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을 품게 되다

태국을 품게 되다

[ 땅끝편지 ] 태국 이호연 선교사(3)

이호연 선교사
2021년 06월 29일(화) 08:20
미국에서 4학년을 다닐 때 동기들도 졸업 이후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떤 친구들은 장기선교를 준비하기도 하고, 어떤 친구들은 공부를 더하려고 준비하기도 하고, 어떤 친구들은 다른 방향의 일들을 찾고 있었다. 나도 나름대로 두 가지의 기준을 가지고 생각하고 있었다. 첫째는 교회와 선교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에게 한국 교회와 선교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주셨다. 선교는 분명히 교회의 몫이라고 말씀을 통하여, 경험을 통하여 믿게 되었다. 아무리 부족하고, 더뎌보일지라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해서 주님은 일하신다는 것을 믿기에 '교회와 간다'가 나의 기준이 되었다.

또 하나는 실력을 가진 전문인 선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교지에서 세상으로도 인정받는 전문성이 있어야만 그들과 함께 하는데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나를 돌아보니 나에게는 전문분야가 없었고, 그저 선교에 대한 열정뿐이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나는 무슨 전문가가 되고 싶은 가를 물었을 때, '말씀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 있음을 알게 됐다. 말씀의 전문가는 목사이니 그렇게 준비해야 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런 마음으로 한국으로 오게 되었고, 신대원을 준비하여 2005년에 입학을 했다.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아체 주에서 규모 9.1의 해저 지진이 발생했고, 최고 높이 30미터가 넘는 파도, 쓰나미가 주변국을 덮쳤다. 전혀 준비가 안되어 있던 많은 나라들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 대략 2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 인간은 참으로 무력한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나 참 놀라운 것은 인간은 그러한 절망 속 에서도 희망을 찾고 다시 일어선다는 것이다. 당시 태국 남부 안다만 지역도 쓰나미로 인해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중에 하나였다. 그곳으로 태국교회들, 태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 그 선교사들과 연결된 한국 교회들이 달려갔다. 피해를 가장 많이 입었던 지역 중에서 외부로 많이 알려진 지역이 '팡아'도 안에 있는 '남캠'이라는 마을이었다. 그 앞바다에서 당시 왕의 손자가 쓰나미로 죽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곳도 재해복구가 활발하게 진행이 되었다.

교회와 선교단체들은 재해복구와 함께 지역주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는 복음사역도 같이 하였는데, 그 결과 믿는 자들이 그 땅에 생겨나게 되었다. 쓰나미로 많은 생명이 죽어간 그곳에, 쓰나미로 인해 복음이 뿌려지고,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는 놀라운 일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교회가 없던 그곳에 믿음의 공동체가 생겨나게 되었고 교회들이 여기저기서 예배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PCK 태국선교부와 태국 현지 CCT 교단은 그곳에 선교센터와 교회를 세워서 복음을 계속해서 전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였고, 창동염광교회가 안다만 프로젝트 선교의 동역자로 함께 하게 되었다.

신대원 1학년을 다니던 어느 날 교회에서는 나를 부르셨고, 교회에서 준비하는 태국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를 하면서 나에게 태국 선교사로 가는 것을 요청하셨다. 한국에 들어와 크게 동남아라고만 결정했지, 언제, 어떻게, 어디로 갈지 아무런 계획이 없던 필자에게 교회에서 태국으로의 '콜링'을 하셨다. 이것도 예비하심이라고 믿었기에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렇게 태국 땅으로의 방향이 결정되었다.



이호연 목사 / 총회 파송 태국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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