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회 총회에 바란다

제106회 총회에 바란다

[ 생생논평 ] 총회 현안들에 대한 소신 발언!

박종순 목사
2021년 09월 16일(목) 10:31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106회 총회 총대 여러분. 코로나19 때문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로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고 일상이 회복되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106회 총회 회기가 12시간으로 단축됐습니다. 전에 없던 일입니다. 회무처리가 빠르게 진행되지 않으면 미진안건으로 처리하게 됩니다. 산적한 현안들을 처리하기 위해선 충분한 논의와 토론을 거쳐야 하는데 시간이 모자랍니다. 진행을 책임진 사람들의 지혜와 총대들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총회를 성총회라고 부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총회, 하나님 앞에서 모인 총회라는 뜻입니다. 성총회가 되려면 총대들이 거룩성을 지켜야 합니다. 총회에 임하는 자세, 의안을 처리하는 자세, 총회를 이끄는 자세가 거룩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총회는 총회 회기 동안만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교회가 거룩한 공교회여야 하는 것처럼, 총회 역시 시작도 끝도 그리고 지상교회가 들림 받는 날 까지 거룩성을 지켜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속 공동체나 집단과는 구별돼야 합니다.

총회는 세상사를 논하고 결정짓는 곳이 아닙니다. 정치집단이나 경제집단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순복하는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106회 총회는 시간에 쫓기는 총회입니다. 자기주장 내세우지 말고 발언대 독점하지 말고 순리를 따르는 총회가 되도록 함께 해야 합니다. 모든 총대는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발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기우를 버려야 합니다. 삼가고, 존중하는 회의 윤리가 자리잡는다면 회무처리는 한결 신속하고 바르게 진행될 것입니다.

몇 가지 현안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자비량 목회 문제

목회자의 이중직에 대한 문제가 공론화 되고 「자비량 목회」로 용어가 바뀐 것은 긍정적 변화이며 발전이라고 봅니다.

바울사도는 자비량 선교의 장을 연 선각자입니다. 바울은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고 짐을 지우지 않기 위해 생업이 같은 아굴라와 함께 천막을 만들어 선교비를 충당했습니다. 일찍이 유대 랍비들도 기술과 상업을 익혀 자급자족 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회 여건이 어려워져갑니다. 이중직 논의는 잘 먹고 잘 살고 치부하기 위한 방법을 찾자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목회 현실을 극복하고 자비량 목회의 길을 터보자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 힘없는 교회는 자립 가능성이 없습니다. 자비량 목회가 아니면 목회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총회가 더 이상 이런저런 이유로 가로막을 이유가 없습니다. 긍정적 대처와 가이드라인이 필요합니다.

2. 예배당 공유 문제

천문학적인 돈으로 건축한 대형교회당들이 주중이면 텅 빈 공간이 되곤 합니다. 그런가하면 극히 적은 임대료를 지불하지 못해 고통 받는 개척교회, 작은 교회들이 많습니다. 한 건물 안에 여러 교회가 시간을 나눠 모이는 예배 공간 공유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신학적 검토 운운하지만 문제될게 없다고 봅니다. 여유있는 교회들 아니면 여러 교회가 지역별 혹은 노회단위로 건물을 마련하고 힘겨워 하는 개척교회와 작은 교회들이 예배처소를 공유하는 것이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시행되어야 합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교단적으로 시행세칙을 마련하고 서둘러야합니다. 크다고 힘주는 것도, 작다고 몽니 부리는 것도 바람직한 교회자세는 아닙니다. 교회다움이란 크고 작음으로 결정 짓는게 아니니까요.

교회는 함께 공동체, 예수 공동체라야 합니다.

3. 연합기관 문제

WCC, NCCK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 어떤 연합체나 기구라도 단견으로 가입이나 탈퇴를 결정짓는 것은 삼가는게 좋습니다. 중요한 대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어떤 연합기구보다 교단이 우선이고 교회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학적 입장차이라는 이유로 1959년 교단이 분열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연합체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단의 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러나 교단보다 WCC나 NCCK가 더 중요하거나 우위에 있지 않습니다. WCC의 경우 많이 변했습니다. WCC는 협의체여서 신학이나 신앙과 무관하다고 말합니다만 그건 아닙니다. 찬반양론 다 가능합니다. 그러나 옳은 건 옳다, 아닌건 아니다 라고 말하는 분별력은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내세운 모든 기구나 단체들은 연합정신이 중요한게 아니고, 성경적인가 복음적인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WCC나 NCCK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존재해야지 그리스도가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역행은 막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냉철한 통찰이 요청됩니다.

왜 필요한가 그들은 뭘 하고 있는가, 뭐라고 말하는가는 검토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만든 기구나 연합체는 결코 영원하지도 완전하지도 않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위드 코로나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습니다. 정체를 바꿔가며 집요하게 도전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와 함께 가야 한다는 위드 코로나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와 함께 간다? 얼마나 불안한 동행입니까? 언제 어떤 변덕을 부릴지 모르는 코로나와의 동행, 선뜻 내키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위드 코로나가 아닙니다. 위드 크라이스트, 위드 지저스입니다. 총회도, 노회도, 교회도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위드 크라이스트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역사를 바꿀 수 있고, 세상을 바꾸고, 민족사를 바꾸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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