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교회에서 경험한 열 가지 일

러시아 교회에서 경험한 열 가지 일

[ 땅끝편지 ] 러시아 최영모 선교사8

최영모 목사
2021년 05월 27일(목) 09:30
부활주일 예배를 마친 후 한자리에 모인 상트페테르부르크장로교회 교우들. 고려인, 러시아인, 한인이 섞여 있다.
작가 필립 얀시는 '놀라운 은혜'에서 러시아 교회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러시아에서 은혜에 굶주린 국민을 보았다. … 러시아의 보통 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잃은 채 눈빛이 허공을 맴도는 것이 꼭 매 맞은 어린아이 같았다. … (그러나) 러시아를 떠날 때 나는 앞으로 바뀌어야 할 많은 것들에 대해 현기증과 동시에 강한 희망을 느꼈다. 맨살만 남은 황폐한 도덕의 땅에서 사체(死體)의 모양을 따라 자라나며 황무지를 쓰다듬는 한 점 푸르른 땅, 즉 생명의 싹을 본 것이다. … 이념은 사라졌으나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살아남았다. 지금 교회는 무섭게 일어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어쩌면 하나님 나라의 미래는 … 러시아같은 곳에 속한 것일지 모른다.'

얀시의 말처럼 황무지였으나 푸르른 땅으로 변해가는 시간 속에서 선교사로 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러시아 교회에서 경험한 몇 가지를 떠올려 본다.

첫번째, 한 교우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광고를 예배에서 했더니, 그 교우는 매우 화를 내면서 "돈은 절대로 받지 않겠다"라고 했다. 상(喪)을 당했다고 알리면 사람들이 돈을 모아 주는 것이 러시아의 관습임을 그때 알았다. 그 뒤부터는 먼저 허락을 받고 광고한다.

두번째, 예배 시간에 가난한 사람이나 기관을 도우려고 모금하면 주일 헌금보다 더 많은 액수가 모인다. 헌금을 모금 후에 가졌다가 헌금이 거의 나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세번째, 여성 교역자나 여성 집사(권사 직분은 없다)와 함께 심방을 갈 때, 예의 바르고 교양있는 목사라면 반드시 동행하는 여성을 위해 차의 문을 열어주거나 외투를 받아 걸어주어야 한다. 필자를 비롯한 한국 선교사들이 잘하지 못하는 행동이다.

네번째, 목사가 심방을 가더라도 술이 종종 나올 때가 있다. 어떤 이는 "예수님도 포도주를 만드셨잖아요"하고 권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비싼 술을 준비하지 못해 미안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독교는 술을 금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다섯번째, 예배 인도자나 설교자 등 사역자들은 주일 예배에도 정장보다는 편한 옷차림으로 임한다. 몇 번이나 말했으나 잘 지키지 않는다. 본을 보이려고 열심히 정장을 입고 가지만, 언제나 필자 혼자만 입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결혼식 초대에는 정장으로 잘 차려입고 간다. 예배가 결혼식보다 가벼운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과 그만큼 친밀하다는 뜻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여섯번째, 기도를 마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대신 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하면서 마친다. 한동안은 그것을 고쳐주려고 많이 노력하면서, 러시아 신학자에게 물어보니 요한의 전승이 아닌, 바울의 전승을 따르기에 그렇게 한다는 답을 들었다.

일곱번째, 성경을 주면 매우 기뻐한다. 그런데 그것을 읽기보다는 '거룩한 장소'로 불리는, 집 안 가장 중요한 곳에 모셔놓고 그 앞에서 기도한다. 성경책을 부적같이 생각하는 것 같다.

여덟번째, 성경의 장과 절이나 각 책의 순서가 우리와 다른 경우가 꽤 많다. 특히 시편은 대부분 한편씩 어긋나며, 사도행전 다음에는 야고보서, 베드로 전후서, 요한 서신이 바울 서신보다 먼저 나온다.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갈2:9)'에 따른 순서라고 한다.

아홉번째, 몇 사람을 집사로 임명하려고 하자 자신들은 직장에 다녀야 한다면서 극구 사양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초대 교회 일곱 집사처럼 자주 전도하러 다니며 교회 일에 전념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럴 때는 '성경적인 너무나 성경적인' 것 같다.

열번째, 러시아 사역자들은 교회를 개척하면 바로 교도소나 마약중독회복 사역 등 사회사업을 함께 시작한다. 사역자 자신도 지원받아야 하는 형편이기에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 하기를 바라지만 그들은 아니다. '넉 달이 지나야만 추수 때가 된다'고 선교사들은 말하지만, 그들은 '이미 곡식이 익어서 거둘 때가 됐다(요4:35)'고 말한다.

최영모 목사 /총회 파송 러시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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