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유익했던 4년간의 훈련 기간

너무도 유익했던 4년간의 훈련 기간

[ 땅끝편지 ] 콩고민주공화국 선종철 선교사 2. 선교사 훈련

선종철 선교사
2021년 11월 23일(화) 08:12
2000년 3월 5일 파송식을 마치고 좌로부터 김혜숙 선교사, 아들 선경민, 선종철 선교사.
2000년 3월 5일 서림교회에서 선교사 파송예배 후.
신대원 졸업을 앞두고 파송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던 1995년 5월 송재식 목사님께서 광주서림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같은 해 9월 학기에 겸임교수로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에 강의하러 오신 목사님께 나의 선교비전을 말씀드렸고 서림교회 당회에서 서림교회 최초로 단독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정했다. 한국교회 목회를 경험하고 선교현장에 가는 것이 유익할 것 같다는 목사님의 제안에 따라 서림교회에서 사역하다가 파송받기로 했다.

1996년 1월부터 서림교회에서의 4년은 너무나도 유익한 선교사 훈련의 기간이었다. 송 목사님께서는 '21세기를 이끄는 교회'라는 목표로 다음세대인 아동과 청소년 그리고 청년들에 대하여 큰 관심과 사랑을 갖고 목회를 하셨다. 나는 부교역자로서 전도대와 새가족 양육부, 기도실, 방직공장 산업선교 등의 다양한 분야를 맡아서 충성을 다했다. 서림교회의 폭발적인 부흥을 경험하면서 콩고에 가서도 서림교회처럼 복음 사역의 본질에 충실하면 하나님께서 크게 부흥케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콩고에서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큰 어려움 없이 선교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변함없이 콩고선교를 위해 전폭적으로 후원해 주시는 서림교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음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교회에 감사드린다.

1998년 6월, 김록현 장로님과 함께 콩고민주공화국 선교지 탐방의 기회를 가졌었다. 그 당시 콩고의 모습은 우리나라 1960년대 보다 더 열악한 상황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치안은 불안한 상태였으며 수도 킨샤사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처럼 킨샤사 거리에 가득한 인파를 보면서 그들의 영혼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1999년 봄, 제 25기 총회 선교사훈련을 받았다. 아프리카에는 총 54개 국가가 있는데 그 중에 21개 국가가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불어권 국가이다. 불어권 국가의 대부분은 적도에 위치한 콩고민주공화국을 경계로 북아프리카에 위치해 있으며 이슬람이 강한 국가들이다. 교회를 개척하여 현지인들을 잘 훈련시켜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동일 문화권인 북아프리카 불어권 나라에 선교사로 파송해야겠다는 선교의 비전을 갖게 되었다.

필자에게는 한 명의 자녀(선경민)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어려서부터 의료선교사의 꿈을 주셨다. 하나님의 은혜로 서울대 의대에 합격하여 2000년 3월 대학에 입학시켜 놓고 선교지로 출발할 수 있었다. 자녀의 교육 문제까지 해결된 상황에서 선교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 감사했다. 아들은 결혼하여 부부 의사로서 한국에서 근무하다가 WHO등의 국제 의료단체에서 봉사하기 위해 현재 영국 런던 보건대학원에 유학 중이다.

2000년 3월 5일, 총회장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참석한 가운데 큰 감격과 기대 속에서 서림교회에서 선교사 파송예배를 드렸다. 3월 11일 한국을 출발하여 이틀 간의 여정 끝에 3월 13일 선교의 땅 콩고민주공화국에 도착했다.



선종철 목사 / 총회 파송 콩고민주공화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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