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복음 전하다 간 로랑

불꽃처럼 복음 전하다 간 로랑

[ 땅끝편지 ] 콩고민주공화국 선종철 선교사 8. 순교자의 피로 세워진 로자교회

선종철 선교사
2022년 01월 04일(화) 11:26
로랑(Laurent)목사 부부와 선종철 선교사 부부.(2013년 1월)
2014년 4월 로자교회 예배당 건축 전 성도들과 함께.
현재의 로자교회와 학교 전경.
기대와 환호가 넘쳤던 새 천년 2000년이 시작되었으나 콩고민주공화국은 여전히 내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콩고의 중부내륙지방인 산쿠루(Sankuru)주의 중심 도시인 로자(Lodja)에도 극심한 내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20세의 청년 로랑(Laurent)이 조카 2명을 데리고 내전을 피하여 수도 킨샤사(Kinshasa)까지 약 1000km를 두 달만에 도착했다. 로랑은 우리나라의 수능과 비슷한 콩고의 고3 졸업시험에서 전국 4등을 할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미국 선교사를 돕는 일을 했던 관계로 어려서부터 성경 중심의 건전한 신앙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가 킨샤사에 와서 먼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건전한 교회를 찾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개척된 지 얼마 안된 라무르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교회에서 전도, 양육, 파송이라는 3가지 핵심 목표에 대해서 교육받으면서 북아프리카 튀니지를 선교지로 품게 되었다. 이슬람권 전문인선교사로 가기 위해 킨샤사대학교에서 공중 보건학을 공부했고 이어서 3년간의 신학공부까지 마쳤다. 교회 사역자로 근무하면서 튀니지로 갈 준비를 했으나 길이 열리지 않았다. 그러자 먼저 고향인 로자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면 이슬람국가로 가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로자는 콩고에서도 이단이 많은 지역으로 유명하다. 2013년 1월, 로랑은 부인 로즈와 두 살된 딸 제미마를 데리고 로자로 갔다. 그 때 로랑을 주인공으로 하여 아리랑 TV에서 '로랑의 희망가'라는 다큐를 제작해 방영한 바 있다.

킨샤사에서 로자까지 가는 방법이 두 가지인데 경비행기로 가는 방법과 육로로 콩고강을 거쳐서 가는 것이다. 로자공항은 활주로가 비포장이어서 큰 비행기는 착륙할 수가 없다. 경비행기로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항공료가 비싸서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육로를 이용한다. 도로가 없어서 가는 데만 3주 내지 한 달이 소요된다.

로자에 도착하여 셋집을 얻어 그 해 2월 창립예배를 드렸다.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자 많은 젊은이들이 모였고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했다. 2013년 8월, 교회의 부흥을 시기한 이단이 로랑 형제를 죽이기 위해 독약을 넣은 음료수를 주었는데 이를 모르고 마시게 되었다. 온 몸에 독약이 퍼져서 킨샤사에 와서 몇 달간 치료를 받은 결과 차도가 있어서 나은 줄로 알고 로자로 돌아갔다.

로자로 2차 파송을 받으면서 목사안수를 받고 갔다. 콩고의 열악한 의료환경으로 인해 완전히 해독이 되지 않았고 독이 다시 온몸에 퍼져서 이듬해 1월 21일 천국에 입성했다. 그 때 로랑 목사의 나이가 만 34세였다. 33년간 준비하여 1년을 불꽃처럼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자가 되어 천국에 입성한 것이다. 당시 31세된 부인과 세 살된 딸이 있었고 그해 2월에 유복자로 아들이 태어났다.

그해 4월에 로자에 갔더니 50여 명의 성도들이 모이고 있었고 5명의 신실한 리더들이 세워져 있었다. 10일간의 사경회를 인도한 후에 순교자의 피로 세워진 로자교회의 성전건축을 위해 기도했다. 2014년 6월, 3400평의 외곽지 땅을 구입했고 2015년 2월부터 8월까지 예배당과 사택 그리고 학교를 건축했다. 건축을 위해서 양은수 권사님께서 큰 몫의 헌금으로 섬겨주셨다.

지금까지 로자교회는 로랑 목사의 부인 로즈와 라무르교회에서 파송된 사역자들에 의해 부흥을 이루어왔다. 콩고민주공화국의 내륙 중심부에 있는 로자교회가 중심이 되어 콩고 전역으로 복음이 확산되고 로랑 목사가 품었던 북부 아프리카 이슬람국가까지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가 되게 해주시기를 기도한다.



선종철 목사 / 총회 파송 콩고민주공화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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