 미국과 중국, 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에서 정치, 군사적 국제 관계가 집중되기도 한다. 동티모르는 2015년에 출범한 ASEAN 10개국 공동체에 지속적으로 가입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은 성과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동티모르의 역사를 들어보면 참 슬프다. 기록된 한 나라의 역사 내용을 보면 몇 줄, 거기에다 살을 덧붙여도 몇 페이지로 기록된 역사가 다이기 때문이다. 1520년부터 약 400여 년간 포르투갈로부터 지배, 그리고 1975년에 다시 인도네시아의 강제점령으로 인도네시아에 귀속이 되었다. 이후 1999년 유엔(UN)의 개입으로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 찬반투표 실시 결과 근 78.5%의 찬성으로 2000년 3월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2년이 지난 2002년 5월 20일 인도네시아로부터 완전 분리된 독립 국가가 되었다. 유엔이 들어와 동티모르에서 역할을 하기 이전의 시기는 사실 친인도네시아계와 반인도네시아계 사이에서 투쟁과 학살, 분쟁의 시기였다. 이런 아픔과 시련을 안고 2002년이 되어서야 한 국가의 정부로 출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내란과 반목의 갈등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바로 이곳에 "선교사가 없다"는 송광옥 선교사님의 보고에 마음을 내비쳤고, 독립한 지 1년이 되던 시기에 인도네시아 송광옥 선교사님, 서티모르 김중석 선교사님, 인도네시아 의료선교사인 박진원 선교사님과 함께 5인이 2박3일 일정으로 동티모르 선교답사에 나섰다.

서티모르만 해도 인도네시아의 변방으로 경제적으로 뒤쳐진 지역이었는데, 동티모르 사이의 국경을 넘자마자 달리던 길이 비포장으로 달라졌고, 시야에 들어오는 주거환경의 모습이 어릴 적 1960~70년대의 환경을 연상케 했다. 아니 이 보다 더해 흑백사진으로 본다면 마치 일제 강점기의 한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런데도 이곳에 선교사로 온다면 '할일은 참 많겠구나'하는 생각이 내 속에서 일어났다.

이에 쐐기를 박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답사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매일성경으로 묵상하던 '에스겔 47장 1~12절'에 있었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동으로 흐르다가 남쪽으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물은 사람이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다. 그리고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고… 되살아나고…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겔47장 9,10절).

그래서 이후에 나는 '동티모르 강가에 선 어부'가 되었다. 이 말씀은 단순한 말씀이 아니었다. 마치 지구본을 통해 보듯이 말씀이 입체적으로 눈에 들어왔고 가슴에 이 말씀이 뛰어들었다. 동티모르는 동경이 125도 35분이다. 대한민국은 동경이 126도 58분이다. 다시 말해 한국과 동티모르는 한 동경선 안에 위치해 있어 같은 시간대에 놓여 있다. 거리와 1박 2일 접근시간에 비해 실시간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선교현장이 바로 동티모르이다.

한국교회의 선교의 물이 동으로 흐르다가 남으로 흘러 들어 만난 그곳 동티모르에 이르게 되어, 분쟁과 시련으로 훼손된 곳이 회복과 부흥이 이뤄지고 아픔과 고통이 가득한 국가와 국민들 가슴에 치유와 평화, 샬롬이 하나님의 선교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다. 하나님은 그렇게 나를 '동티모르 선교사'로 부르셨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순종'하는 것 밖에 없었다. 이 순종함에 '회복'과 '부흥'의 하나님의 비전이 비치기 시작했다.

이대훈 목사 / 총회 파송 동티모르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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