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선교사가 된다면

내가 다시 선교사가 된다면

[ 땅끝편지 ] 러시아 최영모 선교사 완

최영모 선교사
2021년 06월 08일(화) 10:17
한 교우가 자작나무에 그려준 목자 예수님의 그림에는 '사랑하는 최영모 목사에게'라는 말이 러시아어로 적혀 있다. 러시아 교우들에게 받는 이런 사랑도 든든한 그물 받침대가 되어준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참된 사람은 자서전이 아니라 참회록을 쓰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필자는 '땅끝 편지'를 자서전처럼 쓰고 있는 것 같아 멈칫거린다. 물고기처럼 빠르게 지나간 선교의 세월을 뒤돌아보며 내가 다시 선교사가 된다면 반복하고 싶지 않은 실수는 무엇일까?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후회와 아쉬움을 밖으로 꺼내본다.

내가 다시 선교사가 된다면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전에는 말씀과 기도를 첫째로, 사역은 둘째로 생각했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가 첫째요, 둘째이며, 셋째이고, 사역은 넷째로 두고 싶다.

내가 다시 선교사가 된다면 동료 선교사들을 지금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싶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나는 친구가 됩니다. 주님의 법도를 지키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나는 친구가 됩니다(새번역, 시 119:63)." 그리고 모든 명예는 팀의 동역자들에게 돌리고, 책임은 나에게 돌리겠다.

내가 다시 선교사가 된다면 소외된 영혼도 귀하게 여기셨던 주님의 마음을 닮으려고 더욱 노력하겠다. 하나님은 공동체 안에 소외된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로 사역의 성공을 평가하실 것 같다.

내가 다시 선교사가 된다면 기도요청이라는 이름으로 선교비를 요구하지 않겠다. 사도 바울이 천막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삼아 교회와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으려고 했듯이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에게든지 선교비를 말하지 않겠다.

내가 다시 선교사가 된다면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배우는 것을 더 많이 하겠다. 선교사로 보낸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러시아와 선교에 대하여 조금 알고 훨씬 더 많이 모르는 것을 깨달아 가기 때문이다.

체코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살았던 작가 밀란 쿤데라는 그의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말한다. "외국에서 사는 사람은 높은 곳에 있는 외줄 위를 걷는 것과 같다. 가족과 동료와 친구의 나라가, 그리고 어린 시절에 배운 언어로 쉽게 말할 수 있는 나라가 주는 그런 그물 받침대가 그에게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외줄 위를 걸어갈 때 안전한 그물 받침대가 되어준 이들은 여럿이다. '땅끝 편지'를 쓰는 동안에도 필자의 글을 읽으며 따뜻한 관심을 계속 보내준 유석균 목사(울산병영교회)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필자의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주었다. 그들은 기도와 물질에 마음과 사랑을 담아주었다. 가끔 고국을 방문하면 밤을 새워가며 필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들도 있다. 이들로 인해 선교사로 보낸 삶이 참으로 행복했음을 고백한다.

핀란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야곱 신부의 편지'에서 야곱 신부는 사람들의 편지에 상담하고 답장하는 일을 매우 큰 보람으로 여겼다. 그런데 임종이 가까우면서 그는 자기를 도와주는 조수 레일라에게 말한다. "이 모든 편지들, 레일라, 난 하나님을 위해 이 모든 것을 해왔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건 나를 위해 한 것 같아요.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나를 집으로 이끄시는 …"

필자도 야곱 신부와 같은 심정이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고 싶어 선교사로 헌신했고,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일한 것 같지만, 정직하게 고백한다면 이 길은 필자를 지키기 위해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 설 때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라는 말밖에는 아무런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준 한국기독공보에게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린다.

최영모 목사 /총회 파송 러시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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